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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려면’, ‘배우는 힘’을 잘 키워야 한다.
배우는 힘을 키우자는 말을 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우는 힘이 약한(부족한) 사람을 잘 살기 어렵다. 배우는 힘(능력. 근력)을 나는 ‘학력(學力)’이라고 부른다. 본래 학력의 사전적 정의는 ‘배움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이다. 또는 ‘학문의 실력’이라고 되어 있다.
학교에서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흔히 학력은 성적과 석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적이나 석차는 학력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는 학력은 ‘삶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능력’ 또는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학력을 ‘배우는 힘’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삶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능력(힘)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성적이 다소 부족해도 잘 살 수 있다. ‘삶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성적과 석차가 또는 그에 따른 학벌(학교 교육을 받은 정도. 또는 출신 학교의 수준이나 등급)이 다소 뒤져도 주어진 여건이나 환경에 잘 적응하거나 어려움이나 장애물을 잘 헤쳐 나간다.
그러나 성적과 석차와 학벌이 좋다고 해도, ‘배우는 힘’이 약한 사람은 삶의 문제들을 잘 헤쳐 나가지 못하고, 그에 따라 삶도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는 경우가 많다. 삶이 매암(제자리에서 뺑뺑 도는 장난) 놀이가 된다. 발전과 진보가 없다. 그러니 성취감도 자신감도 자존감도 맴맴인 경우가 허다하다.
배우는 힘을 키우자! 배우는 힘이 센 사람은, 성적과 석차와 학벌에 상관없이 자신감을 갖고 어떤 일들을 성취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존감도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배우는 능력은 어떻게 키우는가? 돈과 힘을 덜 들이고 배우는 능력을 키우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메모의 습관화다. 기록의 습관화다. 적는 자가 생존한다. 적는 자, 글이나 그림으로 쓰고 그리는 자가 잘 생존한다. 글로써 쓰고 그림으로 그리려면, 노트가 필요하다. 먼저 문구점에 가서 적당한 부피(5,000~6,000원 정도)의 노트를 산다. 그리고 검은색, 붉은색, 푸른색의 볼펜을 산다. 형광펜이 있으면 더 좋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가 호기심과 관심이 있는 부분의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그 밖의 놀이를 하든, 하면서 그때마다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정보를 노트에 기록한다. 때로는 그림으로 그려서 기록하는 것도 참 좋다. 배움은 관심(호기심), 관찰, 관점, 관계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모든 일은 마지막 종착지는 ‘관계’이다. 인간의 삶은 관계에서 시작하여 관계(둘 이상의 사람·사물·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음)로 끝난다. 친구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형제자매 관계, 직장동료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 등등 모두 관계이다.
좋은 관계에 실패하면 많은 것이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지구환경, 자연환경과 관계를 잘 맺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환경과 자연환경이 인간에게 반발하고 반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도 폭설도 폭염도 폭우도 가뭄도 코로나도 그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나는 본다. 관계의 출발점은 긍정적이고 올바른 관심(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이다. 올바른 관심은 올바른 관찰(사물을 주의 깊게 살펴봄)을 낳는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지구에 무관심(관심이나 흥미가 없음)했다. 관심이 있으면 흥미(재미. 어떤 대상에 마음이 끌린다는 감정을 동반하는 관심)를 갖고 잘 관찰하기 마련이다. 잘 관찰하면 상대나 대상을 잘 알고, 잘 이해하게 된다. 이해된다는 것은 상대나 대상의 입장(처지)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부모님께 관심을 갖고 부모님의 삶을 잘 관찰을 하면, 부모님의 현재 입장과 처지가 좀 더 이해가 된다. 부모님을 이해하니, 부모님의 입장과 처지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있다. 엄마`아빠와 관계가 좋아지면, 나도 엄마`아빠도 더 행복해진다. 관심이 관찰을 낳고, 관찰이 관점(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에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시각. 견지)을 낳고, 좋은 관점이 좋은 관계를 낳는다. 모든 것은 관계다.
