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2분 전
외인부대4....이승과 저승 |
삽화 이기원 작가
(지난호에 이어 계속~)
중대리더 중 하나가 엄청 솟구치는 피를 멈추게 할 요량으로 대검을 시신 심장에 쿡 찔렀다. 하지만, 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아,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한없이 토해내던 혈액이 웬만치 잦아들자, 몸만 남은 시신을 잘 싸서 모 주방과 또 다른 대원과 함께 밀림거점에 옮기라고 지시했다. 긴 나뭇가지를 잘라 지렛대를 만들고, 우의 두 장을 양쪽에 겹쳐 끼워 시신을 얹고 어깨 위에 멨다. 그리곤 산 정상을 내려갔다.
미안함보다는 처량하고, 허탈했으며, 사지의 힘이 쭉 빠졌다. 그저 꽤 가파른 비탈이어서 휘적휘적 끌려가는 거지, 오금을 떼어놓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인디오 혈통 멕시코 계 시신의 무게에 떠밀려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다른 영국 계 대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돈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판, 외인부대원인 게 잘못일 뿐이다.
사람 목숨 날아가는 게, 이토록 하찮을 줄 미처 몰랐다. 인디오 혈통 멕시코 계의 머리를 찾으려고 1시간을 샅샅이 뒤졌는데, 그 어디에도 없었다. 로켓 포탄이 얼굴을 통째로 풍비박산 낸 것이다. 단지, 모 주방의 발치로 굴러 떨어진 호두 알 만한 눈알을 확인했을 뿐이다. 더 기가 막힐 일은 그 흰자위 속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죽었니? 하는 시선이었다.
그는 인디오 혈통 멕시코 계의 수정체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집어 목구멍 안에 고이 넣어줬다. 너무 기가 막히고, 경악 스러워 눈물초자 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이곳 니카라과 전투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가히 찰나에 벌어진 터라, 주검이 자기가 죽은 줄 모르고 30-40초 동안 방향을 잃은 채, 이리 저리 맴돌다 모 주방의 등에 엎어진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으면 외인부대원 모두가 몸뚱이만 남은 인디오 혈통 멕시코 계의 행동에 파안대소 했을까. 교전 중에 쟤가 왜 저러나 싶어서.
삽화: 이기원 작가
진저리는 다음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80명 부대원들은 일제히 로켓포가 날아온 곳을 향해 우지기관총을 난사 해댔다. 수류탄 160개와 1백발 탄창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중대리더들이 탄약을 아끼라고, 뜯어 말려 겨우 진정했다. 하지만, 경화기 조 40명의 유탄발기는 여전히 불을 뿜었고, 인근을 아예 청소를 해버렸지만, 반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어떤 개새끼야!’
‘나와! 좆같은 씨 발 놈아!’
‘이 쌍놈! 잡히면 사지를 도려낼 테다!’
‘씹 새끼! 넌 저승까지 쫓아가 찢어 죽일 거야!’
‘이, 씨 발 새끼야! 야비하게 왜 숨어 지랄이냐! 앙!’
