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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祖師先天虛無太一金華宗旨(여조사선천허무태일금화종지)
祖師曰(조사왈) 天心者(천심자) 三在同稟之心(천심자 삼재동품지심) 丹書所謂玄竅是也(단서소위현규시야) 人人具有(인인구유) 賢哲啓之(현철계지) 愚迷閉之(우미폐지) 啓則長生(계즉장생) 閉則短折(폐즉단절)
1. 번역 : 큰 스승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의 마음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 사람(三在)이 모두 함께 받는 것이다. 단에 관한 책(丹書)에서 현묘한 구멍이 이것, 즉 하늘의 마음을 가리키는데 사람마다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어질고 현명한 이는 그것을 열고 어리석고 미혹에 빠진 이는 그것을 닫는다. 그것을 열면 오래 살고 그것을 닫으면 일찍 죽게 된다.
2. 참뜻 : 큰 스승께서 말씀하시길 하나의 으뜸가는 신, 일원신의 마음이 변해 하늘과 땅과 생물과 사람이 되니 그러한 것들 모두에는 일원신의 뜻이 간직되어 있다.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을 탐구하는 책에서 현묘한 구멍은 비유적 표현으로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가리킨다. 어질고 현명한 이는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찾아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내려 하고 어리석고 미혹에 빠진 이는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현명하고 진리와 진실을 알려는 이는 마침내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 육체와 무관하게 오래 살거나 영원히 살게 되고 어리석고 미혹에 빠진 이는 단명하게 되는 것이다.
委之命數者(위지명수자) 凡夫之見也(범부지견야) 無人不愿求生(무인불원구생) 而無不尋死(이무불심사) 夫豈別有肺腸哉(부기별유폐장재) 六根以引之(육근이인지) 六塵以攪之(육진이교지) 駸駸年少(침침년소) 轉眼頽歿(전안퇴몰)
1. 번역 : 생명이 수명에 부여된 숫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견해이다. 삶을 원하며 구하지 않는 인간은 없지만 죽음을 찾아가지 아니하는 사람도 없다. 사람에게 어찌 허파나 창자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겠는가? 여섯 개의 뿌리가 생명을 이끌고 여섯 개의 티끌이 그것을 어지럽혀 생기 발랄한 어린아이조차 눈을 돌리는 순간 죽는다.
* 6근이란 ① 안근(眼根) : 시각적인 것을 인식하는 기관, 마음의 눈을 가리킴 ② 이근(耳根) : 청각적인 것을 인식하는 기관, 즉 마음의 귀를 가리킴 ③ 비근(鼻根) : 후각적인 것을 인식하는 기관, 즉 마음의 코를 가리킴 ④ 설근(舌根) : 미각적인 것을 인식하는 기관, 즉 마음의 혀를 가리킴 ⑤ 신근(身根) : 촉각적인 것을 인식하는 기관, 즉 마음의 신체를 가리킴 ⑥ 의근(意根) : 뜻을 인식하는 기관, 즉 마음의 뇌를 가리킴
이러한 기관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표상을 인식하는 기관과 뜻을 인식하는 기관으로 나눌 수 있다.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은 육체로 인해 생기는 표상을 인식하는 기관이다.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가리킨다. 색은 모양과 색깔을 가리키고 성은 소리를 가리키며 향은 냄새를 가리키고 미는 맛을 가리키고 촉은 촉감을 가리키고 법은 뜻을 가리킨다.
2. 참뜻 : 수명이 육체의 사용 내지 유지할 수 있는 기간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견해는 깨달음이 없는 어리석은 이들의 견해이다. 죽기를 원하지 않고 오래 살기를 누구나 원하지만 죽음이 육체의 수명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지 아니하는 사람도 없다. 허파나 창자가 사람에게 떨어져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으뜸가는 신의 마음 역시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육체로 인해 생긴 여섯 개의 인식 기관에 지나치게 의지하여 그러한 인식기관으로 감지되지 않는 것들은 외면하게 되고 여섯 종류의 마음에 나타나는 대상들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런 이유로 세상의 삿된 견해를 접하지 않은 이들 역시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결국 외면하게 되는데 육체에서 비롯된 욕망으로 인해 생긴 대상들에 의지하는 순간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날 수 없게 된다.