이야기가 옆길로 갔다. 다시 본길(본디의 길)로 와서, 본인이 현재와 장래와 관심을 두고 있는 과목이나 분야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이 가장 먼저이다. 관심이 있는 분야(진로. 진학. 장래 희망. 직업 등)나 과목의 책이나 신문, 잡지, 뉴스, 유튜브 등을 접했으면, 그 가운데 나한테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노트에 기록하는 것을 해보자.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관찰에 따른 기록(적고 또 적고)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글. 그림. 영상. 실제 현장 등등)를 접하고, 그 정보를 노트에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인터넷 검색이나 인터넷 ‘사전(속뜻사전 등)’을 활용하여 찾고 또 찾고, 찾아서 적고 또 적는다. 언제까지. 이해될 때까지. 이해되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지 판별하는 방법은, 내가 이해한 정보를 엄마나 아빠 또는 친구에게 설명한다.
내가 나에게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나에게 설명하는 방법은 말로써도 그림을 그려가면서도 글로써 쓰면서도 가능하다. 말이 글이고 글이 말이다. 글과 말을 줄인 것이 그림이다. 인간의 뇌는 머리에도 있지만, 손에도 있다. 손을 움직이면 뇌도 움직인다. 손이 딴짓(펜을 돌리고, 지우개를 자르고 등등)을 하면 뇌도 딴짓을 한다. 즉 뇌가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손이 뇌다. 뇌를 집중시키려면 적고 또 적자.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보자.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정보를 접하면서 노트에 기록한다. 인터넷이나 사전 등을 뒤적거리며 찾고 또 찾는다. 이해될 때까지. 이해되면 나나 타인에게 설명을 한다. 이렇게 배우는 능력을 키워 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간다. 그러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 물론 정보를 찾고 또 찾고, 적고 또 적고 그리고 또 그리고 하다며보면, 그 길로 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길로도 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길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더 좋은 길이 보일 수 있으니까.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수한 것도 아니다. 실패와 실수는 시행착오(실제로 행하여 얻어지는 잘못. 지식이나 기술을 얻으려고 실행하다가 실패하는 것)는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학력을 키우려면, 그 분야에 대한 용어(낱말)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용어, 전문용어에 대한 나만의 개념(대충 이러이러하다. 대강의 생각. 대강의 내용)이 생겨나야 한다. 그 분야의 용어에 대한 나만의 개념이 생기면, 사고력을 저절로 만들어진다. 수능시험은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세상엔 아직 창의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테스트는 없다.
개념력은 이해력을 낳고 이해력은 사고력을 낳고, 사고력은 창의력과 창조력을 낳는다. 개념력과 이해력이 없이는 사고력(생각하고 깊이 연구하는 힘)과 창의력(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능력)과 창조력(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결단코 생겨나지 않는다. 그게 뭔지 모르는데(개념 형성과 이해가 되지 않음), 그것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나 나만의 독특한(특별한) 생각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개념력과 이해력을 만드는 방법은 끊임없는 사전 찾기(속뜻사전 등)이다.
인터넷 검색이다. 찾고 검색한 것을 그냥 두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트에 적고 또 적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 대상이나 상대 또는 사물에 대한 나만의 독특한 사고로써,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물건을 대상을 사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성공한다. 그런 사람은 잘 산다.