부대원들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리 전투 경험이 많고, 무수히 상대 목숨을 끊어봤지만, 이토록 비겁한 죽임은 난생 처음들인 모양이었다. 이 지구상 어디를 가든, 누구나, 그들을 살인기계로 지칭하지만, 죽이는 것도 하나의 예의가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비록, 적군이더라도 최소한 고통 없이 저 세상으로 보내야 자신 역시 마음이 편해진다는 거다. 단 한 번에, 단 숨에, 단 한 방에, 단 1초에 망설이지 말고, 즉사하도록 하는 것 말이다. 어차피 죽일 거, 아주 간단하게 처리하는 쪽도 덜 괴롭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시신을 어깨에 걸쳐 메고, 반나절이나 걸어, 밀림지대 거점에 겨우 도착한 하자 무전으로 통보 받았는지, 대대리더가 기다리고 있었고, 사망자를 인계했다. 담배를 피워 문 그는 어두운 낯빛으로 연대지휘부에 타전 시신수습을 요청했다. 훼손된 시신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많이 지친 모 주방과 영국 계 대원도 주검 곁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산 육신보다 주검이 더 무겁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밀림지대 거점을 경계하던 병력도 전원이 묵념으로나마 시신의 평안을 빌었다. 모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얼마 후, 헬기가 들어와 시신을 싣고 돌아갔는데, 인디오 혈통 멕시코 계의 주급을 계산해 유족에게 지급함은 물론, 위로금 10만 달러와 별도의 시신 수습 비 5만 달러도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개죽음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삽화: 이기원 작가
또 다른 부대원은 영국 계인데 에이레 공화 군의 테러 방지전담 군부대에 소속돼 활약하던 중, 민간인을 오인 사격하는 바람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그 이후 빈둥대다, 런던경시청에 위장된 정보국 MI6의 친구가 소개해 니카라과에 온 것이라 털어놨다. 벌써 2년 째 접어든단다.
둘은 갑자기 친해져 함께 수돗가에서 샤워를 하곤 했다.
온두라스 국경지대에 나간 1, 2중대는 아직 귀환하지 않았지만, 전황은 매일 듣고 있었다. 반군 사령관이 온두라스 국경 안쪽 깊이 은신해, 도통에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밀림지대 거점에서 허송하던 모 주방은 어느 날, 3중대 리더의 지시를 받고, 영국 계 부대원과 한 조가 돼 습지 건너 대대캠프로 빠져 나오다, 오른쪽 종아리를 독사한테 물리고 말았다. 부임 첫날부터 누누이 선임자들이 강조하던 독사주의를 깜빡 한 것이다.
아니, 지뢰매설과 부비트랩 설치 지역을 우회해 나오다가 그리된 것이다. 군복바지가 습기에 젖어 착 달라붙은 바람에 독사의 이빨을 차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국 계는 대검으로 바지를 찢고, 독사이빨 자국을 칼끝으로 째더니, 입으로 독을 빨아냈는데, 밀림지대 독사의 독성이 매우 강해, 즉각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10분 안에 사망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나마 영국 계가 독이 퍼지기 전, 대여섯 차례 뽑아내고, 우의를 찢어 무릎 위를 칭칭 동여맸지만, 온몸은 점점 굳어갔다. 듣기로는 0.1mg만 몸에 퍼져도 반병신이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 계는 한쪽 겨드랑이에 모 주방을 들쳐 끼고, 최대한 빠른 속보로 습지를 빠져 나왔다. 다행인 것은 그가 의식을 놓지 않았고, 왼쪽 다리는 움직일 수 있어서 영국 계의 보폭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정신은 몽롱해졌고, 심장박동이 아주 빨리 뛰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영국 계는 소총에 노란 연막탄을 부착, 대대 캠프 상공에 대고 발사했다. 캠프 안의 대대 경계병들은 위급상황이 벌어졌다는 걸 알아채고, 신속히 뛰어왔다. 왜 그러냐는 것이었는데, 영국 계가 독사한테 물렸다니까, 연대지휘부에 급전을 쳤고, 헬기가 5분 만에 나타났다.
모 주방을 헬기에 실은 영국 계는 함께 마다과 연대지휘부 야전병원에 내렸다.
베드카를 밀고와 대기하던 간호장교와 의무관은 응급실로 환자를 떠밀며 뛰었고, 그 와중에서도 상태를 살폈다. 촌각을 타두는 위급상황임은 이미, 무전으로 받았기에 수술준비도 다 돼 있었다.
