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하여(6)
오늘 아침에도 내 귀는 현관문 쪽을 향해 있다. 그가 여는 문소리가 곧장 들릴 것 같다. 그는 나의 요양을 도와주는 분이다. 어쩌다 보니 홀로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 지경이 된 데다 질고까지 겹쳤다. 관계 기관에서 내 처지를 헤아려 보내준 분이다.
정해진 시각 무렵에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밤새 안녕을 묻는 인사와 함께 나의 하루에 필요한 일들을 챙겨나간다. 이내 몇 가지 찬이 어우러진 아침상이 들어온다. 텃밭 남새로 마련한 찬과 함께 집에서 보듬어온 정성도 곁들였다.
그가 여는 문소리는 요즘 내 삶의 고즈넉한 동력이고 희망의 시그널이다. 나는 그를 편안하고도 고마운 눈길로 바라지만, 그는 나의 눈길을 여밀 틈도 없이 바쁘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내 하루 소용되는 일들을 다 해 놓아야 한다. 지성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일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또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에게로 가서 나에게 하는 그 정성을 쏟는다. 워낙 몸과 마음에 밴 일이라 어디서나 손길이 익다. 나에게 와서 임무를 다하고, 자리를 옮겨 한 번 더 되풀이하는 것이 자기 생활의 리듬이 되어 있다.
내가 그 리듬을 깰 때가 있다. 주중 어느 한 요일은 나에게 질고를 뛰어넘어 생기 찬 날이 된다. 글을 좋아하는 이들과 만나 글 속에 담긴 삶의 희비와 고락을 즐겁게 나누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에 대한 기다림이 내 한 주를 힘내어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날이 되면 나는 활기에 넘치지만, 그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나의 그 즐거움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활 스케줄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일과 나중 일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양쪽 시간대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어느 날 그가 웃으며 했다.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그러면 아무 일 없을 텐데…….” 내가 말했다. “그러면 좋을까요? 그런 날도 없이 가만히만 있다 보면, 저를 돌봐주시기가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나도 웃었다.
“맞아요. 괜히 해본 소리예요. 기대할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 바람에 힘을 내실 수 있다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일 좀 바꾸는 게 뭐 대순가요?” 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요. 그 마음 때문에 저는 외로운 것도 아픈 것도 잊고 살잖아요.”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이슬이 반짝이는 듯했다. 내게로 옮아 오는 듯도 했다. 그의 불편을 딛고 내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아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안아주는 너그러움이 있기에 나는 불행 속에서나마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 공립 도서관 평생교육 과정의 하나로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글 속에 깃들인 삶을 서로 나누어 온 지도 수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했지만, 모두 마음도 글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워서인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일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그들을 만나 들려줄 이야기며 들을 마음을 준비하면서 그날을 기다리다 보면 신고身苦도 심고心苦도 나의 것이 아니게 여겨질 때가 많다. “기다릴 게 남아 있는 사람은 / 행복한 사람이다.”(김원호, 「행복한 사람」)라고 한 어느 시인이 말이 돌아보인다.
저 노을처럼 저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무얼 더 바랄 게 있을까. 그런 가운데서도 아침마다 기다리는 희망의 문소리가 있고, 글로 함께 마음 나눌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아늑히 행복한 일들이다.
시인의 말은 이어진다. “설사 그 기다림이 / 기다림으로 끝나버린다 해도 / 저문 길목에 서서 / 보고 싶은 얼굴을 기다리며 /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열고 / 숨죽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 기다림만으로 끝나도 괜찮다. 기다리기만 하다가 세상을 바꿀지라도, 기다림은 희망을 주고 그리움을 남기지 않는가. 크지 않아도 된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소소한 기다림이면 어떤가. 어쩌면 그런 소박한 기다림이 더 소곳하고 아늑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기다리며 살고 있는 그 ‘기다림’들은 어느 때가 되면 나를 떠나거나, 내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오지 않은 때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때도 아닌 걸 왜 미리 기다림으로 두어야 할까. 그때는 그때대로 오롯한 기다림이 있지 않으랴.
오늘 기다림은 나의 할 일이다. 나의 둘레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 기다림과 좋은 사람이 주는 희망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다지 않는가.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기다림이 있으므로. ♣(2024.8.1.)
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훌륭한 글이 마음을 맑고 밝게, 기운 나게 합니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시간이 온 것만 같습니다. 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인지 모르겠습니다. 분주한 날들로 카페 문도 열지 못했는데, 이제 그 분주한 날들이 또 다른 기다림이 된 듯합니다.
선생님 글은 순수로 눈물 고이게도 하고, 마음 짠하여 때로는 아픕니다. “저 노을처럼 저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무얼 더 바랄 게 있을까. 그런 가운데서도…” “저 노을이…” 왜 이렇게 마음을 짠하게 하는지…
선생님! 기다림 너머에 선생님께서 기다리는 행복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셔서, 마음 담은 글도, 가르침도, 행복한 기다림을 간곡하게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제게 오늘부터 일손을 보태 달라는 곳이 있어, 당분간 조금 바쁘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강녕하게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귀엽고 사랑스런 손주들과 바쁘고도 즐거운 시가을 잘 보내셨겠지요?
오랜만에 선생님의 글을 대할 수 있어서 반갑고도 고맙습니다.
또 그런데 일손을 보태달라는 곳이 생겼다고요?
그러면 또 못 뵙게 뵙니까? ㅠㅠ
어쨌든 건강하셔서, 뵐 수 있는 날, 기쁘게 다시 뵐 수 있기 바랍니다.
더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