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한 삶을 위해 도전하는 여행자
황경순 (시인)
손용상 시집 『연(緣),연(鳶),연(蓮)…바람이 숨 죽이자 꽃이 되어 돌아왔네』
시선사
갈 숲에 숨어살던
자그마한 새 한 마리
간밤에 태풍 불자 어디론가 날아갔다
바람이
숨을 죽이자
꽃이 되어 돌아왔네
눈길을 치어 드니
불타는 노을 속에
새 되어 날아가는 연꽃무늬 방패 연
어이타
연과 연꽃이
인연因緣으로 닿았는가/
그 사이 서천西天가서
묘음조妙音鳥를 만나셨나
빙그레 짓는 미소 그 뜻을 모르겠소
가섭迦葉님
오시라 해서
왜 웃었나 물어볼까
―「연(緣) 연(鳶) 연(蓮) -바람이 숨 죽이자 꽃이 되어 돌아왔네」 전문
손용상 시인이 긴 제목의 시집 『연(緣),연(鳶),연(蓮)…바람이 숨 죽이자 꽃이 되어 돌아왔네』를 상재했다. 이번 시집은 그 동안 쓴 시들 중 다시 데려온 것들도 있고 새로이 쓴 시들을 함께 묶었다고 한다. 홍매를 시작으로 하여 여러 가지 꽃들, 그리고 지난 날 사라지는 것들도 들어가 있다.
그 중 이 시는 필자가 최근 월간문학 4월호에 발표한 “연蓮, 연然, 연緣”이라는 시와 제목이 비슷하여 참 공교롭다는 생각을 하며 골랐다. 이 시는 시인의 최근의 생각을 가장 집약하여 담은 듯하고, 인연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갈 숲에 숨어살던/자그마한 새 한 마리”가 태풍 지난 후 “꽃이 되어 돌아왔”다. 새가 “불타는 노을 속” 훨훨 날아가는 “연꽃무늬 방패 연”이 된 것이다. 묘한 여운을 주는 시다. “연(鳶)과 연꽃이” 어떻게 만났을까? 인생의 허무를 개탄하는 듯하면서도 인생을 달관하는 자세가 공존한다. “그 사이 서천(西天) 가서/ 묘음조(妙音鳥)를 만나셨나”에서 보듯 인도나 서역으로 가서 묘음조라는 봉황 같은 상상의 새를 만나기도 하고, 염화시중의 미소로 선법을 전파한 가섭에게 물어본다고 한 것은 그만큼 인생을 관조하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40여 년을 외국에서 살면서 타국 생활의 어려움과 육체적인 아픔도 와서 절망했지만, 문학, 시라는 끈을 잡고 새로운 에너지와 여유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새가 되고 연이 되고 꽃이 되어 이 곳 저 곳 세상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의 산문 중에서 “여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단히 늙음과 낡음을 서로를 비교하면서 때로는 시도 쓰고 산문도 쓰고 노래도 배우는 윤기 있는 늙음-그 ‘새로움’으로 나이테를 그려간다면, 인생의 무게는 그만큼 더 보람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 그만큼 원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몸은 늙어 가도 늘 새롭게 도전하는 끝없는 정신이 부럽고, 그 여유와 끈기로 더 많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