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껍질 밖으로 나왔시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최근 문해교육을 받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제12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을 개최하였다. 이 공모전에 1만7428명의 참가자가 한글 공부의 즐거움을 담은 시를 지어 냈는데 10명이 최우수상을 받았단다. 최우수상을 받은 10편 중 3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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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껍질 밖으로 나왔시유
/ 김 진 순 (82)
선상님!
평생 글을 모르니
달팽이 껍데기 속에 살듯이 답답했지유
이제 고속도로 지나갈 때
여주, 논산 무주 간판을 또렷하게 읽어요
달팽이가 껍질 밖으로 머리를 내민 것 같다니께요
칠십평생 한글 모르고 어째 살았는지 참말로
선상님! 제 이름은 김진순이고 동생은 김진선 인디
자매가 같이 댕기니 선생님이 쪼매 헷갈리셨을 거예유
동생이 원래 좀 무뚝뚝해도 언니보다 잘 배워서
언니 잘 못한다고 큰소리 내지만 지는 섭섭한 거 없네유
선생님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어유
처음에는 저처럼 이런 바보도 댕겨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지유
선생님께 너무 미안해서 얼굴도 못 볼 정도여유
그래도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유
앞으로도 열심히 해 보려고 해유 고마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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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네 내가 읽네
/ 박 문 옥 (68)
처음에 학교 올 때
태평역에서 기흥역까지
정거장을 손으로 꼽았습니다
안내하는 소리를 못 들을까봐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왔습니다
두 손이 꼭 차고
네 손가락을 더하면 내립니다
이제는 자막에 나오는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진짜 모를 줄 알았는데
못 볼 줄 알았는데
내가 보네 내가 읽네
이렇게 배면 읽을 수 있구나
기흥역까지 오면서 울었습니다
이제 한 자씩 잘 읽겠습니다
신기하고 기특한 일입니다
다른 것 다 필요없습니다
나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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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부는 내꺼 니 공부는 니꺼
/ 함 옥 순 (66)
난 죽을 먹어도 괜찮았다
자식들 입에 맛난거 들어가면 배불러지니
난 구멍 뚫린 신발도 괜찮았다
자식들 새운동화 신기면 내 발이 편해졌다
자식들 공부 시켜 박사 만들어
박사 모자 내 머리에 씌워줘도
그건 내 모자가 아니더라
늘그막에 학교 나와
돌아서면 잊는 공부지만 내 공부 하고 나니
이제야 가슴에 따뜻한 온기 돌며 세상이 보인다
공부는 참 신기해
대리만족이 안돼
//때 하나 묻지 않은 이들의 글은 닳고 닳은 글쟁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순박한 일상의 언어가 감동을 주지 않는가 말이다. - 이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