전투복을 가위로 다 찢어낸 뒤, 독사면역혈청부터 주사했고, 심폐기능이 멎지 않도록 인공호흡기를 사용해가며, 오른 쪽 대퇴부의 대동맥을 찾아 같은 혈액형을 수혈했는데, 체내에 퍼진 혈액 속 맹독을 희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 주방의 맥박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고, 전신은 급속도로 부어 올랐다. 피부도 검게 변색되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체온이 4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간호장교들은 의무관의 지시에 따라 얼음주머니를 전신에 다 감쌌다. 영국 계는 초초하게 모 주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무관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독사면역혈청이 빨리 작용하지 않으면, 독이 퍼진 부위가 썩는다는 것이다. 영국 계는 모 주방의 파트너도 열흘 전에 로켓포를 맞고 죽어, 한참 우울해 했는데, 그도 독사에게 당할 줄 미처 몰랐다는 거다.
어떻게 알았는지, 히스페닉도 응급실에 나타났다.
의무관에게 너랑 같은 한국인이야 하며,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의무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선은 다 하겠지만, 장담은 못한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독사의 이빨에 물린 순간 사망은 필연적이라 덧붙였다. 니카라과 현지인들도 해마다 독사에게 물려 죽는 숫자가 꽤 된다는 거다.
삽화: 이기원 작가
시간만이 모 주방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의무관이 수시로 들여다보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독사한테 물려 발원된 부종은 다른 항생제로는 가라앉힐 수 없다. 오로지 자연 치유만이 상책이다. 독사면역혈청은 서서히 작용하는지 심폐기능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환자는 벌써 심장이 멎었을 것이다.
맹독이 지닌 부작용은 혈액을 순식간에 응고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혈액이 순환되기 때문인데, 심장에서 전기적 에너지로 혈액을 뿜어내는 압력은 시속 140Km에 달해 제일 먼저 뇌에 산소를 공급하고, 각 기능을 순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에 응고된 혈청이 번지기 시작하면, 혈관이 막혀 괴사를 진행시키고, 혈관이 터진다. 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는 살더라도 전신마비 또는 반신불수가 된다.
의무관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 주방을 살피고 나갔다. 영국 계는 곁에 붙어 상태를 지켜 볼 뿐이다. 지금으로선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는 것이다.
히스페닉도 틈만 나면 들여다보고 갔다.
모 주방의 의식불명이 1주일째로 접어들었는데, 상태는 호전되지도 않고, 악화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의무관은 점차 자신감을 내 비추었다. 자신 있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환자 몸 속 에 주입한 독사면역혈청이 맹독을 중화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체내 수분은 수액으로 공급하고, 배뇨는 음경에 가테터를 삽입 빼내고 있었다.
간이 나쁘다면 독사면역혈청이 더 더디 작용하겠지만,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천만 다행이다. 허혈이나 경화가 있다면, 혈액 정화기능이 취약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열은 여전히 4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맹독이 중화되면서 발생하는 열이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얼음주머니를 계속 교체해 줘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독사면역혈청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열흘이 고비다.
맹독의 특성은 독사한테 물린 같은 종의 독니에서 빼낸 것만 중화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만약, 같은 종이 아닌, 다른 맹독을 주입하면 즉사한다. 독사들은 서로 면역혈청이 태생적으로 갖춰져 있어 상관없지만, 인간에게 전혀 다른 종의 독을 주입하면, 혈청에 닿는 순간 생명은 끝난다. 다른 종의 독이 함께 뒤섞여 혈청을 굳게 만들며, 심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남미 일대 국립의료원에는 각기 다 다른 종의 독사를 잡아 맹독을 추출해 희석시켜 독사면역혈청을 만들어 둔다.
야전 베드 곁에서 모 주방을 지키는 영국 계 부대원은 시간이 너무 더디다고, 느꼈다. 그의 상태가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러보는 의무관 한테, 똑같은 질문을 하지만, 대답도 늘 똑같다. 그저 기다려보자는 말, 그게 전부다. 외관상 확인할 길은 없지만, 동공을 통해 체내 변화를 읽을 따름이다.
다시 시간은 흘러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차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는 해도 확연히 드러날 만큼은 아니어서, 의무관도 답답하다. 그는 군의관이 아니고, 미국 존 홉킨즈 의대에서 맹독을 연구하기 위해 니카라과 국립대의대에 파견을 자청한 한국인 전문의다.