至人憫之(지인민지) 授以至道(수이지도) 誨者諄諄(회자순순) 聽者渺渺(청자묘묘) 其故何哉(기고하재) 蓋不明大道體用(개불명대도체용) 而互相戕賊(이호상장적) 如是求生(여시구생) 猶南轅而北轍也(유남원이북철야) 夫豈知大道(부기지대도) 以虛無爲體(이허무위체) 以隱現爲用(이은현위용) 故須不住于有(고수부주우유) 不住于無(부주우무) 而氣機通流(이기기통류)
1. 번역 : 도달한 이(至人)가 그러함을 가엾게 여겨 지극한 이치를 전수하였다. 가르치는 이는 타이르고 타이르지만 듣는 이는 아득하고 아득하기만 하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큰 도(大道)의 실체(體)와 작용(用)을 밝히지 아니하여서 서로 못 쓰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명을 구한다면 가히 남쪽으로 가는 수레가 북쪽으로 바퀴를 돌리는 것과 같이 된다. 사람이 어찌 대도가 허무(虛無)로써 체를 삼고 은현(隱現)으로 작용을 삼음을 알겠는가? 고로 모름지기 있음(有)에도 머물러서는 아니되고 없음에도 머물러서는 아니된다. 그래야만 기의 기틀(氣機)이 통하여 흐르게 된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생명의 비밀을 아는 이가 그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참된 이치를 전수하였다. 전수하는 이는 가르치고 타일러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자 하나 듣는 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으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대개 으뜸가는 신의 실체와 작용, 나아가 둘 간의 관계를 밝히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것들 중 하나 정도는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둘 간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대충 아는 것이 오히려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 으뜸가는 신과 통하는 일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 참된 생명을 얻고자 하는 행위는 남쪽으로 수레를 움직인다면서 북쪽으로 바퀴를 돌리는 일과 같다. 사람이 으뜸가는 신이 한없이 비어있기에 세상의 모든 대상을 품어 있게 할 수 있고 특정한 표상이 없기에 특정한 표상을 지닌 대상을 있게 함을 어찌 알겠는가? 또한 사람이 으뜸가는 신의 작용이 끊임없이 조건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함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드러난 것에만 집착해서도 아니 되고 감추어진 것에만 집착해서도 아니 된다. 그래야만 작용을 일으키는 대상들이 통하여 원활해진다.
* 虛無(허무)
- 虛(허) : 비다, 비우다, 틈
- 無(무) : 없다
* 隱現(은현)
- 隱(은) : 숨다, 기대다, 의지함, 숨기다
- 現(현) : 나타나다, 옥 다음 가는 돌, 나타냄, 현재
吾輩功法(오배공법) 惟當以太一爲本(유당이태일위본) 金華爲末(금화위말) 則本末相資(즉본말상자) 長生不死矣(장생불사의) 斯道也(사도야) 古來仙眞(고래선진) 心心相印(심심상인) 傳一得一(전일득일) 自太上化現(자태상화현) 遞傳東華(체전동화) 以及南北二宗(이급남북이종)
1. 번역 :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방법은 마땅히 태일(太一)을 근본으로 삼고 황금꽃(金華)을 말단으로 삼는다. 근본과 말단이 서로 밑천이 되면 오래 살고 죽지 아니하게 된다. 이와같은 이치는 예로부터 신선이나 진인이 말 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였고 한 가지를 전수하면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태상노군에서부터 세상에 나타나 동화제군에게 차례로 전해졌으며 남북 이종에 이르게 되었다.
2. 참뜻 :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방법은 세상을 이루어지게 하는 존재, 즉 으뜸가는 신을 뿌리로 하고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 의식을 가지로 한다. 의식을 얼로 되돌려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이루어지게 하는 존재와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 의식을 소통하게 하는 일이 배우고 익히는 데에 핵심이 된다. 세상이 사라지더라도 처음과 끝이 없이 존재하는 이가 으뜸가는 신이니 으뜸가는 신과 같이 된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하나가 되어 소통하게 되면 자연히 불로불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는 예로부터 으뜸가는 신과 소통하게 된 이들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남몰래 전하는 방식에 따라 전수하였고 그러한 이들이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서 으뜸가는 신의 뜻, 한 가지를 얻어 전수하면 한 가지 뜻이 세상에 전해졌다.
