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귀성
설날이 내일이다. 아내를 만나러 간다. 아이들을 보러 간다. 눈발이 날린다. 차는 날리는 눈발을 다시 날리며 달려나간다. 잘 달리는 차가 오히려 서럽다. 아이들이 전화하여 핸드폰의 내비를 켜보라 했다. 몇 시에 도착할지가 나온다 했다. 내비를 켠다. 아무 시에 도착할 거라고 알려 준다. 그렇게 아이들이 나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글을 쓸 때가 있었다. “……명절이며 무슨 새길 날이면 한촌 늙은 아비 어미를 찾아 달려올 아이들이 기다려진다. 그저 잘 살기만을 바라는 아이들이 의젓하고 정겨운 모습을 하고 안겨 오면 어찌 살갑지 않으랴. 무슨 정성을 들고 올까. 저들의 환한 얼굴이 으뜸 치성이 아니던가.……”(「기다림에 대하여(5)」, 한국수필, 2023.9.)
옛날이야기다. 이제 명절이라고 아이들이 찾아올 일이 없다. 늙은 아비 홀로 저들이 있는 곳, 아내가 사는 곳을 찾아야 할 뿐이다. 무슨 ‘환한 얼굴’이 있을 거라고 내가 이리 달려가는가. 아내가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활짝 팔 벌려 맞아 줄까. 눈발은 쉼 없이 날리고 있었다. 천지는 하얘도 길은 까맸다. 차는 서럽게도 잘 달려나간다.
차가 멈추었을 때 눈도 멈추었다. 차를 내렸다. 모자 달린 두꺼운 외투에 마스크까지 썼지만, 아들은 잘 알아보았다. 제 차에 어서 타시라며 가방을 얼른 받아 든다. 아들과 함께 달리는 거리는 휘황한 불빛이며 네온사인이 무슨 축제를 벌이는 듯 현란한 춤을 추고 있다. 녹는 눈이 차장을 눈물처럼 흘러내리면서 불빛이 어룽진다.
아들 집에 이른다. 세찬을 준비하던 아이들이 나와 인사한다. 아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일 아내를 맞는 날이다. 아이들과 둘러앉는다. 모처럼 아이들과 여럿이서 밥술을 든다. “참 오랜만에 함께 먹는구나.” 내가 미소를 짓자 아이들도 엷은 미소를 띠었지만,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좀 정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묵연했다.
아이들이 펴준 이부자리에 든다. 내일 만날 아내가 꿈으로 미리 올까. 여러 가지 조각 꿈들이 흘러갔지만, 늘 함께 있기에 굳이 꿈속을 올 일이 없어서일까, 아내는 오지 않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아이들은 아직도 자고 있는 듯 기척이 없다. 집에서 혼자서 하던 대로 체조하고 세수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흘러가던 꿈결 속에서 볼 수 없던 사람을 일기 속으로 부른다.
아이들이 제 어미를 맞을 채비로 부산하다. 네 어미는 평소에도 그리 많은 걸 먹으려 하지 않았어. 뭘 이리 많이 차리냐. 부질없는 잔소리를 주절거린다. 아이들이 들을 리가 없다. 과, 채, 탕, 전, 메……, 딴은 진설을 하노라 한다. 아내가 아이들의 이 정성을 흐뭇해할까.
드디어 아내가 왔다. 오랜만이다. 늘 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영정으로 지방으로 앉아 있다. 아이들이 기특하다는 듯 미소짓고 있다. 분향 재배하고 강신례를 드려라, 헌작 삽시하고 재배 올려라. 내가 말 안 하면 아이들이 모를까. 아이들이 절 올릴 때 나는 아내를 바라본다. 속을 무던히도 태웠던 나를 반길까. 의례가 끝난 뒤 내가 한 잔 부어 아내 앞에 놓고 넋 없이 바라다가 그 술 내가 단숨에 마셨다.
성묘하러 가잔다. 저들은 수시로 어미를 찾아간다고 하면서도 오늘 같은 날 또 가보고 싶단다. 아직도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어미다. 차를 달려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다. 선대 산소 터가 없지 않았지만, 아들은 굳이 저 가까이에 모시고 싶다 했었다. 궁벽한 한촌에 나만 적적히 남아야 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하릴없었다. 나도 나중에는 그리될까.
산에 눈이 많이 쌓였다. 발목이 잠겼다. 눈부시게 펼쳐진 설원에 첫발을 찍으며 숱한 무덤을 지나 아내 집으로 갔다. 구겨지지도 않은 두꺼운 솜이불을 편안하게 덮고 있다. 그 이불 그대로 놔두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정성스레 벗겨낸다. 김 아무개가 고이 잠들어 있다는 묘지墓誌가 드러난다. 아이들은 주과포를 차려 놓고 절을 올린다. 음각에 남아 있던 눈이 햇빛을 받으며 녹아내린다. 아이들을 반기는 눈물일까.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조그만 얼룩이 지고 있다.
산을 내려 차를 달린다. 모두 말이 없다. 할 말이 없거나 할 말을 못 찾는 듯했다. 제 어미는 아직 살아있다. 아내가 산집으로 옮겨간 지 이태가 되어 가는데도, 아직 저들 집에 살고 있고, 가족부에도 살아있다. 아내가 살고 있는 아이들 집에 다시 이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엄마가 채전에 받아만 놓고, 고르지 못한 객토를 봄이 오면 기계를 불러라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했다. 보낼 건 보내서 어미가 편히 가서 마음 놓고 쉬게 하자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아이들 집을 나섰다.
역귀성을 마치고 한촌으로 돌아간다. 아내가 그대로 사는, 쓰던 그릇이며 입던 옷이 그대로 있는 집을 향해 길을 되짚는다. 이 역귀성은 내 산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내도 아이들도 나도 ‘환한 얼굴’로 서로 만날 수 있기를 아리게 비는 일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2025. 1. 30)
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세배 올립니다.
모였던 가족을 떠나보내기가 쓸쓸하고 허전해 같이 떠나고 싶었습니다. 남은 자로 겪는 적적함이 역력한 글 선생님 마음 공감하며 좀은 아프게 새겼습니다. 아직은 정리하기에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모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입춘도 지나고 을사년이 되었네요. 존경하는 선생님 올해 어리석은 제게 큰 가르침 주시고 부디 강녕하게 지내십시오.
명절이면 온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운 날이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나게도 하는 날인 것 같아 마음이 갈리기도 하는군요,
'이 또 한 지나가리라' 믿고 지나가는 그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늘 좋은 일만 있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