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가 없는 푸른 바다에서 먹이를 독식하자는 블루오션 전략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신시장을 차지한 기업들은 모두 그 시장을 처음 발견한 기업, 즉 블루오션을 찾은 기업이었을까?
최근 기업들의 화두는 단연 블루오션이다. 경쟁자가 없는 푸른 바다에서 먹이를 독식하자는 블루오션 전략의 주장은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 푸른 바다에서 새로운 먹이감을 찾았을 때, 혼자서 다 차지할 수 있을까. 뒤따라 온 경쟁자가 기껏 찾아낸 먹이를 빼앗지는 않을까. 경쟁자가 공격을 한다면 새로운 세계를 찾아 헤매느라 지친 나머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먹이를 내줘야 할 지도 모른다. 블루오션의 환상보다는 이 같은 가설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자는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는 모두 지난 세월 어느 때인가는 획기적인 신시장, 즉 블루오션이었다. 새로운 시장에서 활동한 많은 기업들은 기존 시장보다 높은 수준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시장을 차지한 기업들은 모두 그 시장을 처음 발견한 기업, 즉 블루오션을 찾은 기업이었을까?
최초라는 신화
우리는 흔히 새로운 제품을 처음으로 시장에 내놓은 기업이 그 시장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현상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의 마음 속에 두번째는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전화를 최초로 발명한 그레이엄 벨은 알지만, 몇 시간 늦게 특허를 신청한 엘리샤 그레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라이트 형제는 유명하지만, 그 뒤에 하늘을 난 산토스 뒤몽은 프랑스에서나 알려진 인물이다.
이처럼, 최초만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는 생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잘 따져보면, 그 신화는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증기 기관의 발명가는 제임스 와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훨씬 전 뉴코맨은 실용 가능한 증기 기관을 만들었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기 수십년 전, 험프리 데비라는 사람이 야크등을 만들었다. 컴퓨터의 윈도우형 운영 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록스가 발명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최초의 발명자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최초라는 사실을 넘어 다른 요인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시기에 발명을 해야 한다. 또, 그 발명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상용화된 제품이 시장에 나와야 한다.
최초 진입자의 운명
최초의 발명자라고 해서 반드시 기억되지 않는다는 점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진정한 최초의 발명자이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발 발명자이든 간에, 발명가 혹은 발명 기업이 반드시 그 시장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화의 발명가 벨은 전화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는 항공기 산업을 일으키지 못했다. 보잉이나 에어버스는 물론, 과거의 맥도널 더글러스나, 록히드 등 어느 회사도 라이트 형제와 관련이 없다. 제록스는 컴퓨터 운영 체제 시장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갖지 못하고 있다. TV를 발명한 사람은 베어드다. 그러나 TV 시장의 강자는 RCA와 소니였고,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초의 발명자가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는 현상은 최근에도 나타나고 있다. 흔히 최초의 온라인 서점은 아마존닷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구현한 사람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컴퓨터 리터러시 북스토어라는 서점 체인을 운영하던 찰스 스택이라는 사람이다. 또, 최초의 온라인 증권사는 찰스 슈압 또는 이트레이드가 아니라, 1995년 설립된 넷 인베스터다. 찰스 슈압은 1996년초까지 인터넷 주식 거래 서비스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PDA의 시초는 애플의 뉴튼이다. 애플의 CEO였던 존 스컬리는 뉴튼을 가리켜 혁명 그 자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현재 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PDA 시장은 HP나 팜(Palm)이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례들을 살펴보자. 디지털 SLR 카메라가 처음 나온 것은 거의 10년 전이다. 그러나, 디지털 SLR 시장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MP3 플레이어도 초기 제품 출시 후 약 3~4년후에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모니터용 LCD 패널도 제품이 시장에 나오고 상당 기간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장을 키워갔다. 그런데, 지금 시장의 1위 기업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디지털 SLR을 처음 만든 코닥의 시장 점유율은 미미하고, 후발인 캐논과 니콘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MP3 플레이어를 처음 만든 엠피맨은 도산했다. 후발 주자인 아이리버와 아이팟이 시장의 핵심 주자다. LCD 패널 시장은 선발 업체인 샤프 대신 한국의 후발 주자가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흔히, 최초 진입자는 후발 기업에 비해 확실한 이점(First Mover’s Advantage)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 이점으로는 고객의 인지도, 유통에 대한 지배력, 자원 확보의 용이성 등 다양한 요인이 지적된다. 그런데, 왜 선발 기업이 시장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기업들간의 경쟁 구조에는 복잡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지만, 선발 기업과 후발 기업의 경쟁력 차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문화의 충돌과 타이밍의 적절성이라는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
문화의 충돌
흔히 사람의 사고 방식을 좌뇌형과 우뇌형으로 나눈다. 논리에 강한 좌뇌와 창의에 강한 우뇌형 사고 중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특성과 강점이 있을 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조에 강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고객 서비스에 능한 기업도 있다. 품질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잘 만드는 기업도 있고, 고객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고급 제품에 강한 기업도 있다.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말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적합한 것이 있을 뿐이다.