道本無隱(도본무은) 而心傳極秘(이심전극비) 非秘也(비비야) 非心授心受(비심수심수) 不能授受也(불능수수야) 口傳固妙(구전고묘) 而領會難一(이령회난일) 況筆亦乎(황필역호) 是以太上大道(시이태상대도) 貴乎心傳(귀호심전) 而授受于鳥睹之中(이수수우조도지중) 豁然而開(활연이개) 師不得期授于弟(사부득기수우제) 弟不得期受于師(제부득기수우사) 眞信純純(진신순순) 一旦機合神融(일단기합신융) 洞然豁然(통연활연) 或相視一笑(혹상시일소) 或涕泣承當(혹체읍승당)
1. 번역 : 도는 본래 숨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전수하는 일은 지극히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숨기고자 함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수하고 마음으로 전수받지 못 하면 전수하고 전수받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로 전하는 일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지만 깨닫게 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글로 전수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태상이 전수한 대도(大道)는 마음으로 전수하는 일을 귀하게 여긴다. 전수하고 전수받는 일은 새를 보는 가운데에 일어나며 깨닫고 열릴 수도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전수하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약속할 수 없고 제자는 스승에게 전수받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약속할 수 없다. 진실하고 믿음이 강하고 참으로 순수하면 하루아침에 기틀이 합쳐지고 신이 녹아들어 통달하고 깨닫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혹은 서로 마주 보며 크게 웃기도 하고 혹은 서로 엉엉 울며 얼싸안기도 한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은 본래 숨어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수하는 방식에 따라 전해져 왔다. 일부러 비밀스럽게 전수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전수하지 않으면 전수받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상 아무리 잘 이해시켜도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통하지 않으면 전수한 것도 없고 전수 받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말로 전하면 이해시키기 쉽지만 제자가 마음에서 으뜸가는 신과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서로 대화하며 말로 전수하는 일도 어려운데 어찌 글로 전수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노자가 전수한 대도는 마음에서 으뜸가는 신과 통하게 하는 일을 귀하게 여긴다. 제대로 된 전수는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러한 경우 으뜸가는 신이 의식과 의식과 소통하며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하루아침에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며 통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아무리 애쓰더라도 제자의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통하게 해 준다고 약속할 수 없고 제자 역시 스승에게 으뜸가는 신과 통할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다. 진실하고 믿으며 꾸준히 참되게 수행하고 삶을 충실히 살다보면 하루아침에 인간의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합쳐지며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며 통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으뜸가는 신과 통하며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는 일은 참으로 놀랍고 감동스러운 일인데 어찌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고 엉엉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와 같은 일이 전수된다면 이 역시 참으로 놀랍고 감동스러운 일이기에 스승이나 제자나 절로 웃고 울며 서로 얼싸안는 것이다.
入道悟道(입도오도) 均有同然者(균유동연자) 第或由悟而入者有諸(제혹유오이입자유제) 由入而悟者有(유입이오자유) 諸未有不由心一心信(제미유불유심일심신) 而入而得者(이입이득자) 不一則散(불일즉산) 不信則浮(불신즉부) 散則光不聚(산즉광불취) 浮則光不凝(부즉광불응) 不能自見其心(불능자견기심) 又何能合太上所傳之心(우하능합태상소전지심)
1. 번역 : 도(道)에 입문하는 일이나 도(道)를 깨우치는 일은 모두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다. 혹은 먼저 깨닫고 나서 도에 입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입문한 뒤 그로 인해 깨우치는 자 역시 있다. 무릇 마음을 한 마음(一心)에 두지 않고서 입문하여 도를 얻는 이는 있지 아니하다. 한 마음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흩어지고 믿음이 없으면 들뜨게 된다. 흩어지면 빛이 모이지 아니하고 들뜨면 빛이 엉기지 아니한다. 능히 스스로 그 마음을 보지 못 하는데 어찌 태상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 합쳐질 수 있겠는가?
* ‘들뜨다(浮)’는 비유적 표현이니 참뜻을 찾아야 한다. 일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하면 자연히 육체로 인해 생기는 욕망에 의지하게 된다. 욕망에 의지하게 되면 결국 진리와 진실은 왜곡되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들뜨다(浮)’를 ‘왜곡된다’로 풀이한 것이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을 아는 일이나 으뜸가는 신과 통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으뜸가는 신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으뜸가는 신과 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으뜸가는 신과 통한 뒤 으뜸가는 신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는 경우 역시 있다. 마음을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두지 않고 믿음이 굳건하지 않으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태어나 으뜸가는 신과 접촉하며 으뜸가는 신의 뜻을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이 나타나더라도 곧 사라지게 되고 믿음이 없으면 으뜸가는 신이 분명하게 드러나 작용을 제대로 일으키지 않게 된다. 능히 스스로 그 마음을 보지 못하는데 어찌 태상이 알려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하여 그대의 마음과 합쳐지게 할 수 있겠는가?
故儒崇內省(고유숭내성) 道崇內觀(도숭내관) 佛氏四十二章經(불씨사십이장경) 亦云(역운) 置心一處(치심일처) 何事不辦(하사불판) 蓋以無上大道(개이무상대도) 只完得一心全體焉耳(지완득일심전체언이) 全體惟何(전체유하) 虛淨無雜焉耳(허정무잡언이)
1. 번역 : 고로 유가에서는 안에서 성찰하는 일을 중시하고 도가에서는 안에서 살피는 일을 중시한다. 석가는 ‘사십이장경’에서 또한 말하길 ‘마음을 한 곳에 두면 어찌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무릇 위 없는 대도(大道)는 단지 한 마음 전체를 얻는 것이다. 전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비어있고 깨끗하여 잡됨이 없는 것이다.