어쩌면 그래서 더 환자에게 애착을 가지는지 몰랐다.
지금 쯤 부종이 가라앉기 시작할 텐데 싶었지만, 촉진결과 그대로였다. 마지막 수단으로 희석시킨 독사면역혈청을 섞은 혈액을 더 투석할까도 생각했는데, 정제한 맹독이라도 너무 과하면 역효과를 낼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아무튼 조금 더 기다리다 정,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투석기를 사용해볼 참이다. 맹독에 경화된 혈청을 강제로 빼내고, 환자 본인 혈액을 세척해 다시 투입할 생각이었다. 마치, 체내에서 원활히 당뇨를 배출하지 못할 때 시술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뇨환자에게 특효인 인슐린을 사용하듯, 모 주방에게도 앞서 투여한 독사면역혈청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판단되면, 맹독을 좀 더 빨리 중화하도록 희석한 동일 맹독 혈청 더 투여해 회복 시간을 앞당기고자 유도하는 거다.
한국인 의무관이 나름 판단한 예후가 마치, 십 년 같은 열흘로 접어들자 모 주방의 맥박이 정상치로 돌아왔고, 열도 38도로 떨어졌다.
이제 의식만 돌아오면, 그는 살 수 있다. 부종이 가라앉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영국 계 부대원도 의무관의 설명을 듣고는 화색이 돌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는 눈을 떴다.
소식을 접한 뒤, 서둘러 나타난 히스페닉은 우선, 식물인간은 면했다고,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동공이 확대된 상태여서 의식이 회복됐다는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의무관은 인공호흡기를 떼어냈는데, 심장박동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이승과 저승 사이를 넘나들다, 겨우 이승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끈질긴지 체험한 순간이었다. 일시적 신경마비가 풀려, 곁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깜깜했던 시야도 트였다.
또 닷새가 지나자 모 주방은 사지를 천천히 움직일 수 있었고, 말도 할 수 있었다. 가장 반가워 한 건, 병상 곁을 떠나지 않았던 영국 계 부대원이었다.
삽화: 이기원 작가
간호장교로부터 보고를 받고, 뛰어 온 의무관 역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히스페닉도 달려와 축하를 해주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아직 멀었다. 베드에서 여전히 꼼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의무관의 설명으로는 최소한 3개월은 요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먼저 부종이 빠져야 하고, 퇴화된 근육이 원상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 주방은 의무관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웬 지 모를 믿음이 갔다. 꼬박 보름을 의식불명 사태에 있었고, 자칫 죽을 번한 고비도 수 차례 넘겼다며, 자상하게 설명했다. 당장은 식사는 못하고, 스프만 먹어야 한다는 귀 뜸과 함께 살아줘서 거듭 고맙다고, 치레했다. 그가 오히려 대단히 감사하다는 진심을 건넸고, 어떻게 해야 이 은혜를 갚을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다 글썽였다. 모 주방에게는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실때도 임종을 지켜보지 않았던 그가 눈물을 다 보인 것은 난생 처음일 것이다. 늘 도박에 미쳐 떠돈 터라, 이 세상의 보편적인 희노애락을 외면하고 산 것이다. 니카라과에 와서 새삼 인생의 소중함을 깨달은 거다.
이제 것 해온 것이 무엇이며,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그에게 좀 더 살아보라는 조물주의 권유를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모 주방은 의무관에게 아무 책이나 구해 달라 부탁했고, 의무관은 미국 판 소설들을 한 아름 구해다 주었다. 책이나 보며, 시간을 소일하기 위해서다.
몸이 차츰 원기를 회복하는 지, 소 대변을 자주 배설했는데, 간호장교 말은 체내에 축적된 맹독이 빠지는 거라고 귀 뜸했다. 그러면서 여기 외인부대원들 중, 독사에게 물려 죽은 숫자가 너 댓 명은 된다고 덧붙였는데, 맹독을 이겨낸 사람은 아마, 당신이 처음일 거라고 했다.