이런 차이는 근본적으로 기업의 전략의 차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지속되고, 그 차이가 기업의 경쟁력이 될 무렵에는 그 차이는 곧 기업의 문화로 고착된다. 기업의 문화는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고, 만약 바뀌었을 경우, 기존의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블루오션에 관해서도 이러한 논리는 어김없이 적용된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조해 내는 능력과 시장에서 상품화에 성공하는 능력은 다르다. 보통 새로운 아이디어를 처음 시장에 내놓은 기업들은 대부분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갖고 있고, 소규모 벤처 기업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도박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기꺼이 해보겠다는 모험심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정적 사업 기반이 없는 벤처 기업의 구성원들은 실패해도 크게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효율을 짜내는 일에는 약하다. 즉, 창의성이 강한 기업은 효율과 품질의 균일성이 생명인 상품화 과정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반면, 기존 사업 기반이 강한 대기업 구성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런데, 실패를 두려워하고 책임을 묻는 조직 문화는 반드시 나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불량을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활동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생산 공정에서 실패를 용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산성의 미세한 차이가 손익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경쟁사에 비해 뒤쳐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은 끊임없는 개선 활동을 추진하는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업 문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최초로 제품을 내놓은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게 한다. 반대로 기존의 생산성과 안정적 운영에 길들여진 기업들은 그만큼 새로운 제품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어렵다.
덜 익은 시장
최초의 제품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코닥의 디지털 SLR 카메라는 성능은 좋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디지털 SLR 카메라의 부품 가격이 떨어질 때 캐논과 니콘은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갖고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MP3 플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 기능 자체는 새로웠으나, 조작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고 기능도 다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MP3 플레이어가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받아들여질만한 형태로 발전하는 타이밍에 아이리버는 강한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해서 시장을 장악했다.
이러한 사례는 반드시 먼저 내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때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는 것이 성공의 요체임을 보여준다. 신제품이 본격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능과 가격을 달성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갖추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 기간 동안 어설픈 제품을 자꾸 내놓으면서 힘을 허비하기보다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강력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즉, 블루오션을 먼저 발견하는 것보다, 늦게 가더라도 확실한 그물을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시장, 어떻게 차지하나
지금까지 최초로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그 시장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보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생산성과 효율에 적합하게 단련된 기존 대기업이 창의성에 기반한 신제품 개발에 적합하지 않다면, 기존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해법은 유연함과 창의력을 키워 블루오션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약한 부분을 보강한다고 해서, 태생적으로 강한 기업에게 맞서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자사가 강한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앞서 살펴본 많은 사례들에서처럼, 신제품 개발이 아니라 상품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품화라고 해서 초기 제품 개발보다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경쟁 기업들 속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기업만이 성공적인 상품화를 이룰 수 있다. 그렇다면 상품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노력이 필요할까.
●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져라
상품화할만한 대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탐색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새로운 무엇인가는 자사의 사업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때 탐색의 초점은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 되어야 한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시장, 즉 블루오션을 찾는다면, 소비자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시작한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관점이라면, 소비자보다 다른 기업의 동향을 주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얼리어답터를 주목하라
모든 신제품은 초기의 숙성 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시장을 형성한다. 이 초기 숙성기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소비자가 바로 얼리어답터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을 과감하게 구입하고 사용한다. 이들의 생각과 평가는 제품의 개선 포인트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제품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핵심 지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데, 얼리어답터들에게 빠르게 확산된다면, 대중화 시기가 다가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시장은 너무 빠른 기업도, 너무 늦은 기업도 환영하지 않는다. 시장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장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에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 과감하게 행동하라
후발 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발 기업의 궤적을 뒤따라 가다가, 확실한 차별성으로 시장에 충격을 가해야 한다. 그 충격은 고객들이 후발 기업을 선발이라고 기억할 만큼 강력한 것이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후발 주자로서 시장을 석권한 대표적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애플의 운영체제와 유사했고, 그 태생은 제록스에서 찾을 수 있다. MS 워드나 엑셀도 워드퍼펙트나 로터스 1-2-3, 콰트로 프로 등의 뒤를 따르는 후발 제품일 뿐이었다. 그러나, 번들 판매, PC 업체와의 제휴 등 과감한 마케팅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확고한 시장 지배자가 되었다. 포드는 자동차를 처음 만든 회사가 아니지만, 표준화와 컨베이어 생산 시스템을 통해 선발 업체를 눌렀다. 보잉도 항공 산업의 후발 주자였지만, 탁월한 생산성으로 시장을 석권했다. 한국의 LCD 업체들은 LCD 시장이 성장할 때 과감한 투자를 통해 리더로 떠올랐다. 이밖에도 수많은 사례들에서, 시장을 지배한 후발 업체는 어느 회사든지 적절한 타이밍에 과감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인큐베이팅에 힘써라
후발 기업이 선발을 누르고 선두에 나서는데 중요한 걸림돌이 있다. 바로 특허 문제다. 제조업의 경우는 특허가 크게 문제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 보통 특허료가 부품 혹은 완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표준 경쟁에서 자사의 입지를 넓히려는 분위기는 특허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 등 일부 산업에서 특허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소규모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신제품 개발에 접근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즉 벤처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를 하면서 지적 소유권 공유를 주장하는 등의 방법이다.
벤처 기업의 활용은 특허 이외에도, 블루오션을 찾는 작업을 대행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기업에 부족한 창의성과 모험심을 가진 벤처 기업을 앞세워 신시장을 찾고, 그렇게 찾아낸 시장에 기존 기업의 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스페인의 왕이 군대 대신 탐험가 콜럼버스를 먼저 보낸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기업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을 반드시 직접 찾을 필요는 없다. 기존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기존 기업의 경우, 적성에 맞지 않는 신사업 탐색 대신,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기존의 강점을 살리는 방향에서 신사업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당^^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퍼가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