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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손님 대부분이 셀프주유소가 아니라서 좋다고 했다. 주중에는 혼자서도 여유롭게 일한다. 하지만 주말에는 손님이 많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아들 녀석이 주말 에만 출근을 한다.
주유소에 진입했는데 깜빡이를 끄지 않은 모닝 자가용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손짓으로 앞으로 더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손짓을 무시한 모닝 자가용이 그대로 멈췄다. 주유기 문이 열린다. 기름이 나오는 호스를 잡고 주유기에 꽂으려는데 공간 확보를 해주지 않은 차주 때문에 몸이 불편했다. 이렇게 자가용을 세우면 주유하기가 불편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모닝 차주가 자가용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사장님 이만원요.”
이만원이라는 말에 움찔하여 손님을 힐끗 보았다. 혹시 저 손님인가? 언제였을까. 아들이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모닝 차주가 현금 이만원으로 주유를 하고 현금영수증을 떼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이만원이 아닌 이십만원을 현금영수증으로 떼 주었다. 아들은 현금영수증을 모닝 차주에게 건네며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도 되는지 물었고 모닝 차주는 “네”라고 대답을 했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아들 머리통을 세게 내리치며 장사를 그렇게 하면 주유소 망한다고 불같이 화를 냈었다. 아들은 얻은 맞은 머리를 긁적이며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었다. 웃고 있는 아들이 바보 같기도 하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열린 주유기로 기름 들어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아들 인생도 저렇게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무탈하게 지내니 내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문제 될 일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하나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면 기름 없는 자가용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딸깍 소리가 나를 흔든다. 주유기 뚜껑을 닫고 모닝 차주에게 다가가 반드시 물어보리라. 왜 내 아들이 전화해도 되는지 물었을 때 네 라고 대답을 했는지. 조금 전 얼핏 보니 아가씨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단호하게 “아니요.” 로 응대 해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모닝 차주도 자녀가 있을 터이니 내 심정을 백번 천번 이해할 것이다.
모닝 차주가 신용카드를 내민다. 현금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신용카드를 내미는 모닝 차주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단말기가 고장이 나서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놈의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래저래 속이 상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시선은 조수석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오른손에 가 있다.
신용카드를 받아들며 자가용 안을 살펴보니 조수석이랑 뒷좌석에 빼곡하게 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출이라도 한 것일까.
“여사님 날도 추운데 어디가십니까?”
“기차역에 동생 마중 가는 길 이예요.”
그녀의 목적지가 친정이나 시댁이었으면 자연스럽게 현금영수증 사건을 거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 마중이라니.
“사장님은 연세가 많아 보이는데 일을 하고 계시네요. 너무 멋지셔요. 입 심심할 때 이거 드세요.”
그녀가 과자 한 봉지를 나에게 건넨다. 행여나 나에게 하듯 내 아들에게도 이런 칭찬의 말을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아들은 그녀의 칭찬에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나 역시 너무 멋지다는 칭찬 한마디에 그녀를 두고 가졌던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네 라고 대답했지만 아들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니다. 전화를 걸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내가 핸드폰 번호가 찍힌 영수증을 갈기갈기 찢어서 휴지통에 넣었으니 무슨 수로 전화를 한단 말인가. 그사이 8개의 숫자를 기억할 만큼 아들은 영리하지가 않다. 잘 마무리 된 일을 굳이 들추어 손님을 기분 상하게 해서 돌아가게 하는 건 주유소 사업을 운영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꽂았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단말기가 심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그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주유소에서 나는 소리 중에 주유기에 기름 들어가는 소리와 단말기가 내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내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고장이 났지만 병원을 뒤로 하고 출근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저 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아들 인생도 저렇게 경쾌하게 흘러가 나를 기분 좋게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신용카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어 자가용 창문이 서서히 닫힌다. 멀어져가는 모닝 자가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의 몸무게 보다 더 무거 울 것 같은 짐 때문인지 자가용이 비틀비틀 거린다. 아직 살날이 더 많아 보이는 그녀. 그녀가 준 과자봉지가 손에 들려있다. 봉지를 찢어 과자 하나는 입에 넣었다. 달콤하다. 그녀의 인생도 과자처럼 달콤한 날이 거듭 연속되기를 바래 본다.
현금영수증에 적힌 핸드폰번호를 보고 있는 아들은 해맑고, 환하게 웃고있었다. 얼마 만에보는 웃는 얼굴 인지 기억이 가물 가물 하다. 집에서 뒹굴 뒹굴 놀고 있는 아들을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잔소리를 했다. 아들이 잔소리를 원하지 않는걸 잘 알면서도 우리 부부의 잔소리는 녹음기를 켜 놓은 듯 반복 되고 있었다.
오늘은 퇴근길에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사서 들고 가야겠다. 아들이랑 피자를 먹으며 모닝 차주 그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 아들아 오늘 모닝 차주 그녀가 시댁 가는 길에 우리 주유소에 기름을 채우러 왔더군아. 주유하는 동안 어디 가는 길이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시댁에 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아. 글쎄 나보고 연세도 많으신데 청년 아들에게 주유소를 운영할 기회를 주라고 하더군아. 주말에는 바쁘니 주말아르바이트를 해서 아들에게 월급을 받으라는 말도 곁들여서 하더군아. 아들 생각은 어떠냐?”
아들이 주유소 운영을 하는 동안 영리하고 예쁜 아가씨가 손님으로 와서 아들이랑 눈이 맞았으면 좋겠다. 그땐 현금영수증을 20만원이 아닌 2백만원을 결제 해주어도 아들 머리통을 후려갈기지 않고 오히려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주말아르바이트를 내가 아닌 모닝 차주를 닮은 여자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싶다.
“급구 : 00 주유소 주말 알바 구합니다. 조건 : 긴 생머리에 머릿결 좋고 건강미가 넘치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