언어에는 구체어(구상. 사람이 감각으로 알 수 있는 형체와 내용을 갖추고 있는 일)와 추상어(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해서 파악하는 작용)가 있다. 쉽게 말하면, 구체어는 눈에 보이는 물건(사물)에 대한 언어이다. 책, 노트, 볼펜, 시계, 스마트폰, 총, 축구공 등은 구체어이다. 구체어는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니, 대충 이것은 무엇이구나, 대충 이것은 뭘 하는 것이구나 하는 개념이 쉽게 만들어진다. 구체어는 개념이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험문제에 잘 출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추상어다. 추상(抽象. 뺄 추)이란 대상이 사물이나 상대의 모습(象. 모양 상)을 뺐기 때문에, 모습이 잘 보이지 않거나 모습(모양)이 없다. 모습과 모양이 잘 보이지 않거나 없으니, 개념(대충 이러이러하다)을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화가들이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천재화가 피카소는 추상화를 그려서 떼돈(졸지에 한꺼번에 많이 생긴 돈)을 벌었다.
안타깝지만 이놈의 추상어가 주로 시험 문제에 나온다. 그러니 시험을 잘 보고자 하는 사람은, 문제를 잘 풀고자 하는 사람은 추상어에 대한 개념력과 이해력을 높여야만 한다. 역사, 철학,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 민주공화국 등등은 추상어이다. 개념력은 이해력을 키우고 이해력은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고, 사고력과 논리력은 창의력과 창조력을 낳는 것이다. 창의력과 창조력은 개념력과 이해력에서 나온다.
이제 결론으로 가자. 배우는 능력인 학력을 키우는 사람은 잘 산다. 배우는 능력은 노트에 대한 기록과 노트에 내가 이해한 정보를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하는 것으로 잘 키워진다. 또한 개념이 생기지 않고 모르고 이해되지 않는 정보는 이해가 될 때까지 사전 찾기와 인터넷 검색을 반복하면서 적고 또 적는다. 이해한 것을 도면(圖面. 구조나 설계 따위를 제도기를 써서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그림)으로 그리고 또 그린다. 이해한 것을 나만의 마인드맵으로 만든다. 이렇게 시험공부든 삶의 문제든 모든 것을 이러한 방식(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몸에 배게(버릇이 되어 익숙해지다) 하는 사람은, 다소 다른 사람보다 성적과 석차와 학벌이 뒤처져도 잘 살 수 있다. 잘 생존한다. 적는 자는 뇌를 움직여 잘 생존한다. 손이 뇌다. 손이 가는데 뇌도 따라서 간다.
배우는 능력인 학력(學力)이 나를 잘 되게 한다. 그러니 공부 못한다고 너무 자책(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나무람)하지 마라. 성적이 점수가 석차가 낮다고 너무 속상하거나 스스로를 찌질이(지지리도 못난 놈)라고 생각하지 마라. 자신을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런 생각은 내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너는 너다. 당신은 당신이다. YOU는 I가 아니다. 너는 배우는 능력인, 학력으로 너의 일생을 세심하게(작은 일에도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 빈틈이 없다) 배려(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하기 바란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너에 대한 예의이고 친절이다. 너를 함부로 대하거나 너의 잘 됨에 네가 소홀히 하는 것은, 너 자신에 대한 결례(예의범절에 벗어나는 짓을 함. 또는 예의를 갖추지 못함. 실례)이고 무례(無禮. 예의가 없음. 예의에 벗어남)이다.
수학과 과학 등의 시험 문제에는 정답(정해진 답)이 있다. 시험은 오답이 아닌 정답만 적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으니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해답이다. 좋은 삶, 건강한 삶, 나나 너나에게 모두 덕분(긍정적인 보탬이 되는 것)이 되는 삶의 해답은 있기 마련이다.
그 해답을 학력으로 찾아서 행복하게 잘 살아 보자. 나는 나다. 너는 남을 존중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듯, 너를 존중하는 것도 당연하고 소중하다. 너는 너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 너는 너에 대해 함부로 무례히 굴지 말기 바란다. 배움의 근력인 학력을 키워서, 너를 너답게 만들어 보라. 그곳에 너와 나의 행복이 봄날 버들강아지처럼 움트고 있다.
<작성자 최우창>
첫댓글 나이가 먹을수록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배우면 뭐하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일수록, 주변에 보면 나이가 먹을수록 더 성숙해야 되는데 도리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