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마티네 영상음악회
2023년 9월 14일(목) 오후 2:00∼4:00
진행 및 해설 : 서 건 석
1. Mozart : Violin Sonata No. 26 K. 378 (20분26)
2. Mussorgsky : A Night on the Bald Mountain(민둥산의 하룻밤) (14분51)
3. Tchaikovsky : Sym. No. 5 Op. 64 (47분02)
1. Mozart : Violin Sonata No. 26 K. 378
Anne-Sophie Mutter(vn), Lambert Orkis(p)
♬ 모차르트가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37곡.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크게 세 개의 범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범주가 7세 때와 10세 때에 작곡한 작품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중 좋은 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주 빈도가 아주 낮고, 그 판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 범주는 22세가 되고서야 작곡한 K. 296∼K. 306의 작품들입니다. 그중 K. 304가 가장 인상적인 곡입니다. 셋째 범주가 1779년(23세 이후)에서 1787년 사이에 작곡된 8곡의 소나타(K. 376∼K. 380, K. 454/481/526)입니다.
세 번째 범주 가운데에서 K. 378이 대표곡인 작품인데, 1779년 잘츠부르크에서 작곡되었습니다. 이때는 그가 파리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것은 물론 어머니를 여위는 등 마음고생이 심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파리나 만하임에서 체득한 것으로 여겨지는 전아하고 우아한 로코코적 작법이 담겨있어 매우 화사한 분위기로 시종일관합니다. 그러니까 모차르트 violin sonata 중에서 적어도 K. 304와 K. 378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 이미 느껴 알고 계시겠지만, 이 곡만 듣고 나도 Mozart Effect가 무엇인지 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 알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는 전형적인 로코코 양식으로 뛰어나게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 즐거움의 우아한 노래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2악장은 첫 악장에 비하면 훨씬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애수를 잔뜩 머금은 느릿한 아름다운 선율은 가슴을 파고 들만큼 아주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악장은 어느 평자가 ‘여름의 훈풍’이라고 표현했던 화창한 론도입니다. 경쾌하고 발랄한 선율은 가슴에 상쾌한 파문을 일으켜줍니다. 어느 평자가 자주 쓰는 표현인데, 여기에서 저도 한번 써봅니다.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몫이며, 찾아내기만 하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2. Mussorgsky : A Night on the Bald Mountain(민둥산의 하룻밤)
Andris Poga(cond), Frankfurt Radio Symphony
♬ <전람회의 그림>과 함께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곡이지요. 이 곡은 9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작곡되었고 여러 차례 수정되었지만 미완성으로 남아, 현재의 악보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유작을 정리하여 완성했습니다. 대담하고 솔직한 표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독창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러시아 남부 키예프 부근에 있는 트라고라프 산 위에서 매년 6월 24일에 성 요한의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제사 전날 밤에 악마들의 잔치가 벌어진다는 전설에 따라 그 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래 제목은 <민둥산의 성 요한의 하룻밤(축제의 밤)>이며, 다음과 같은 표제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땅속에 있는 악령들의 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암흑의 정령들이 나타나고 이어 암흑의 신 체르노보그가 등장하고 그에 대한 찬미와 암흑 미사, 그리고 지옥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 멀리서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고 암흑의 정령들이 모두 사라지면, 날이 밝아 평화스러운 아침이 온다.”
이 곡은 표제음악인데다 흥미 있는 줄거리와 강렬한 소재를 담아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쉽게 느끼게 해줍니다. 표제 음악으로 묘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했으며, 특색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변화무쌍한 색채와 리듬을 섞어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곡은 어둠의 정령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묘사하는 저음현의 사용으로 시작되고, 목관이 비명처럼 기분 나쁜 소리를 높이면, 이어 금관이 어둠의 정령에 대한 주제를 연주하면서 강렬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어 오보와 클라리넷 등 목관이 춤추듯 나오고 나면, 금관이 위압적인 팡파르로 소란스럽게 따라나섭니다. 중반에는 금관이 행진곡을 연주하는 사이, 엄숙한 ‘찬미의 노래’가 이어지고, 분위기가 바뀌면 타악기가 가세하여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계속 트럼펫, 트럼본 등의 금관악기의 연주를 신호로 주제가 복귀되면서 악마들이 광란하는 듯한 화음의 연타가 절정에 이르고, 이윽고 종이 길게 울리면서 후반으로 이어집니다. 후반에는 평화를 상징하듯 하프가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면, 클라리넷이 새벽을 알리는 선율을 되풀이 연주하고, 현과 하프가 이것을 반주하면서 사라지듯 마칩니다. 표제 음악으로 묘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했으며, 특색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변화무쌍한 색채와 리듬을 섞어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3. Tchaikovsky : Sym. No. 5 Op. 64 (47분02)
Karajan(cond), Berliner Philharmoniker
♬ 그의 4, 5, 6번 세 곡의 교향곡은 한국인에게 매우 사랑받는 레퍼토리입니다. 특히 이 세 곡의 교향곡은 겨울의 정서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들어야 제맛이 나는 특유의 우울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 음악의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러시아적 정서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4번과 같은 운명입니다. 이 곡에 나타난 것은 고뇌와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4번>과 <제6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나 싱싱한 그리움이나, 꿈과 달리 부드럽게 위로해 주는 정서가 느껴지기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혹자는 메크 부인에 대한 차이콥스키의 애증과 미련과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곡이라고 합니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개성과 음악성이 잘 드러난 걸작이며 가장 변화가 많고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그의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표현 등이 이 곡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합니다. 이례적으로 3악장에 왈츠를 사용했습니다. 이 곡의 느낌은 일견 슬픈 것 같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입니다.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채가 주는 질감은 부드럽습니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선사해주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세련되기가 그지없습니다.
다른 작곡가들의 2악장도 그렇지만 차이콥스키의 2악장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의 교향곡 5번의 2악장은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안단테 칸타빌레인데, 특히 처음에 흔히 연주하는 아련한 멜로디가 압권입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 멜로디를 들으면 듣자마자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악장은 차이콥스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아득히 먼 곳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호른 소리. 듣는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고 촉촉하게 적시는 그 소리가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렇게 호른이 한바탕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고 지나가면 이번에는 오보에가 등장해 특유의 밝고 여성적인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그 소리가 마치 위안을 주는 듯합니다. 호른의 멜랑콜리로 다소 축축해졌던 가슴이 밝고 환한 오보에 소리로 위로를 받는 겁니다. 오보에가 연주하는 이 선율은 곧 현악기로 이어지면서 특유의 서정성을 더해 갑니다. 그 후 곡은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이때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며 상승하는 멜로디가 듣는 이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이렇게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가 드디어 정상에 오른 순간, 심벌즈가 찬란하게 정점을 찍는데, 그것이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장쾌한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그렇게 한차례 폭발한 다음 다시 처음의 서정으로 돌아와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