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벌목
둔탁하면서도 날이 선 기계톱 소리가 마을 안까지 요란하게 들려온다. 마을 남쪽 산에서 나무를 베고 있는 소리다. 그 산 앞에 작은 산이 하나 더 있어 함께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산의 벌목은 산허리 넘게 올라와 앞산의 능선을 올라섰다. 산마루에 이르도록 모두 베어낼 기세다. 나무를 베어내는 잔인한 톱질 소리와 함께 처절한 산의 비명이 마을을 흔들고 있다. 마치 동물이 제 가죽이 벗겨질 때 지르는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소리는 나에게 더욱 참혹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저 산을 정면으로 비추어 주고 있는 내 방의 창이 그 소리를 적나라하게 전해주고 있다. 굴착기는 산허리를 가로질러 그 허리를 꺾을 듯이 파내고 있다. 베어낸 통나무를 쌓기 위한 자리며 실어낼 길을 만들려는 모양이다. 나무를 저리 마구 베어내서, 산의 가죽을 저리 처참하게 벗겨내서 어쩌겠다는 건가. 물론 대가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금부터 수년 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강둑길을 유유히 걷고 있었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흰 구름이 새맑게 떠 있는 고요한 물을 보며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둔중한 중장비 소리와 함께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가 강물을 들쑤셨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강둑 끝자락에 서 있는 산을 굴착기가 파헤치는 소리, 나무 베는 소음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작업을 지시하고 있는 산주를 만났다. 자기가 이 산을 샀다며 산림을 경영해 볼 것이라 했다. 산에 길도 내고 나무도 다듬고 버섯 같은 것도 재배해 볼 것이라 했다. 저 나무들은 그런 일을 위해서 베어내는 것이라 했다. 그때는 산 아랫자락의 나무들만 베어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산을 파헤쳐 낸 길의 가장자리에 막대 같은 걸 나란히 꽂고, 거기에 무슨 시구詩句 같은 글귀가 적힌 나무판을 갖다 걸었다. 길가에는 마리골드를 심어 꽃을 피우게도 했다.
시인인가, 아니면 시적인 정서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 사람인가 싶어 호기심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나도 그 길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들곤 했다. 해가 바뀌고 계절도 바뀌어 갔다. 산을 파내어 낸 길에는 흙이 사태를 이루어 내려앉고, 길이며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잡풀이며 애목이 무성해져 갔다. 글귀를 걸어 두었던 막대며 그 글귀들은 다 치워졌는데, 허물어진 길이며 뒤엉긴 푸나무들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산주가 ‘경영’을 쉬어가려는지, 뜻을 접었는지 무심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는 사이에 풀숲길이 된 그 산길에는 몇 포기 남은 마리골드와 함께 취나물, 물레나물, 등골나물, 짚신나물 등 갖은 풀들이 꽃을 피워냈다. 길이며 산을 이리 버려둘 바에야 왜 파헤치고 베어내고 했단 말인가. 이 풀꽃들을 두고 꽃을 갖다 심은 건 또 무엇인가. 산주의 소식은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기계톱 소리가 진동하면서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마구 베고 자르고, 찍고. 파헤치고, 끌어내고, 대항군도 없는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었다. 이 산을 반드시 제패하고 말리라는 듯, 그 비장한 각오가 예리하고도 둔탁한 기계음이 되어 산을 요동치게 했다. 산주가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나타났는지, 시詩를 걸던 그 사람인지, 잇속에 잰 이로 바뀌었는지, 그 사람이 표변豹變한 건지, 알 사람은 알지 몰라도 관심 두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알아봤자 어찌할까. 제 산 제가 벗겨 먹는 걸 무어라 할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모두 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90년대 미국에서 무분별한 개벌皆伐에 반대하여 ‘목재전쟁’을 벌이던 사람들은 나무에 몸을 묶고 벌목꾼들과 감옥행도 불사하면서 치열하게 싸웠다지만, 그건 먼 나라 남의 이야기일 뿐. 어떤 잇속을 가진 사람이 처참한 광경을 벌이든 말든, 누가 남의 일에 나서려 할까.
나만 속이 탈 뿐이다. 오직 나만이 피해자인 것만 같다. 책상에 앉기만 하면 봐야 할 수밖에 없는 저 산, 전진戰塵이 들끓고 있는 저 장면을 어찌해야 하는가. 마구 나뒹굴어진 시신들이며, 어느 무속 의식 제상에 차려졌다는 가죽을 모두 벗긴 소 사체 같은 저 산을 날이면 날마다 시시로 때때로 어찌 바라보아야 한단 말인가. 볼수록 생각할수록 전율만 솟을 뿐이다.
내 이 끔찍한 피해를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저들의 사유재산 앞에서, 그 당당한 자유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나무가 저렇게 쓰러져도, 산이 저리도 발가벗겨져도 나는 할 일이 없다.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봄이 오면 베어진 그루터기 사이에도 풀은 다시 돋고 꽃도 새로이 피어날 것이다. 베어지고 파헤쳐진 상처를 딛고 새로운 생명을 돋구어낼 것이다. 그것만 기대하는 것으로 아린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지만, 그 생명을 믿는 수밖에 없다. 내가 믿든 안 믿든 그 생명들은 힘차게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인간의 폭력 앞에서, 자연의 생명력 앞에서 나는 할 일이 없다. 참 무력하다. ♣(2024. 12. 19)
첫댓글 안타까운 자연 파괴 현장
완전 공감되는 글입니다.
저 역시도 즐겨 다니던 야트막한 뒷산이 있었는데 꽃동산 만들고 아파트 짓는다고 마구 파헤쳐졌지요.
시공사부도로 공사는 중단되고 기약없이 벌거벗은 채 흉물로 남았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던 그 초록,제게 늘 친근하던 그 숲길이 그립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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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은 시간 이어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