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집 좋은 시 (『문학과 창작』 2023년 여름호)
오직 사랑!
이정현 (시인,문학평론가)
김종해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리토피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 살아가는 1백 년의 시간은
너무 짧고 허무하다
수천억 년 산과 바다와 하늘
바람과 구름과 햇빛은
지금 그 모습 변함이 없는데
사람 살아가는 1백 년의 시간은
이 땅에 잠시 맺혔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아침이슬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스러지는
하루살이 떼
영생불멸을 기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로운 생명이 진화하여
이곳을 새 낙원으로 만든다 해도
사람 살아갈 1백 년의 시간은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오늘 네게 편지 써야 할 시간이
이 땅에서는 참으로 너무 짧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전문
‘삶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인간에게 최대치의 시간, 1백 년의 인생 여행길은 앉으나 서나 오직 사랑이다. 그 사랑은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일 때 신난다.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흔들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 살아가는 1백 년의 시간은/ 너무 짧고 허무하다”고 시인은 행간조차 버렸다. “이 땅에 잠시 맺혔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아침이슬/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스러지는/ 하루살이 떼”로 변용되는 언어들이 마치 바람의 찰나 같다. 내가 아침이슬이나 하루살이 떼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그들은 죽음을 모를 것이다. 오직 현재를 살기에 죽는 순간까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삶의 의미를 자문하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시인은 시간을 제시하며 “사람 살아갈 1백 년의 시간은/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일침을 놓는다.
수천억 년 전인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사랑으로 산다. 남자가 여자를, 그 반대여도 좋고, 둘 다 사랑한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오늘 네게 편지 써야 할” 것이다.
올해 시력 60년이 되는 김종해 시인! 그 세월만큼이나 시의 높이와 깊이가 느껴지는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를 출간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인으로서 아직 시에 대한 원숙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나. 시와 함께 걸어온 저의 삶은, 시가 있으므로 사람 마음속에 감춰진 놀라운 낙원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왔는가. 그렇지 않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서 후회하기보다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짧은 1백 년을 더욱 짧게 느끼는 건 아닌지 모른다.
김종해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나 1963년 「자유문학」과 「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부분이 당선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현대시> 동인이다.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발행인이며 제34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인은 말한다.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했고, 시가 있으므로 사랑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이다. 시인에게 시가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기에 시인은 시詩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아무도 모르게 시詩에게 사랑 편지도 쓴다. 시인은 사랑하는 시와의 시간이 늘 짧게 느껴질 테지만, 사랑하기에 도리가 없다. 그래도 용기 있게 고백하고 시를 와락 껴안는다. 그동안 길게 혹은 짧게 시 속에서 시인의 품 안에 들어온 사람, 사람, 사람들…‥. 시인의 웃음이 푸근해 보이는 이유일 테다. 지금처럼 정겹게 “죽을 때까지 저는 시가 가리키는 이 길을 시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지금 제 앞을 밝히는 저녁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시력詩歷 60년을 지나 61년, 62년 63년…‥! “세상 이치에 대한 화해와 거기서 유래한 인간 긍정과 세계 긍정이 성취한 정신의 긍지”(유종호 문학평론가)를 보며 앞으로 시인의 시적 변용을 따라 무작정 따라가 보고 싶다.
‘오직 사랑’에 관한 인생의 답은 김종해 시인의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곁에 두고 사랑에 무너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