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마티네 영상음악회
2023년 10월 12일(목) 오후 2:00∼4:00
진행 및 해설 : 서 건 석
1. Dvorak : Romance Op. 11
2. Brahms : Double Con. Op. 102
3. Beethoven : Sym. No. 8 Op. 93
1. Dvorak : Romance Op. 11 (12:15)
Anne-Sophie Mutter(vn), Manfred Honeck(cond), Berliner
Philharmoniker
♬ 로망스(Romance)는 엘레지(Elegy)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형식의 애상적인 사랑의 노래에서 비롯된 음악입니다. 음유시인들의 서정적 이야기로 만든 가곡에서 시작되었으나, 18세기 이후 사랑을 노래한 가곡이나 서정적인 기악곡의 형태로 발전하였는데, 연주곡으로는 베토벤과 슈만의 곡이 유명합니다.
드보르자크는 1873년에 작곡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심지어 생전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던 <현악 4중주 Op. 9>가 있었는데, 그는 이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여 결국 이 작품을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이 곡은 너무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너무 바그너적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의 느린 악장은 체코의 정서를 담고 있었는데, 체코적인 정서를 불어넣는 것은 그 당시 드보르자크에게 새로운 임무이기도 했습니다. 드보르자크와 평생 친분을 유지했던 브람스와, 드보르자크의 출판업자였던 짐로크는 드보르자크에게 이 곡의 느린 악장을 고쳐서 <로망스〉로 만들 것을 권유했고, 그래서 실패한 현악 4중주의 느린 악장은 2중주의 〈로망스〉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1877년 마침내 이 곡의 2악장을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 다시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 편곡하여 <Romance in f minor Op. 11>이라는 곡명을 붙였습니다. 이 작품은 우아한 선율, 슬라브적인 멜랑콜리와 악기의 음들이 모직을 이루듯 짜 놓은 시와 같은 느낌이 있어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쓰는 데에 더 크게 작용했던 건 드보르자크의 개인적인 아픔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당시 그의 자녀 중 셋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드보르자크는 자신의 슬픔을 이 곡에 담아냈습니다. 곡의 서주에 깔려 있는 슬프고 애상적인 정서는 작곡가의 깊은 슬픔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반주부의 간략한 서주가 끝나면, 현악기의 피치카토 리듬을 타고 솔로 바이올린이 등장하여 멜랑콜리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선율을 주제로 제시합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두 번째 주제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2번〉의 2악장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주제는 바이올린의 음형을 통해 장식되어 나타납니다.
2. Brahms : Double Con. Op. 102 (34분 40)
Lisa Batiashvili(vn), Truls Mørk(vc), Simon Rattle(cond)
Berliner Philharmoniker
♬ 이 곡은 브람스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으로 1887년(54세)에 작곡된 곡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향을 아름답게 대립시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런 편성의 작곡은 모든 작곡가들이 싫어하는 편인데, 브람스는 이에 도전하여 세계적으로 유일한 2중 협주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브람스는 당시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던 violinist 요하임과 절교 상태에 있었습니다. 브람스는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던 교향곡 5번을 바이올린과 첼로 등 독주 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바꾸기로 하고 요하임에게 조언을 청했습니다. 요하임도 브람스와의 재회를 바라고 적극 협력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은 원래 브람스가 다섯 번째 교향곡으로 구상하고 있었던 작품인데 브람스는 소원했던 요하임과 화해하기 위해 이 작품을 협주곡 형태로 바꾸게 된 것이지요.
