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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천재 학자 류희의 삶과 업적을 집대성한 책”
한글의 우수성과 문자구조의 정교함을 알린 『언문지』저술, 200주년!
서파(西陂) 류희(柳僖, 1773~1837)는 조선 후기의 재야를 대표하는 실학의 거두다. 류희는 오늘날 국어학 연구의 보배로 꼽히는 『언문지(諺文志)』, 『물명고(物名考)』를 포함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100여 권의 백과사전적 저작 『문통(文通)』과 1500여 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이런 어마어마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류희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마도 그가 용인현 모현촌 일대에 은둔해 살면서 평생 학문에 매진하면서 살았던 탓일 것이다. 2005년, 행방이 묘연했던 100여 권으로 이루어진 백과사전적 저작『문통』이 기증되자, 학계가 들썩였다.
『문통』은 경학, 문학, 음운학, 춘추학, 수학, 천문학, 역학, 의학, 음악, 농어충수, 측량학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 평생 한 분야에 족적을 남기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인데, 류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면서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섭렵했고, 그 근본을 꿰뚫었다. 당대의 의식 있는 학자들은 류희를 “천하의 기재”라고 칭송하였다. 그는 “죽어서도 책벌레”가 되겠다면서 본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것은 그의 학문적인 열정과 노력(誠()뿐 아니라, 실제 본인의 처한 현실, 은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최선을 다한 데에 있다. 누가 보아주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학문을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죽을 때까지 정진했다. 고독과 울분의 감정을 다스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놀라운 인품이기도 했다.
은둔의 천재, 학문에 대한 노력과 열정의 위인, 류희
다양한 방문의 학문을 키우기 위한 어머니 이사주당의 노력
『서파 류희의 삶과 학문 이야기』는 초인의 힘으로 거친 세상을 살며 거대한 학문적 결실을 맺은 류희의 고단하고 치열했던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다. 류희는 18세에 급제하였다. 천재적인 그의 학문과 노력은 그의 재능을 널리 돌아보게 하였으나, 옳은 말을 바로 직언하는 성격 탓에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극심한 당시 시대에서 능력을 펼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또한 노론과 소론의 파벌, 각종 사화로 조선의 정세는 더욱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저자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류희의 삶의 궤적을 따라 보며, 그가 어떻게 이런 품성과 학문적 열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며,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현대인에게 그의 삶의 얼마나 귀감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류희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그의 어린시절, 그의 집안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키우는데 모든 것을 집중했던 그의 어머니의 이사주당의 육아 교육관도 이 책은 함께 담고 있다. 류희가 어린 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천재임을 알아본 어머니는 기초적인 천자문부터 종이에 한 글자씩 써서 방바닥에 늘어놓고 이사주당이 한자음을 말하면, 어린 류희가 기어가서 한 글자를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사주당은 100글자를 묶어서, 돌쟁이인 류희에게 가르쳤다. 류희는 돌이 되기 전에 글자를 뗐고, 2세 때는 사자성구를, 3세 때는 글을 지었다. 류희는 어머니의 교육관 속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깊이를 보여주었고, 품성을 기르고 인격을 완성시키는 예술관을 키우는 데도 힘썼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 예술로 꽃피우다
대한민국 현재에 교감이 되는 조선의 대학자, 류희
류희는 평생 10여 권의 시집을 통해 1500여 편의 시를 썼고,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다양한 교감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 분야의 창작과 비평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깊이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때론 소박하면서, 때론 여유 있는 삶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문화는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류희가 가진 문화적 저력은 이런 점에서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대한민국의 현재의 멘토로 류희의 삶과 학문은 많은 길을 보여준다. 『서파 류희의 삶과 학문 이야기』를 따라 읽으며 우리는 시대, 가문의 비운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통해 시대를 앞서는 업적을 냈던 그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류희가 가진 열성을 익힌다면 우리의 삶은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글) 김종경
동국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 단국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취득.. 2000년 계간 『블교문예』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기우뚱, 날다』(실천문학사, 2017), 『저물어가는 지구를 굴리며』(별꽃, 2022)가 있으며, 포토에세이 『독수리의 꿈』(북앤스토리, 20-16), 『용인, 그 위대한 여정_포토 & 히스토리 100년』(북앤스토리, 2016), 편저 『언론으로 본 용인 30년』 등이 있다.
저자(글) 박숙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사주당이 쓴 『태교신기』를 보급하고 있다. 저서로는 『박숙현의 태교신기 특강』,『태교는 인문학이다(북앤스토리) , 전국 태교 수기집 편저 『태교』(북앤스토리), 김성태, 박숙현 편저 『서파 류희와 진주류씨 독천공파』와 희곡 『처인성 』 ,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지사의 『마지막 증언』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출산정책의 문제점 및 행후 개선방향 연구』가 있다.
