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교회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방문일 2021.1.16.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한 ㄱ자형 한옥교회
코로나 때문에 담밖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1908년 미국 남장로교회 데이트 선교사가 지은 교회다. 이교회의 개척공신이였던 조덕삼(후일 장로가 됨)과
그의 마부였던 경상도 출신 이자익 목사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상도 사람 이자익은 조덕삼의 집에 머슴으로 살았다고 함. 두사람은 데이트 선교사에 의해 함께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로 임명 받았는데, 교회를 건축하고 난 이듬해에 장로를 선출하는 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때 교인과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지주인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추천이 되었다.
반상의 신분을 철저히 따지던 시대에 이것은 충격적인 일이였다. 이에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조덕삼 영수는
발언권을 얻고 교인들에게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우리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이말을 들은 교인들은 조덕삼 영수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당시 놀라운 사건이였는데 조집사는 이장로를 집사의 직분으로 잘 섬겼고
이장로를 신학교에 보내 목사가 되도록 지원하여 후일 다시 자기 교회 목사로 청빙하여 지역 복음화에
헌신함으로써 신분과 지방색의 편견을 허물어 버린 이야기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지었는데 이는 당시 남녀 구별이 심한시대에 한쪽은 남자 다른쪽은 여자 신자가
나뉘어 예배를 보게함으로써 당시 남여구분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ㄱ자형 평면교회는 남여유별이라는 유교영향에서 발생되었지만 신자수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수월한
증축방식이라는 점에서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 문헌:문화유산 알아보기-
금산교회에서 10분 거리에 귀신사가 있다.
믿음이 돌아온 절 귀신사 대적광전
비로자나 삼불 좌상이 모셔져 있는 건물이다.
귀신사 뒷편 산 석탑으로 가는 길
이 지역의 화기를 누루려고 사자상을 만들었다고 함
등 위에 남근이 올려져 있다.
귀신사 대적광전의 부처
귀신사 전경
겨울 햇살이 맑으면서 차고 또한 찬란하게 비추는 날씨다. 공기가 깨끗한 그런 환경에 고즈넉히 자리한 귀신사.
귀신사에서 다시 15분 거리에 위치한 금산사
입구 계단에서 바라본 금산사의 대웅전
미륵전
겉은 3층 건물이나 내부는 하나로 되어 있고 그곳에는 커다란 부처님이 서 계신다.
법당안에 들어가면 부처님의 발 아래로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서 -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
부처님의 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영험하게도 소원을 들어 주신다.
전라북도 모악산 일대는 예로부터 내세지향의 미륵신앙이 결집된 곳이며, 구한말 증산교를 비롯해 민족종교와
신흥종교가 발상하고 융성하였던 지역으로 증산교의 시조 강일순 (호는 증산)의 탄생지도 있다.
금산교회에서 금산사로 금산사에서 귀신사로 넘어오면 조용한 전원풍경이 한가로이 펼쳐지며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다. 전주로 가는 길목이며 조금 가다가 1번 국도를 이용하여 논산-대전으로
올 수있는데 도로가 한적하고 반드시 잘 나잇어 고속도로 못지 않게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