1887년 봄 스위스 베른 근처 툰에서 머무르던 중 이중협주곡을 구상하면서 요하임에게 그의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보내게 됩니다. “자네에게 예술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네. 그것에 자네가 흥미를 가져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에 대해 요하임은 바로 호의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답장을 보내게 되면서 그해 8월 전곡이 완성됩니다. 이런 배경으로 클라라는 이 곡을 ‘화해 협주곡’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작품은 흔히 이중협주곡(Doppel Konzert, double concerto)이라고 불리지만, 이것은 작곡가 본인이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제목이며 출판에서도 제목이나 부제에 이런 제목이 사용된 적은 없어 사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브람스가 쓴 4곡의 협주곡 중 마지막 작품이며,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중에서도 마지막 곡입니다. 1885년 말에 쓴 <교향곡 4번>, 1886년 여름에 쓴 <첼로 소나타 2번>, <바이올린 소나타 3번>, <피아노 트리오 3번>에 이어서 작곡했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곡이니, 브람스가 말년에 사용했던 악기 편성을 모두 종합한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창조력이 절정에 이른 54살 때의 작품으로, 매혹적인 선율과 화음, 풍부하고 유려한 음색으로 가득 찬 곡입니다. 고전주의자 브람스의 원숙한 내면세계를 유감없이 보여 주는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곡상이 가장 선율적이며 가장 변화가 풍부한 악기인 바이올린과 첼로의 독주로서, 이 두 개 악기의 높은 기교가 필요하며 훌륭한 기교를 갖춘 뛰어난 명인들의 좋은 호흡이 없이는 전혀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는 그런 곡입니다. 그러나 이 곡은 교향곡을 염두에 둔 것이라 중후한 관현악과 비애감이 전편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강한 힘과 우아한 아름다움은 결코 잃지 않습니다. 또한 두 악기의 절묘한 어울림과 색채적인 면이 빛나는 감흥을 이끌어내는 박진감과 선율이 인상적으로 펼쳐지는 명곡입니다.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격정적인 주제로 시작한 뒤 첼로 독주가 텁텁한 저음으로 노래한 후 독주 바이올린이 카덴차를 연주하고 다시 대화하듯 첼로가 가담합니다. 각각 독주 악기의 아주 자유로우면서도 풍부한 기교가 담겨 있는 악장입니다. 장엄한 규모를 가진 힘찬 악장입니다. 2악장 안단테는 마치 한가로운 전원에서 선선하게 부는 초저녁의 미풍을 연상하게 합니다. 목가적 기분이 넘치는 악장이다. 호른의 유장(悠長)한 선율에 이어 2개의 독주 악기가 주제를 연주하는데 절절한 애수에 젖은 그 선율은 깊이 가슴에 스밉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과 첼로의 피치카토가 조화를 이루는 부분에서는 ‘아! 바로 이게 브람스야!’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되는 악장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대화하듯이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것이 마치 연인끼리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3악장은 전체가 340마디 가량 되는데 그중에서 관현악 부분은 60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독주 첼로가 경쾌하고 아름다운 주제를 노래한 후 바이올린 독주가 이를 반복하면 오케스트라가 이를 받아 점점 크게 고조시킵니다. 점점 선율은 정점에 달하고 힘찬 화음이 이어진 후 막을 내립니다.
3. Beethoven : Sym. No. 8 Op. 93
Paavo Järvi(cond), Die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 그의 9개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음악적인 내용면에서는 나머지 8곡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곡은 본래 제7번과 대칭을 이루는 작품으로, 베토벤은 양곡을 구별하기 위해서 제7번을 ‘대교향곡’, 제8번을 ‘소교향곡’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곡은 7번과는 달리 규모가 작고 전체적으로 밝으며, 사랑스럽고 유머가 넘치는 작품으로, 9개의 교향곡 가운데서 웃음이 있는 교향곡은 이 곡뿐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이 곡을 ‘익살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베토벤은 제4번, 제6번, 제8번 등 3개의 교향곡을 쓸 때, 잠시 인생의 근본 문제와 대결하는 자세를 멈추고, 예술을 위한 예술의 경지에 잠겨 즐긴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의 교향곡에 반드시 들어가는 느린 악장도 없습니다. 느린 악장이 들어가는 2악장은 알레그레토 스케르찬도로 되어 있어 아주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기분을 전해주는 즐거운 악장으로 귀여운 악장이라는 표현을 듣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전개되며 때로는 익살스럽고 느긋하게 전개되는 곡입니다.
제1악장 allegro vivace e con brio. 이 악장은 그의 시기의 고전양식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세련되고도 유려한 유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연하고 단순 명쾌한 제1 주제와 익살스러운 제2 주제를 전개합니다.
제2악장 allegretto scherzando. 상큼하면서도 품위가 있는 귀족적인 취향이 강한 악장입니다. 로코코 스타일의 아주 우아한 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악장입니다. 그야말로 원숙한 대가 베토벤이 아니고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악곡입니다.
제3악장 tempo di minuetto. 전형적인 고전적 형식에 따른 미뉴에트 무곡인데, 이 음악 역시 즐거운 표정과 품격 높은 무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트리오 부분은 호른의 2중주를 중심으로 여기에 현의 분산화음이 붙고, 클라리넷과 바순이 가담해서 한가한 목가적인 느낌을 조성합니다. 베토벤이 교향곡에 미뉴에트를 쓴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제4악장 Allegro vivace. 변화가 많은 리듬의 론도로 명랑함 속에 신선함이 느껴집니다. 빠른 속도와 거친 유머 감각으로 바이올린이 빠른 음표들을 연주하면서 목관악기들이 맞장구를 치고 주제 선율이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다 엉뚱한 음이 돌출하면서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대담한 멜로디에 응답하듯이 속삭이는 오케스트라의 진행이나, 갑작스러운 휴지로 인해서 쾌활한 선율 뒤에 무엇이 이어지게 될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들, 갑자기 뒤에서 놀래듯 갑작스러운 유희적인 제스처 역시 베토벤식의 유머입니다. 결미부가 전부의 반을 차지한 것도 이 악장의 특징이고, 이 부분에 있어서 로맨틱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