2. 참뜻 : 고로 유가에서는 성찰하는 일을 중시하고 도가에서는 마음에서 살피는 일을 중시한다. 석가는 ‘사십이장경’에서 말하길 마음을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두면 어찌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무릇 위 없는 으뜸가는 신을 접촉하는 일의 핵심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으뜸가는 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채울 수 있기에 비어있고 인간의 욕망의 흔적이 없다.그러하기에 허상 또한 없다.
* 석가 역시 일원신의 마음을 발견하였다. 물론 표현은 다르다.
이때 그는 '다섯 가지 집착을 일으키는 요소의 집합이 단절된 것'에 대해 바른 지혜를 얻은 사람이다. 아난다여! 이러한 교법이야말로 오로지 선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성스러운 것이고 세속을 초월한 것이며, 악마가 기회를 엿볼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아함경②, 돈연 역, 민족사, 2012년, p87~88)
宗旨妙體如此(종지묘체여차) 宗旨妙用(종지묘용) 亦惟在置心一處也(역유재치심일처야) 內觀卽是置心一處之訣(내관즉시치심일처지결) 卽是心傳秘旨(즉시심전비지) 非徒可以心領(비도가이심령) 且可以口授(차가이구수) 非徒可以口授(비도가이구수) 且可以筆示(차가이필시)
1. 번역 :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되는 뜻의 묘한 실체는 이와 같고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되는 뜻의 묘한 작용은 또한 오로지 마음을 한 곳(一處)에 있게 하는 데에 있다. 안으로 살피는 일(內觀)이란 마음을 한 곳에 두는 비결인데 즉 이것이 마음으로만 전해지는 비결이다. 무리에 참여하여 배우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고 또한 말로 전수해 줄 수도 있다. 무리에 참여하여 배우지 않더라도 또한 말로 전수해 줄 수도 있고 글로써 가르칠 수도 있다.
2. 참뜻 :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뜻의 핵심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마음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뜻을 이해하고 수련하면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는 일(內觀)은 일원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비결인데 이러한 사실은 비밀리에 전수되어진 비결이다. 무리에 참여하여 공부하지 않더라도 내관을 통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할 수 있다. 내관하는 법은 말이나 글로 전수해 줄 수 있으니 반드시 무리에 참여하여 배워야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아무리 무리에 참여하더라도 내관을 하지 않으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
至于功造其極 (지우공조기극) 心空漏盡之時(심공누진시) 然後恍然洞徹玄妙之旨(연후황연통철현묘지지) 非筆之所得而示(비필지소득이시) 并非口之所得而傳(병비구지소득이전) 眞虛眞寂(진허진적) 眞淨眞無(진정진무) 一顆玄珠(일과현주) 心心相印(심심상인) 極秘也(극비야) 至得悟得入之後(지득오득입지후) 而乃極顯矣(이내극현의)
此無他(차무타) 天心洞啓故耳(천심통계고이)
1. 번역 : 배우고 익히는 일이 궁극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도달하여 마음이 비고 새어나감이 다한 연후에 황홀한(恍) 상태에 이르러야 신비한 가르침을 완전히 알게 된다. 그러한 경험(所得)을 글로 알려줄 수도 없고 아울러 말로 전수해줄 수도 없다. 참으로 비어있고 참으로 조용하며 참으로 깨끗하고 참으로 없는데 한 알의 신비한 구슬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절로 전해지는데 이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지극한 비밀이다. 깨달음을 얻어 들어선 뒤에라야 크게 드러난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이 훤히 열렸기 때문이다.
