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49호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1:12~13)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소원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 성도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들을 기도원으로 불러 부녀관계를 회복시켰고, 아울러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이제는 딸을 회사로 불러들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말대로 딸을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켰습니다. 그런데 막상 딸이 회사에 나가보니 회사 직원 모두가 그야말로 엘리트였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굴지의 기업에 첨단장비를 납품하는 회사이니 당연히 엘리트 집단이었던 거지요. 딸이 자신을 돌아보니 그들에 비해 너무 아는 게 없고, 학벌도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두려움과 좌절과 열등감에 휩싸였습니다. 딸은 급기야 저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누구냐?”
“회사 사장님입니다.”
“맞아, 네 아버지가 사장이야. 넌 그의 딸이고. 네 신분을 알아야지. 아무리 엘리트라고 해도 그들은 직원일 뿐이야.”
“아~~~, 그러네요….”
딸은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된 후로 당당해졌고, 딸의 신분을 알게 된 직원들은 당연히 태도가 달라졌다는 후문입니다.
학벌이 남들보다 못하다고, 아는 게 없다고 사장 딸이 아닙니까? 천만에요. 못나도, 배운 게 없어도 사장 딸이 맞습니다. 그리고 사장 딸이기에 잘난 직원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귀하디귀한 자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우리가 잘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나요? 우리가 아는 게 많아서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셨나요? No.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에베소서 1장 4~6절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장 딸이 회사에서 주눅 들고, 사원들을 두려워한다면 문제가 있지요? 그런데 우주 삼라만상을 지으시고, 이를 주관하시며, 우리 인간을 만드신,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만물 앞에, 만인 앞에, 어떤 상황 앞에 두려워한다면 말이 됩니까?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나님 아버지가 뒤에 떡하니 버티고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믿는 구석이 있는데 뭐가 무섭습니까? 원수들이요? 그거 티끌처럼 하나님이 불어버리십니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사41:11~12).
재앙이요? 그것도 하나님 자녀에게는 엄습하지 못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염병이요? 그것도 하나님이 방어벽을 치십니다.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시91:3~4).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하셨기 때문이고,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빼앗겼지만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26:24) 하셨기 때문이며, 야곱이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도 좌절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질 위협에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질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담대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셨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뭐가 무섭습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버지께 고하면 됩니다. “아빠~, 이거 해주세요.” 하면 됩니다. 힘든 일이 있걸랑 “아빠가 알아서 해줘요.” 하면 되고요, 두려운 일이 있으면 “아빠~, 같이 가요.” 하면 됩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거든요.
제 목회 40년은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를 걷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최루탄과 칼의 위협, 수많은 검찰과 경찰의 조사, 온갖 누명과 핍박이 난무했었습니다. KGB에도 끌려가고, 제가 머물고 있던 호텔을 폭파하겠다는 위협, 자동차가 뒤집히고, 비행기가 추락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자식이 위협당하고 위험에 처하는데 보고만 있겠습니까? 어느 아버지가 자식이 죽는 꼴 보고 있겠습니까? 힘없는 부모도 무슨 짓이든 해서 자식을 살릴진대, 전지전능하신 우리 아버지가 그냥 보고 있겠습니까? 그러니 두려울 이유가 없지요.
여러분, 두려움을 이기고 싶지요? 두려움을 이기려면 성령 충만을 받으면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심이 믿어지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그냥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5~16). 그래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 것에, 내가 그분의 자녀인 것에 살짝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귀신이 틈을 타고 들어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간질을 하여 완전히 남남을 만들어놓습니다.
여러분, 두려워하면 악한 마귀가 틈탑니다. 개도 사람이 두려워하는 진동을 느끼는데, 영물(靈物)인 마귀가 우리 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사나운 파도도 선장 마음을 읽는다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은 어린 다윗처럼 담대하세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도 담대했던 사도 바울을 닮으세요.
사면초가인 상태입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는 홍해를 갈라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앞에 여리고가 떡 버티고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이것도 손 하나 안 대고 무너뜨릴 수 있는 분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이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할렐루야!
두려움은 삶의 암적 존재다
믿는 데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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