간이 베드에서 틈틈이 육신을 놀리고, 책을 보며, 지루함을 달랜지, 보름 만에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야전병원 관계자들은 어정쩡 하기는 해도 우격다짐으로 돌아다니는 모 주방을 보며, 천주님이 기회를 다시 준거라고, 말을 건넨다. 중남미 현지인들은 대부분 카톨릭 신자다. 스페인 식민지 지배가 300년 이상 되기 때문이다.
달리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 하는 지라, 그는 스스로 근육의 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연대지휘부 연병장을 걷고, 또 걸었고, 열흘쯤 되자 종종 대는 수준이지만, 뛸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저녁을 먹은 뒤, 거의 매일 팔 굽혀 펴기를 20회씩 세 번을 했고, 윗몸 일으키기도 겸했다. 허나, 체내 부종이 다 빠지지 않아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수면제 덕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다 뻣뻣하게 굳었다.
그럼, 식사 전, 연병장에서 20-30분씩 구보했다. 모 주방을 마주치는 다른 부대원들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고, 이구동성으로
‘네가 죽는 줄 알았다.’ 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의무관은 해변의 자기 숙소에서 더 정양하라고 권했는데, 히스페닉도 동의했다.
계약서상 총상을 입거나, 근무 중 기타 사고로 인한 치료기간은 주급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되어 있으니까, 걱정 말고 휴양을 하라는 것이다.
영국 계 부대원은 모 주방이 베드에서 일어난 그 즘에 자대로 돌아갔다.
아무튼, 의무관 숙소는 태평양 연안 언덕에 있었는데, 풍광이 정말 장관이었다.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거라곤 검푸른 바다뿐이었다.
의무관은 손이 많이 가더라도 한국인 역시 된장, 고추장, 김치를 먹어줘야 힘이 난다며, 손수 끼니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곤 근무지로 출근 하면, 그는 혼자 기타도 치고, 모래밭에 나가 조깅도 했다. 이제 체내 부종도 거의 다 배출돼, 근육이 원활하게 작동되는 것 같았다. 땀을 많이 흘리고, 물을 많이 섭취해, 잔존한 맹독을 뽑아내야 한다고, 의무관이 설명했었다.
어느 날, 의무관과 함께 TV를 보는데, 서울 올림픽이 중계되고 있었다. 비록, 생중계가 아닌 녹화방송이었지만 말이다.
“이 먼 이국 땅에서 잠실운동장을 다 보게 되다니, 사람 참, 오래 살고 볼일이네요.”
“하하... 동감이요.”
의무관은 크게 파안대소했다.
그렇게 올림픽 녹화중계를 보면서 거의 한 달을 빈둥댔는데, 하루는 히스페닉한테 전화가 왔다.
“의무관 보고로는 네가 웬만치 움직인다고 들었는데, 몸 상태가 괜찮으면 연대지휘부에 나와 병참행정 좀 봐라.”
“그러죠. 심심하던 차에 잘됐습니다.”
모 주방은 전화를 끊자마자 튀어나가 즉시, 택시를 잡아타고 마다과 수도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히스페닉은 니카라과 미 대사관에 파견된 CIA 대외정보국 소속 서기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대지휘부 행정과 병참을 지원하게 됐는데, 자신이 대사관 업무와 함께 그 일을 병행할 수 없으니, 에스파냐어에 능통한 네가 대외업무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행정과 병참이란 것은 별개 아니다. 행정은 주로 니카라과정부와의 공조를 통역하는 것이고, 병참은 마다과 현지인을 통한 부식수령과 각종 장비들 수급이 전부다. 또 니카라과 현지인들의 대민지원, 반군으로부터 민간인 보호 등도 포함돼 있다.
(다음호에서 계속~).
관련기사
태그#미술여행기획박종희작가의연재소설#박종희작가#머피의법칙#갬블러#외인부대4#이승과저승#모주방#독사#맹독#이기원작가#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