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저장했을 글인데, 사라졌던 것을 프린트물 정리하다 발견한 글이다.
내장코너에도 없고, 외장하드(USB)에서도 찾을 수 없던 글이다.
마침 프린터로 출력한 사본을 발견하고, 다시 타자해서 올려본다.
-다음-
구멍가게 주인영감
괴산군 푸른내의 한 산골짜기 작은마을에 구멍가게 하나가 있습니다.
엉성하게 만든 진열대 위에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은 걸 보면 장사가 별무신통(別無神通)인 듯합니다.
두어 평이나 됨직한 그 작은 구멍가게에는 맘씨 좋은 영감내외가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다 성가(成家) 시켜 도시로 내보내고 둘이서만 오순도순 삽니다.
부인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벌써 허리가 구부정합니다.
그미를 보면 농촌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짐작이 갑니다.
요즘은 인근(隣近)에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구멍가게 단골손님을 휩쓸어 갑니다.
그래서인지 그 구멍가게는 문 여닫는 소리가 뜸해졌습니다.
손님이 줄어서 어려움이 있긴 합니다만, 그 가게는 농촌 서민들의 애환(哀歡)과 향수(鄕愁)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주인영감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문을 열고, 가게 앞 도로를 쓸어냅니다.
밤새 눈이라도 내린 겨울 아침이면 일거리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애꿎은 담배만 뻑뻑 태우면서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립니다.
냄새 좋은 청국장을 화덕에 올려놓고 두부 한 모 사려고 달려오는 주부(主婦)를 위해 가게 문은 언제나 반쯤 열려있습니다.
외상이라도 좋습니다. “아빠가요, 돈은 담에 드린다고 담배 한 갑 달래오래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더듬거리는 어린아이 얼굴 한번 슬쩍 훑어보고
“그러거라!” 하면서 군소리 없이 ‘솔’ 한 갑을 건네주는 영감입니다
그리고 연필에 침을 묻히며 외상장부를 뒤적거리고 치부(置簿)하며 혀를 끌끌 찹니다.
“이 친구, 이것 참!” 그리고 장부를 털썩 내려놓고 입을 다뭅니다.
저녁나절이 되면 술 생각이 굴뚝같은 남정네들이 찾아듭니다.
진종일 밭에서 땀을 흘리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입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답니다.
짠 김치 한 접시에 막걸리 한 병 받아 들고, 어느새 주인영감도 합석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넉넉한 물주(物主)라도 동석(同席)하면 동태찌개가 지글지글 끓기도 합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우편집배원도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섭니다.
술이 몇 순배 돌면 넉넉해진 인심으로 지나가는 사람도 손짓하여 불러들입니다.
계산은 누가 할건지 다 압니다. 그래서 주인은 누가 오거나 가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술꾼들의 흥만 돋워주면 됩니다. 어느새 젓가락 장단에 노랫가락 울려퍼지고...
서산마루에 해가 넘어가고 어둑어둑해지면 저녁상 차려놓고 기다리던 아낙네들이 어슬렁거리며 찾아옵니다.
아니면 티브이 만화에 푹 빠져있던 손자들이 할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전령(傳令)이 됩니다
그러다 술에 빠진 서방 탓하는 언성이 높아지면서 술판은 깨집니다.
그래도 주인영감은 넉넉한 웃음으로 그들을 돌려보내고, 헛참!을 연발하며 소맷단 툭툭 털면서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티브이 연속극에 빠진 마나님 곁에 나란히 앉으며 ‘남얘기’로 하루해를 마감합니다.
고즈넉한 그 방안에는 둘만 남습니다.
그 구멍가게 주인영감처럼, 그렇게 너그럽고 여유(餘裕)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돈 몇 푼 벌자고 시비를 걸거나 야단을 친다면 그런 재미없는 가게를 누가 찾겠습니까?
혹, 시비가 있더라도 빙그레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주인은 소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함께 웃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觀-
덧글 : 모델이었던 영감은 내가 요르단에 있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부인은 여전히 구부정한 모습으로 밀차를 밀며 마을회관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