*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마음에 드러난 상태를 홀황(惚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視之不見(시지불견) 名曰夷(명왈이) 聽之不聞(청지불문), 名曰希(명왈희) 搏之不得(박지부득) 名曰微(명왈미) 此三者(차삼자) 不可致詰(불가치힐) 故混而爲一(고혼이위일) 其上不皎(기상불교) 其下不昧(기하불매) 繩繩不可名(승승불가명) 復歸於無物(복귀어무물) 是謂無狀之狀(시위무상지상) 無物之象(무물지상) 是謂恍惚(시위황홀) - 보지만 보이지 않는 것(視之不見)을 일컬어 이(夷)라 하고, 듣지만 들리지 않는 것(聽之不聞)을 일컬어 희(希)라 하며, 만지지만 잡아지지 않는 것(搏之不得)을 일컬어 미(微)라 하는데, 이 셋은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합하면 하나가 된다. 그 위가 밝지 못하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고 한없이 이어지며 이름지을 수 없으니 무물로 복귀한다. 이것을 일컬어 무상지상(無狀之狀)이나 무물지상(無物之象)이라 하고 이를 일컬어 홀황(惚恍)이라 한다. (노자의 도덕경, 노자, 이창성 역, 나무의 꿈, 2017년, p59~60, 제14장)
2. 참뜻 : 익히고 배우는 일이 마지막에 이르러 넋이 얼로 되돌아가 으뜸가는 신과 합쳐져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훤히 드러난 상태를 황홀(恍)이라고 일컫는데 그러한 상태에 이르면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이 사라지지 않고 으뜸가는 신의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니 참으로 신비하다. 그와 같은 현상은 겪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지 글이나 말로 전하기 어렵다. 으뜸가는 신의 마음은 모든 것을 있게 할 정도로 참으로 비어 있고 넋의 작용이 없기에 참으로 조용하며 넋의 생각이 없기에 참으로 깨끗하고 넋의 감정이 없기에 어떠한 인간적인 감정도 없다. 넋이 얼로 되돌아가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면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이 드러나며 으뜸가는 신이 의식과 합쳐지는데 이는 말이나 글로 알려주지 않는 지극히 비밀스런 이야기이다. 이러한 일은 넋이 얼로 되돌아가 으뜸가는 신과 합쳐진 후에라야 일어나는데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今之求道者若涉大水(금지구도자약섭대수) 其無津涯(기무진애) 已到彼岸(이도피안) 則如筏喻者(즉여벌유자) 法尚應舍(법상응사) 若不知所從者(약부지소종자) 可不示之以筏乎(가불시지이벌호) 我今叨爲度師(아금도위도사) 先當明示以筏(선당명사이벌)
1. 번역 : 오늘날 도(道)를 구하는 자는 큰 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데 나루터나 물가가 없는 피안에 도달하는 일을 뗏목으로 비유하는 일은 더욱이 버려야 한다. 만약 따라야 할 바를 알지 못하는 이가 어찌 뗏목을 이용하지 않고서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이제 외람되게도 제도하는 스승이 되어 먼저 뗏목을 보여서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다.
* '이 뗏목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의 힘으로 저쪽 언덕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러니 이제 나는 이 뗏목을 머리에 이든지 어깨에 짊어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어떨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그가 취하여야 할 뗏목에 대한 바른 태도인가?" ∙∙∙∙∙∙∙ '이 뗏목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의 힘으로 저쪽 언덕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제 이 뗏목을 마른 땅으로 끌어 올려 두든지 아니면 물속에 침수시키고 내 갈 길을 가면 어떨까?'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해야 할 뗏목에 대한 바른 태도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에게 소유하여 가질 목적이 아닌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인 뗏목에 비유한 가르침을 설하였다. 가르침이 뗏목과 비슷함을 안다면, 좋은 것에 집착하는 것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나쁜 것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참조 : 금강경의 ‘뗏목의 비유’, 니까야에도 있었다, 맛지마 니까야: 22, https://bolee591.tistory.com/16154908)
2. 참뜻 : 오늘날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는 여러 방편을 언급하며 목적을 달성하면 버려도 상관없는 것처럼을 말을 하며 경시한다. 여러 방편이 바른 방편인가? 하는 문제도 따져볼 문제이고 목적을 달성하면 어떠한 방편이라도 버려도 상관없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실상 방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방편을 있게 하는 핵심이 되는 가르침, 즉 핵심이 되는 방편은 변함이 없고 버릴 수도 없다. 어떠한 방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 법도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 간직되어 있는 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면 이제 핵심이 되는 가르침을 알려주도록 하지.
然天心一竅(연천심일규) 不在身中(부재신중) 不在身外(부재신외) 不可摸索而開(불가모색이개) 只可黙存以俟(지가묵존이사) 欲識其存(욕식기존) 不外色即是空(불외색즉시공) 空即是色(공즉시색) 丹書所謂是那麽(단서소위시나마) 非那麽(비나마) 非那麽(비나마) 却那麼(각나마) 才是如如(재시여여)
번역 : 그런데 하늘의 마음인 하나의 구멍(一竅)은 육체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육체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찾아서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말없이 마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존재에 대해 알아볼 것 같으면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이외의 것이 아니다. 단(丹)에 대해서 말하는 책에서 ‘이와 같으면 이와 같지 않은데 이와 같지 않으면 도리어 이와 같다.’라는 말이 이러한 설명이다.
*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다.
