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정의 작업단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는 자신이 속해있는 시대의 대변자로서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적 정서와 가치관을 서로 주고받게 되며, 매력적인 미적 가치대상을 포착하여 대상물에 깃들여 있는 예술적인 우아함을 표현하려 한다.
현대미술가가 목표로 하는 것은 작가가 꿰뚫어본 인간의 본질 및 현실세계에 깃들여 있는 영혼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데, 시대가 바뀔 때마다 예술의 자유는 획기적으로 그 범위를 달리하여 그 시대가 부여하는 자유를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방식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하게 화면을 장식하여 왔다.
대상의 실체를 그려내지 않아도, 누구나 보는 이러 하여금 공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머리를 맑게하는 표현이고 싶다.
나는 매번 작품에서 러시아의 철학자 빅토르 쉬클브스키가 주장하는 “예술은 창조가 아니라 낮설게 하기”라는 화두에, 감정이입의 문을 자유롭게 개방하여 개방된 마음의 문을 통해 자유자재로 주제와 색채와 표현형식을 스스로 다스림에 순응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가능한 자연현상의 가벼운 힌트만을 주고 굳이 대상의 실체를 그려내지 않아도, 누구나 보는 이러 하여금 그 심연의 표현에 공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머리를 맑게하는 표현이고 싶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대상들은 수많은 색면대비로 표현된 작품들은 원경과 중경 근경에 공기의 흐름이 마치 연마된 음악의 선율을 타듯 경괘하며 자연스런 균형감을 유지하며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마, 이 무언의 표정에서 이 시대를 사는 가장 느림으로 살기 원하는 나 자신의 정신적 유연성 때문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삶의 긍정적 환상과 감성어린 인간미를 극대화함으로,
나의 작품에 나타난 색채표현은 마치 단순한 블루와 옐로우, 오커색으로 발색되어 마치 무소유의 화면을 대하는 듯 편안하고 서정적이고 싶다. 화려한 듯, 하면서도 야하지 않은 색채의 부드러운 중첩은 이른 초여름의 실록의 파노라마 향연이 눈앞에 펼쳐진 듯 평화롭고 몽환적이길 바라기 때문이디.
이렇게 화폭을 마주하고 돌아서는 감상자의 발걸음은 결국 화면에 표현된 간결한 색면대비에 숨어 있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이다. 이해할 수 없어가 아니라, 감상자는 자연스레 화면에 점점 몰입되어 나의 작품 속에 깊이 빠져들게 하기 위함이다.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삶의 긍정적 환상과 감성어린 인간미를 극대화함으로,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작가가 의도한 공기의 흐름의 평범과 미학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한 자연현상의 가벼운 힌트만을 주고 굳이 대상의 실체를 그려내지 않아도,
누구나 보는 이러 하여금 그 심연의 표현에 공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머리를 맑게하는 표현이고 싶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대상들은 수많은 색면대비로 표현된 작품들은
원경과 중경 근경에 공기의 흐름이 마치 연마된 음악의 선율을 타듯 경괘하며
자연스런 균형감을 유지하며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마,
이 무언의 표정에서 이 시대를 사는 가장 느림으로 살기 원하는 나 자신의 정신적 유연성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