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법인과 사성제
요기 : 위빠사나 수행에서 삼법인과 사성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행하는 선상에서 삼법인과 사성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사야도 : 삼법인과 사성제는 자기 지혜에 따라 이해하게 됩니다. 어때야 한다고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상>
일어나는 그것은 상관은 없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볼 때 항상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 이해되었을 때 그것을 무상이라고 합니다. 그냥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자체를 보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대개는 ‘일어나고 사라지진다. 생멸한다.’ 말을 하는데 사람마다 말하는 게 틀립니다. 어떤 사람은 ‘변한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단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자기 지혜에 따라 이해하지만, 어떻게 내가 이해하느냐?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것을 보는 것보다 일어남의 특성 , 사라짐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장소에 있다가 시원한 장소에 갔습니다. 뜨거움이 사라지고 시원함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뜨거움과 시원함 중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씩 하나씩 집중해서 보는 사람은 뜨거운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단지 지켜보는 사람은 뜨거움의 사라짐과 동시에 시원함이 일어남을 압니다. 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혜의 힘이 좋은 사람은 시야가 넓으니까 그냥 한꺼번에 다 봅니다. 이것이 사라지면서 이것이 일어나는 것을 같이 봅니다. 만약에 뜨겁고 시원한 것, 그것을 없애버리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일어나는 성질, 사라지는 성질 그것만 있습니다. 일어나고 난 뒤에 사라지는 것,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고 사라지는 것을 이해합니다. 자기의 지혜에 따라서 이해하는 것이 다릅니다. 보통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은 일어나고 난 뒤에 사라진다고 이렇게 이해합니다. 그것은 빤냣띠 밖에 안 됩니다. 무상을 이해하는 힘이 약한 것입니다.
빠라마타는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특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생긴 사람만이 지혜가 작용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혜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한다.’ 이렇게 딱 정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것을 내가 정말 이해했으면 그 지혜가 어떤 것을 볼 때마다 계속 작용을 합니다. 뭔가를 볼 때 마다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혜의 힘이 좋은 사람은 일어나고 사라진 뒤에 항상 하지 않다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그 순간에 딱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지혜가 자꾸 생기게끔 허락을 해야 합니다. 한번 지혜가 생긴 것 하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긴 것 하고는 다릅니다.
사띠와 지혜 이런 것들이 항상 합니까? 항상 하지 않습니까? 항상 하지 않으면 뭐 때문에 수행을 하려고 합니까? 일어나는 마음은 항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잠재력은 있습니다. 만약에 다른 종교인이 와서 물을 것 같으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 해주겠습니까?
‘항상 하지 않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뭐 하러 수행을 합니까?’ 이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계속 변하면서 항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잠재력은 계속 변화하면서 힘이 더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될 수 있고 아라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하지 않다는 그 말 한마디로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항상 하지 않은가?
그냥 되고 싶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원인에 의해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무상 하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상, 고, 무아를 한꺼번에 이해했을 때에 조금 전에 말한 그런 답이 나오게 됩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것 한 가지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일어나고 사라지는가?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는 무아의 지혜가 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의 지혜가 많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미 알았다.’ 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정도로 내가 안다.’ 이렇게는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을 절대 막지 마십시오. 아는 것이 더 이상 알아지지 않도록 막지 마십시오.
지금처럼 계속 1년 동안 수행해 나간다면 나의 지혜가 얼마나 더 증장 되겠습니까? 지금은 내가 제법 많이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년 동안 꾸준히 수행을 한 후 지금 내가 아는 것이 어떻게 생각이 되겠습니까? ‘지금 내가 알았지 예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려고 막 억지로 애를 쓰지 마십시오. 그냥 이해 할 수 있는 지혜, 이해하는 지혜가 나도록 그렇게 봐야 됩니다.
<고>
둑카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보통 그것을 번역을 할 것 같으면 괴로움, 고통, 그렇게 말을 하는데 실제로 둑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가지가지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둑카는 괴로운 그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둑카는 웨다나 둑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둑카는 … …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은 느낌의 둑카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깨달음의 지혜이기 때문에 둑카라고 이해했을 때는 괴로움은 없습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되면 낄레사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집착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게 이해를(깨달음) 하면 그것을 벗어난다고 그렇게 느껴집니다.
지혜가 날 때마다 날 때마다 마음에 느낌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그러한 성질이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그런 것은 정말로 깨달았을 때, ‘지혜라는 것이 어떤 것이다.’ 라는 것을 정말로 깨달았을 때, 벗어나는 느낌이 있게 됩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모하로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체험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해하는 지혜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 요기가 전에 계속 생멸, 생멸 하는 것을 보게 되니까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 생멸, 생멸하는 것이 언제 끝날 것인가? 언제 멈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생멸, 생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도사도 일어날 수 있고 로바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벗어나고 싶다고 하면은 로바,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그만 낙심(도사)하게 될 것입니다.
왜 벗어나고 싶습니까? 지혜가 둑카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를 했습니다. ‘아! 이건 참 괴로운 것이다.’고 이해를 했습니다. 지혜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둑카를 조금 보기는 했지만 그때에 ‘둑카는 괴로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로바, 도사로)딱 떨어지게끔 할 수가 있습니다. 지혜가 완전하지 못하니까 ‘괴로운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안되면 낙심하고 이러는 것입니다.
<무아>
‘항상 하지 않다. 괴롭다.’ 이렇게 되고 나면은 ‘내가 없다.’는 것이 거기에 들어와야 됩니다. 모든 것이 원인, 결과에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아는 지혜가 나와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 결과로 인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벗어나고 싶겠습니까? 벗어나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겠습니까? 내가 없는데…….
지혜가 완전히 채워져야 합니다. 한두 가지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가 없다는 것도 ‘내가 없다. 나도, 중생도, 개인도 없다.’ 그것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원인, 결과를 이해해야 합니다. 원인으로 인해서 이러한 결과가 된다는 사실 그것을 이해해야만 됩니다.
부처님 말씀 하신 것 중에 어느 곳이든지 간에 항상 원인, 결과를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사제도 그것뿐입니다. 집착 때문에 둑카가 생기고 도제로 인해서 멸제가 생깁니다. 그런 것들을 다 이해를 해야만 완전해집니다.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내가 뭐가 됐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큰 부자가, 거부장자가 된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됐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냥 물려받은 재산을 얻은 사람, 그래 가지고 부자가 된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해가지고 부자가 된 줄 모릅니다. 그냥 물려받은 재산 가지고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정말로 내가 깨달아서 이해한 사람은 괴로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인지 알아야 되고 무엇 때문인지도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도 알아야 되고 뭘 안하면 얻지 못하는가도 알아야 합니다.
지혜의 눈은 하나만이 아닙니다. 2.4.8…아주 많이 있습니다. 사제가 하나 끝나고 하나 이렇게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4가지가 보이는 게 아니라 한순간에 4가지를 다 알게 됩니다.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무 원인과 결과를 알지 못하고서 무조건 얻고자 하는 마음만 있어서 그게 참 어렵습니다. 노란색을 본다고 해서 그게 다 금이 아닙니다.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은 내가 그 가치에 맞았을 때 얻게 됩니다. 그 가치만큼 얻을 수 있는 원인이 있을 때 됩니다. 그냥 보통 것이 아니라 진짜라야만 됩니다. 사람들이 로바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로바가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에 대해서 자주 자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