觀自在菩薩(관자재보살)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 舍利子(사리자) 色不異空(색불이공) 空不異色(공불이색)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 受想行識亦復如是(수상행식역부여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이용하여 내관하며 다섯 개 덩어리들을 비추어 살펴보니 모두 비어있느니라(空). ∙∙∙∙∙∙ 사리자여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니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니라. 나머지 오온인 수상행식(受想行識)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2. 참뜻 : 으뜸가는 신의 마음은 육체 안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육체 밖에서 찾는 것도 아니며 그런 식으로 찾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욕망에 따른 억지스러움을 내려놓고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는 도리밖에 없다.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살펴보면 표상 덩어리(色)가 빈 것(空), 즉 으뜸가는 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고 빈 것, 즉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표상 덩어리와 다르지 않아 표상 덩어리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표상 덩어리이더라.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변해서 된 것이 표상 덩어리이더라.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에 대해 말하는 글에서 ‘이와 같으면 이와 같지 않은데 이와 같지 않으면 이와 같더라.’ 라는 말은 이러한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一開永開也(일개영개야) 而功法在于存誠兩字(이공법재우존성양자) 諸子存誠妙用(제자존성묘용) 尚有訣中捷訣(상유결중첩결) 乃于萬緣放下之時(내우만연방하지시) 惟用梵天伊字(유용범천이자) 卽日月天罡在人身卽是左目右目與眉心(즉일월천강재인신즉시좌목우목여미심)
1. 번역 : 한 번 열리면 영원히 열리는 것이니 배우고 익히는 법은 ‘정성을 보존한다(存誠).’는 두 단어에 입각하여 공부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정성을 보존하여 신묘한 작용을 일으킬 때에는 또한 비결 중에서도 빠른 비결이 있으니 곧 모든 인연을 내려놓은 채 오로지 범천(梵天)의 상징 문자(伊字)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해와 달과 천강성은 사람 신체에서 왼쪽 눈, 오른쪽 눈과 더불어 미간에 있는 중심에 비유될 수 있다.
* 범천 : 색계 초선천의 우두머리로 제석천과 함께 부처를 모시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 存(존) : 있다, 보존하다, 모으다, 맡기다
* 誠(성) : 정성, 삼가다, 자세하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의 마음은 한 번 드러나면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드러나게 하는 묘한 비법이 있다. 얼을 보존한 채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며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수련을 할 때에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 의식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다.
先天神人皆具三目(선천신인개구삼목) 如斗母雷祖是也(여두모뢰조시야) 人知修煉眉心卽開(인지수련미심즉개) 所開之目(소개지목) 名曰 天目是也(명왈천목시야) 以字中占存諸(이자중점존제) 眉心(미심) 以左点存左目(이좌점존좌목) 右点存右目(우점존우목) 則人兩目神光(즉인양목신광) 自得會眉心(자득회미심)
1. 번역 : 원래부터 신과 같은 인간들은 모두 세 개의 눈을 갖추고 있어 신(斗母雷祖)과 같았다. 사람이 이를 알고서 닦고 불리노라면 미간의 중심(眉心)이 곧 열린다. 이렇게 열린 눈을 가리켜 소위 하늘의 눈(天目)이라고 말한다. 중간에 있는 점을 미간의 중심에 있게 하고 왼쪽 점을 왼쪽 눈에 있게 하고 오른쪽 점을 오른쪽 눈에 있게 하면 곧 사람의 두 눈에 있는 신의 빛이 저절로 미간의 중심에 모인다.
2. 참뜻 : 원래부터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연 이들은 세 개의 인식 기관을 발전시켜 신과 구별되지 않았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참된 방법에 입각하여 꾸준히 수련하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인식 기관이 열리는데, 즉 인간의 의식이 얼로 되돌아가는데 이렇게 열린 인식 기관을 하늘의 눈(天目)이라고 말한다.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인간의 의식에 있는 얼을 조응시키면 넋은 얼로 되돌아가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합쳐져 으뜸가는 신과 같은 의식이 되는 것이다.
眉心卽天目(미심즉천목) 乃爲三光會歸出入之總戶(내위삼광회귀출입지총호) (丹書所爲日月合璧之處(단서일월합벽지처))人能用三目如梵伊字然(인능용삼목여범이자연) 微以意運如磨鏡(미이의운여마경) 三光立聚眉心(삼광입취미심) 光耀如日現前(광요여일현전)
1. 번역 : 미간의 중심이 곧 하늘의 눈이다. 곧 세 개의 빛이 모이고 돌아가며 들락거리는 주요한 장소가 된다. - 단을 다루는 글에서 해와 달이 합쳐지는 장소가 이곳을 가리킨다. - 사람이 세 개의 눈을 사용하는 일이 하늘의 문자(梵伊字)와 같이 사용할 수 있다면, 즉 거울을 닦듯이 미세하게 뜻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세 개의 빛이 미간의 중심에 들어와 모인다. 빛이 빛나는 것이 해가 앞에 있는 것과 같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과 의식이 조응하면 으뜸가는 신과 같은 의식이 생겨나는데 세 군데에 있는 얼이 이곳을 중심으로 들락날락거린다.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 의식으로 생각하면 세 군데에 있는 얼이 으뜸가는 신과 합쳐진 의식에 모이며 으뜸가는 신이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드러난다.
