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소통하네
NCCK 100년 맞이 국제컨퍼런스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재한독일어권교회(EGDS)에 파송 받아 일하는 공 목사였다. 독일에서 돌아온 지 21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독일교회와 유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분들 덕분이다. 한국에서 일한 지 꽤 오래되었다면서, 이제 2년 후면 아주 귀독한다고 했다. 그동안 겨울이 깊어질 때마다 성탄 인사를 전하며 독일의 대림절 소식을 전해주었다.
만나자마자 반가운 선물을 하나 받았다. “목사님, 찬송가가 나왔어요.” 딱딱한 표지를 한 찬송가는 아주 고급스러웠다. <한독 찬송가>(HanD in HanD)로, 독일의 한인교회들이 수십 년 동안 숙원사업으로 여겼지만, 해결하지 못한 바로 그 찬송가였다. 결국 재독 한국인들이 하지 못한 것을 재한 독일인들이 먼저 해낸 것이다. 몇 번씩이나 치하하며, 고마워한 배경이다. 한국 루터교 출판사인 컨콜디아사의 작품다웠다.
앞뒤에 위아래로 띠를 두른 표지는 독일 국기의 ‘검정-빨강-황금’(Schwarz-Rot-Gold) 3색과 우리나라 태극의 빨강과 파랑을 연결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점잖은 색동이었다. 반갑게 “색동이네”라고 했더니, “색동이 뭐예요?”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몇 년째 한국에 살면서도 아직 못 배운 단어가 있구나 싶어, 강단 곁에 예배 장식으로 사용한 색동 스톨을 보여주고, 여전히 부족하다 싶어 명함 속에 담긴 색동십자가 로고를 건네주었다.
그는 자신의 보스라는 독일교회(EKD) 아시아국장에게 나를 소개하고, 오늘 자신의 존재가 독일에 있는 한인교회들 덕분이라고 자랑스러워하였다. 신앙의 유산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니,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독일에서 온 목사들마다 고(故) 룻츠 드레셔 디아콘을 언급하며 그의 따듯한 인간애와 믿음의 모범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신앙의 연결고리를 잇는 것은 역시 사람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와 함께 일하던 1990년대 독일 파송 에큐메니칼 목사들은 대부분 은퇴하였다. 가장 어린 나이였던 나도 더 이상 젊지 않다. 선배들이 <한독 찬송가>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일 년이면 몇 차례씩 독일인교회와 공동예배를 드리면서 늘 어려움을 겪었다. 두 가지 언어로 병행하여 예배문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설교문도 따로 독일어 번역을 마련하였다. 가장 난해한 문제는 찬송이었다. 두 교회 간 공통된 찬송이 몇 되지 않고, 그나마 일치된 부분도 적었다.
이런 문제를 재한독일어권교회가 먼저 나서서 해결한 것을 보면 아마 독일어권 예배에 참여하는 한국인들이 크게 늘어난 모양이다. 5년 동안, 전문가들의 봉사와 독일교회의 재정적 지원으로 두 나라 찬송 384곡을 쌍방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언어배치는 두 언어 중 먼저 발표한 것을 앞선 제목으로 삼았고, 곡 순서는 예배용 예식과 절기에 맞추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본회퍼 목사의 ‘주의 선하신 권능에 감싸여’는 376장이고, 여섯 절이 다 들어있다.
국제컨퍼런스를 시작하며 열 나라 이상에서 온 참석자들은 개회예배를 드리면서 긴장감이 들었을 법하다. 우선 찬송가가 낯설었는데, 외국인 손님들에겐 당연히 어렵고, 모국어 예배자도 버거워하였다. 아마 의욕이 넘쳐나 배운 적이 없는 새 노래로 예배 찬송을 구성했으니, 힘겨운 것은 당연하다. 타언어권을 배려하지 못한 이유는 여전히 우리의 우물이 너무 커서 남의 하늘을 보지 못하는 탓이다. 20여 년 전, 한-독예배 때마다 번번이 실감한 것을 다시 겪고 나서 축도 후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나님, 다 이해하셨지요?”
꼭 100년이 되었다. 우리 주위에 ‘백 년’을 기념하는 일은 아주 흔치 않다. 한국에 온 감리교와 장로교는 2024년 9월 24일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조직하고, 일치와 선교, 봉사와 협력을 위해 손을 잡았다. 연합공의회는 현재 9개 교단으로 구성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감리교, 예장 통합, 기장,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하나님의 성회, 루터교회, 한국정교회)로 이어졌다.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제리 필레이 목사는 1948년에 출범한 WCC와 비교해 24년 먼저 시작한 한국의 협의회 전통은 세계교회에 영감과 비전을 제공했다고 치하하였다.
사실 100년이든, 천 년이든 시간의 길이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이름을 알렸으나 세상은 물론 점점 회원교회마저도 낯설어하는 소통의 어려움이 진짜 문제다. 겨우 한 시간 남짓 드리는 공동예배도 진심과 정성이 부족하면 나란히 예배하는 사람들 간에 공감을 얻기 힘든 법이다. 설령 같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다른 세대, 다른 이해, 다른 삶의 언어, 다른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리려면 훨씬 친밀하고 따듯하며 드넓은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하게 마련이 아닌가. 성령은 정녕 하나되게 하시는 하늘의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