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소설가 이병욱님의 실화장편소설을 읽고>
이병욱(李炳旭)작가는 현재 춘천문협회원이고 개인적으로 교직에 같이 근무한 후배이기에 그의 세번째 소설집은 더욱 반가웠다.
1973-74년 등단하기 전 문학청년시절 이외수,이병욱, 이병욱님 아버지 이형근 세남자가 어렵게 겨울을 나는 내용이다.
샘밭에서 이병욱님은 춘성고,나는 춘성중으로 한건물을 쓰면서 그는 국어선생, 나는 사회선생으로 더구나 춘고동문으로 만남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고등학교시절 두번의 소설입상과 강원대 학보사에서 열정을 쏟던 문학청년으로 널리 알려져 명성이 자자 했다.
누가 이 소설에 대해 문의를 했다. 실화가 얼마의 비중을 차지하느냐고? 저자는 답했다. 8대 2라고-.
이외수 소설가, 기인, 10년간 춘천교대를 다니면서 풍금을 못쳐 졸업도 못하고 가난으로 석사동 하숙집을 전전하며 글과 그림과 술로 하루를 살던 춘천출신들은 그를 모르는 이 없으리라. 그가 인제 객골분교 소사에서 뛰쳐나와 춘천에 와서 이병욱작가에 비좁은 누님네 사랑방에서 더부살이로 얹혀살던 그 시절을 회억하며 지내던 겨울을 쓴 소설-. 역시 기인다운 이외수작가와의 문학이야기를 가감없이 써내려간 실화 소설이다.
또한 이병욱님 부친 또한 당시 동국대 영화연극과를 나와 제지공장, 인쇄소가 망하고, 예총도지부장을 하시며 연극에 몸바치시다 결국 야산을 팔아 김유정문학촌 이전 김유정선양사업으로 문인비를 세우신다. 집안 경제는 돌보지 않아 집안은 사달이 나고 오죽하면 아버지와 등을 돌리는 식구들일까 -.
새대지로 등단하기 전 이외수가 이리저리 전전하며 끼니를 해결하는데 크게 일조한 이병욱작가, 사업이 망하시면서도 연탄긱매소를 하면서도 영업부장, 판매부장을 두는 등 뜬구름잡기로 허장성세하시며 상동광업소도 인수하시려던 부친 모두 세사람은 현실 부적응자이다.
나의 경우도 춘성여고에 근무시 고3생 들 수능, 대입고사가 끝날 때 당시 교동에 살던 이외수작가를 초빙해 강의도 듣곤했다.
강의가 끝나고 학교 뒤 남춘탕에서 대접을 하는데 술만 계속 들고 안주는 콩나물같은 개고기 한절음 뿐이다. 그러니 술은 곧 흠뻑취하고 그 때부터 혼잣말로 중얼거림을 당시 서울대 나온 교감(김두영)조차 무슨 말인지 몰라 웃을까 울을까 당황하기도 했다. 그 때 강의를 계기로 발동이 걸려 쓰던 소설을 한동안 미뤄 사모님께 꾸중도 듣기도 했다.
7-80년대 춘천에 교대출신들은 누구나 그와 지닌 추억들이 한자락씩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를 또 이외수를 잘 알아 보내온 책을 순식간에 다 보고 깊은 감회에 젖었다. 부자간의 갈등이 때로 아픔과 회한을 더하였지만, 문학인으로 선후배가 우정으로 문우로 한잔 술에 문학을 논하는 것이 진정 부럽기까지 하다. 부친 이형근님의 노고로 지금 김유정문학촌이 존재하게 됨도 알게 되었다. 여러 회원님들 一讀을 권한다.(8/28 德田)
- 선후배의 정을 남기기위해 제가 문맥을 만들었는데, 당시 이병욱작가(세번째)가 보고 형님 좀 어렵네요하고 멘트한 것이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귀에 쟁쟁하다. 한동안 침묵하던 이병욱작가의 큰 발전이 있기를 ㅎ
첫댓글 거진에서는 춘천이나 강릉으로 학교를 가면 하버드대 유학가듯이 부럼움으로 바라보았던 중학생 때가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