卽以意引臨心後關前(즉이의인임심후관전) (關卽雙關也(관즉쌍관야)) 此一處也(차일처야) 按卽玄牝之門(안즉현빈지문) 以意引之(이의인지) 光立隨臨(광입수임) 而母忘若如二字玄義(이모망약여이자현의) 天心必自洞啓(천심필자통계) 以後玄用(이후현용) 在爲細示(재위세시)
1. 번역 : 곧 뜻으로 이끌면 중심의 뒷 부분에 있는 관문 앞에 이른다. - 관문은 곧 두 개의 관문이다. - 이곳은 한곳이라 생각컨데 곧 현빈(玄牝)의 문이다. 뜻으로 그것을 이끌면 빛도 따라 임한다. 같고 같다는 약여(若如) 두 글자에 간직된 현묘한 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하늘의 마음은 반드시 절로 훤히 열린다. 묘한 용도는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 현빈(玄牝) : 도덕경에 나오는 용어로 도의 다른 표현이다.
谷神不死(곡신불사) 是謂玄牝(시위현빈)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데 계곡의 신을 현묘한 암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若(약) : 같다, 어리다, 좇다
* 如(여) : 같다, 어떠하다, 미치다
* 牝(빈) : 암컷, 계곡
2. 참뜻 : 으뜸가는 신의 뜻으로 생각하면 으뜸가는 신과 합쳐진 의식이 생겨나니 이 의식은 곧 으뜸가는 신이 되어 으뜸가는 신을 강림시키는 관문이 된다. 이 관문을 왜 두 개의 관문이라고 일컫는가? 인간의 의식이 으뜸가는 신이 되는 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마음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되는 문이라서 그러하다. 약여(若如)에 간직된 뜻 즉 ‘같고 같아라’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같고 같아라’라는 말에는 그대의 의식도 그대의 마음도 으뜸가는 신의 의식과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변해서 된 것이니 이를 잊지 말고 수련하여야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 간직되어 있다.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합쳐지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반드시 절로 훤히 드러날 것이다.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所切囑者(소체촉자) 終始弗爲元引耳(종시불위원인이) 氣機之所變幻(기기지소변환) 皆非眞實玄況(개비진실현황) 若爲引動(약위인동) 便墮魔窟(변타마굴)
1. 번역 : 간절히 부탁하는 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元)에 끌리지 말아야 한다. 원(元)은 기의 기틀이 변해서 된 환각으로 모두 진실이 아니고 현묘함이 없다. 만약 이끌려 움직이면 곧 마귀의 굴에 떨어진다.
* 元(원) : 으뜸, 근원, 크다, 머리
2. 참뜻 : 으뜸가는 신과 같아져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찾을 때 주의할 점은 넋에 의지하여 넋의 생각에 사로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넋 역시 얼이 변해서 된 것이고 그대에게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넋의 생각은 대체로 환각으로 진실과 진리를 간직하고 있지 않다. 만약 그러한 환각에 사로잡혀 생각하면 넋의 세계에 떨어지는데 운이 나쁘면 악령의 세계에 떨어질 수도 있다.
諸子遵循行去(제자준순행거) 別無求進之法(별무구진지법) 只在純想于此(지재순상우차) 楞嚴經 云(능엄경운) 純想卽飛(순상즉비) 必生天上(필생천상) 天非蒼蒼之天(천비창창지천) 卽生身于乾宮是也(즉생신우건궁시야) 久之自然得有身外天(구지자연득유신외천)
1. 번역 : 그대들이 (가르침을) 따라 수련할 때는 따로 나아가는 법을 구하지 않고 단지 순수한 생각을 이곳에 있게 하면 된다. 능엄경에서 말하길 순수한 생각은 즉시 날아서 반드시 하늘 위에 태어나게 한다고 하였다. 하늘은 푸르고 푸르게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곧 ‘살아있는 몸(生身)을 하늘의 궁전에 태어나게 한다.’라고 말할 때의 하늘이다. 장기간 이와 같이 수련하면 몸 밖에 있는 하늘을 얻게 된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데에 따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한 생각은 반드시 넋을 얼로 되돌리고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합쳐져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게 한다. 으뜸가는 신이나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옛 사람들은 하늘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물론 이때의 하늘은 푸르고 푸르게 보이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하여간 말한대로 하면 으뜸가는 신과 하나가 되어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 의식을 얻게 된다.
