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참나 박경귀 개인전
작업노트
滿月, 觀心의 表象
보름달을 바라보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은 초승달에서 시작하여 커다란 보름달로 변하는 달의 생태(生態)가 수행자가 정진(精進)하여 마침내 정각(正覺)을 이뤄내는 모습과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만월(滿月)을 그리는 이유도 그것을 바라보면 수행자의 정진하는 모습이 중첩되며 나를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법 중에 ‘관불삼매(觀佛三昧)’가 있다. 부처님의 공덕과 상호를 생각하고, 관찰하며, 수행하는 참선법이다. 이 때문에 수행자들은 오래전부터 불상을 수행처에 모셔두고 깊이 바라보며 관불삼매의 방편으로 삼아왔다. 수행자는 삼매에 들기 위한 표상으로 불상을 선택한 것이다. 『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에는 삼매를 ‘하나의 대상에 마음이 집중되어 마음이 선해진 상태(善心一境性)’라고 정의하고 있다. 고려불화 <관경 16관 극락 변상도>를 보면 석양. 물. 땅. 나무. 해. 등, 16가지의 표상을 그려서 극락을 깊게 관(觀)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만월은 나를 바라보기 위한 표상(表象)이라고 할 수 있다.
만월은 원형이다. 각이 무한히 많아지면 원형이 된다. 즉, 원은 무한히 많은 각의 집합이다. 원은 무한히 많은 각의 집합이어서 조형적으로 가장 고차원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반대로 각이 없으므로 조형상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 할 수 있다. 원은 특히 중심축에서 테두리까지의 거리가 같아 이를 바라보면 안정감과 균형감을 느끼게 하여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에 들게 하는 시 지각적 속성이 있다. 이러한 원(圓)의 속성을 갖은 만월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적멸(寂滅)’ 혹은 ‘사마타(Samatha)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월 속에는 불상의 머리 광배(光背)인 두광(頭光)의 문양을 그려 넣었다. 특히, 기원 5세기 전후 인도와 동방 각국의 불상에 표현된 두광 문양을 그려 넣었다. 이 시기 동방으로 뻗어 나간 빛의 여정을 사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명을 ‘갠지스강 위의 만월’, ‘다퉁을 밝힌 만월’, ‘사비성에 뜬 만월’, 등, 불상이 조성된 곳의 지명이나 도시명을 붙인 이유도 빛이 머문 도시와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불교미술은 인도를 비롯한 동방 곳곳에서 개성 있는 빛깔로 피어나고 있었다. 인도는 굽타 시대로 사르나트나 마투라 지역의 불교조각과 아잔타 석굴의 벽화 등, 인도적 불교미술이 만개하였으며 한편으로 인도의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이 『청정도론』을 집필하여 삼장(三藏)이 정립되고 삼매 수행이 활발히 일어났다. 동방에서는 다퉁, 평양, 사비, 서라벌, 아스카 등, 도시의 염원이 담긴 불교미술이 새롭게 꽃피고 있었다.
만월에 두광 문양을 그린 또 다른 이유는, 수행자가 불상을 바라보며 부처님의 상호와 공덕을 생각하고 삼매에 빠지듯, 만월 속에 새겨진 부처님의 빛 문양을 바라보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생각하고 자신을 바라보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두광은 부처님의 머리에서 발산하는 빛으로 깨달은 자에게서 나타나는 ‘아우라(Aura)’ 이자 세상을 밝히는 ‘광명(光明)’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핸드폰을 기반으로 24시간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를 마주하며 살고 있다.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를 쉴 새 없이 접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을 챙기고 성찰하는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동시대인의 이러한 삶을 보며, 그들이 ‘관심(觀心)’에 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만월 작업이다.
관심(觀心)은 “자기 마음의 본성을 밝혀 관조(觀照)하는 것”으로 고요와 평온에서 ‘마음 챙김 (Mindfulness)’이며, 만월 작업은 고요와 평온으로 이끄는 하나의 표상을 시도한 것이다.
“ 관심(觀心)은 고요와 평온에서 자기 마음 챙김이며 나의 만월(滿月)은 마음을 고요와 평온으로 초대하는 문이다. ”
첫댓글 박경귀 작가님의 아름다운 전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