목차
접기
책 속으로
2024년은 류희가 『언문지』를 저술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류희는 한글을 언문으로 낮춰 부르고 선비들이 한글을 외면하던 조선시대에 책에 당당하게 『언문지』라는 제목을 붙이고, 표음문자인 한글의 우수성과 문자 구조의 정교함을 연구하여 한글 연구의 단서를 제공했다. 한글 연구의 선구자인 류희는 조선 최고의 음운학자, 언어학자, 국어학자로 불리고 있으며, 그가 펴낸 『물명고』 역시 방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조선 최고의 어휘 사전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그는 1,500여 수의 시를 지었고, 15권의 시집을 엮은 대단한 시인이기도 했다._7-8쪽
이 책에서는 또 류희의 저작인 『문통』은 물론 그의 어머니 이사주당(李師朱堂, 1739~1821)의 『태교신기(胎敎新記)』에 대해서도 개괄하였다. 류희와 이사주당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술된 이 글이 어른들은 물론이고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읽혀 이들모자와 관련된 수많은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초적 교양서가 되기를 바란다. _ 8쪽
서파 류희는 용인현(龍仁縣) 모현촌(慕賢村) 일대에 은둔해 살면서 평생 학문에 매진한 조선 후기 재야 실학의 거성이다. 그는 한국학의 위대한 결정체인 『문통』을 남겼다. 그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문통』 100여 권을 지난 2005년 진주 류씨 문중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공식 기탁하자 학계가 떠들썩했다. 이후 류희는 일거에 무명에서 벗어나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에 버금가는 대실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문통』은 평생 통달하지 않은 분야가 없던 류희 학문의 집대성이다. 경학, 문학, 음운학, 춘추학, 수학, 천문학, 역학, 의학, 음악, 농어충수, 측량학 등 전통 시대 학문의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 이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한글 연구서 『언문지』다. 한글을 언문이라 하찮게 여기던 시대에 표음문자인 한글의 탁월성을 갈파한 저술이다. 조선의 생활 및 생물학 분야를 아우른 획기적인 어휘 자료집 『물명고』 역시 역작이다. 이 두 저술은 국학 관련 귀중한 연구성과로 대한민국 한글 100대 유산에 선정되었으며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류희는 또한 춘추학 최고의 대가이며, 19세기 조선 최고의 고증학자였다. _11쪽
류희를 말하면서 학계나 문중에서는 타고난 천재였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주목하는데 어쩌면 이는 류희를 잘못 이해한 것인지 모른다. 류희가 천재였음이 틀림없지만 이는 어머니의 태교와 교육에 의해 토대가 만들어졌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오늘날의 구구단에 해당하는 구장산법(九章算法)을 익히는 등 다양한 학문적 교육을 받음으로써 틀이 잡힌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교육 아래 타고난 영민함에 다양한 지적 호기심이 더해져 천재가 완성된 것이다.
제아무리 머리가 비상해도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 높은 수준의 학문을 소화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들 공부가 죽기보다 싫으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열 가지를 모두 잘하는 사람은 있어도, 열 가지 모두 못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공부하기가 “진짜 죽는 것보다 싫은” 아이는 없다. 공부가 싫은 이유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결 방법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다. 류희의 부모가 그러했다._21쪽
진주 류씨 목천공파 문중에는 류희가 재주가 뛰어났으나 어머니 사주당의 권유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양반 가문을 평가하는 척도가 문중에서 얼마나 많은 과거 급제자와 삼공육경의 관직에 오른 조상이 있고 없는가로 판가름되던 세태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류희가 벼슬을 하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별로 없지만, 그가 남긴 저작물과 사적인 기록을 종합하면 그는 한 세기에 한두 명 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천재였다는 것이 확실하다. _50쪽
100여 책의 거질로 이루어진 『문통』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모든 학문 분야에 통달한 류희의 저력을 과시한다. 시문학, 경학(經學), 춘추학, 역사학, 성리학, 훈고학, 음운학, 예학, 천문학, 수학, 역학, 기하학, 측량학, 동물학, 식물학, 의학, 음악 등 전통시대의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관한 저술이 담겨 있다.
류희의 『문통』을 구성하고 있는 저작들을 보면 유학을 바탕으로 한 정치와 통치에 관련한 저서는 없다. 반면에 사물의 근원과 이치를 비롯해 당시에는 잡학으로 분류되는 분야에 대한 저술은 넘쳐난다. 이것은 그가 현실 정치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류희가 특별한 것은 당시 사대부들에게 관심 밖이던 언문, 수학, 의학, 생물, 지리 등 국어학과 자연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 때문이다. 류희의 학문 성격은 성리 논변에만 골몰했던 당시 유자들의 풍조와는 달리 온갖 지식을 두루 포괄한다. 류희는 스스로 어릴 적부터 박통(博通)에 병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 다양한 학문에 목말라했다. -77쪽
류희는 천재적 시인이다. 류희는 1,500여 수에 이르는 많은 시를 남겼다. 류희가 어휘 사전인 『물명고』에서 보여준 풍부한 어휘력은 시를 짓는 바탕이 되어 시의 주제와 형식과 표현을 풍부하게 했다. 류희의 시는 현대 시문학 장르로 구분하면 서정적 리얼리즘 계열로 볼 수 있다. 조선 양반들의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관각체 양식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이며 파격적이고 과감한 시와 문장을 추구해 근현대 문학의 여명을 밝혔다고 할 수 있다. 류희는 당시 위정자들의 잘못과 세상의 불공평함을 비판하고, 가난한 민초의 고통스러운 삶에 공감하는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류희는 피죽새로 불리는 직박구리 울음소리를 빗대어 피죽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하는 가난한 백성들의 살림을 ‘피죽피죽’이라고 묘사했고, 소쩍새에서 솥이 작다고 표현하는 금언체(禽言體) 시를 짓는 등 현대시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된 시어를 구사했다. 새 울음소리에 비유해 관리들의 수탈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현함으로써 사회 고발적 리얼리즘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기본정보
ISBN발행(출시)일자쪽수크기총권수
9791198134196 |
2024년 05월 04일 |
170쪽 |
145 * 211 * 15 mm / 383 g판형알림 |
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