蓋身猶國土(개신유국토) 而一乃主君光卽主君心意(이일내주군광즉주군심의) 又如主君敕旨(우여주군칙지) 故一回光(고일회광) 則周身之氣皆上朝(즉주신지기개상조) 如聖王定都立極(여성왕정도입극) 執玉帛者萬國(집옥백자만국) 又如主佐同心(우여주좌동심) 臣庶自然奉命(신서자연봉명) 各司其事(각사기사)
1. 번역 : 대개 몸은 국가와 같아서 하나(一)는 주군이고 빛은 곧 주군의 뜻(心意)이며 또한 주군의 칙서이다. 고로 한 번 돌려서 비추면 곧 두루 퍼져 있는 몸의 기(氣)가 모두 조아리니 어진 임금이 도읍을 정하고 근본을 세우는 것과 같다. 만국이 옥과 비단을 진상하는 것과 같고 임금과 신하가 한 마음이 된 것과 같고 신하와 백성이 절로 명을 받들어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
2. 참뜻 : 의식은 국가와 같아 으뜸가는 신은 주군이며 얼은 주군이 보낸 칙서와 같다. 고로 한 번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면 의식은 으뜸가는 신과 같아져 으뜸가는 신과 같이 생각하며 으뜸가는 신을 따르니 이는 임금이 도읍을 정하고 근본이 되는 제도를 세우는 것과 같다. 이는 만국이 보물을 진상하는 것과 같고 임금과 신하가 한 마음이 된 것과 같으며 신하와 백성이 절로 명을 받들어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과 같다.
諸子只去專一回光(제자지거전일회광) 便是無上妙諦(변시무상묘제) 回之即久(회지기구) 此光凝結(차광응결) 卽成自然法身(즉성자연법신) 廓而充之(곽이충지) 吾宗所爲鄞鄂(오종소위은악) 西教所謂法王城是也(서교소위법왕성시야) 主君得輔(주군득보) 精氣日生(정기일생) 而神愈旺(이신유왕) 一旦身心融化(일단신심융화) 豈僅天外有天身外有身已哉(기근천외유천신외유신이재)
1. 번역 : 그대들이 단지 돌리며 비추는 일에 몰두하여 수련하면 이것이 곧 위 없는 묘한 비결이다. 돌리며 비추는 일을 오래도록 하면 이 빛은 엉기고 뭉쳐 곧 절로 법의 몸을 이루며 법의 몸을 넓히고 채우니 우리 가르침의 터전(鄞鄂)이 된다. 불교(西教)에서 말하는 법왕성 역시 이것을 가리킨다. 주군이 신하를 얻으면 순수한 기(精氣)가 날마다 생겨나서 신(神)이 더욱 왕성해진다. 하루 아침에 몸과 마음이 합쳐진다면 어찌 겨우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몸 밖의 몸이 있는 정도에 그치겠는가?
2. 참뜻 : 그대들이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는 일이 위 없는 비결이다. 그와 같은 일을 오래하면 세 군데에 있는 얼이 모이고 엉겨 의식은 으뜸가는 신과 같아지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니 할수록 의식은 점점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가르침의 핵심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왕성 역시 법의 몸, 즉 으뜸가는 신과 같아진 의식을 가리킨다.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합쳐지면 으뜸가는 신의 뜻이 끝없이 나타나니 얼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진다. 그러하면 어찌 효용이 겨우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같아지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는 정도로 끝나겠는가?
然則金華卽金丹(연즉금화즉금단) 神明變化(신명변화) 各師于心(각사우심) 此心妙訣(차심묘결) 雖不差毫末(수불차호말) 然而甚活(연이심활) 全要聰明(전요총명) 又須沉靜(우수침정) 非極聰明人(비극총명인) 行不得(행부득) 非極沉靜人(비극침정인) 守不得(지켜도 얻지 못한다.)
1. 번역 : 그러한즉 황금꽃(金華)이 곧 금단(金丹)이다. 이는 신의 밝음이 변하여 된 것으로 여러 스승들이 마음으로 전하는 바이다. 이와 같은 마음의 묘한 비결은 비록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지만 지극히 어려워 항상 똑똑해야 하고 또한 모름지기 가라앉혀 조용해야 한다. 지극히 똑똑하지 않으면 행하여도 얻지 못 하며 지극히 가라앉혀 조용하지 않은 이는 지켜도 얻지 못 한다.
2. 참뜻 : 넋을 얼로 되돌려 마음에 깃든 으뜸가는 신과 합쳐진 의식을 황금꽃(金華)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금단(金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금꽃은 얼이 변하여 된 것으로 여러 스승들이 극비로 마음으로만 전하였다.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생각하면 모두 끝이라는 묘한 비결은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고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항상 얼의 작용을 일으키고 넋의 작용을 그쳐야 한다. 얼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 하면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지 못 하고 넋의 작용을 그치지 못 하면 얼의 작용을 일으키더라도 으뜸가는 신과 통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