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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송(鎭宋) 십자가
지난 주간에 운현궁 나들이를 했다. 구한 말 흥선대원군의 집으로, 이곳에서 고종이 12살까지 자랐다. 임금이 자랐으니 잠저라고 불린다. 후손들이 서울시에 재산을 맡긴 까닭에 지금은 시민이 주인인 조선시대의 왕실 고택이다. 창덕궁과 인사동 사이에 위치해 발길도 쉬운 편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서울시청과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주최하여 7대 종교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개신교회 담당자의 요청으로 십자가를 전시하였다. 다른 종교들의 경우, 자신의 체계를 소개하는 사진전으로 운영한 반면, 개신교는 대표적 상징이고 존재 이유와 목적인 십자가를 보여주는 것이 제격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천주교는 고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었다. 서울 하늘은 화창하고, 운현궁 마당은 밝았다. 겨우 23개의 십자가일망정 소개글과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살피는 것이 방문 이유였다.
문득 송 목사님이 떠올랐다. 거의 10년 전쯤 신문기사 때문에 만난 집안 형님이다. 조선일보가 <쉽게 쓴 십자가 이야기>를 소개하며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데, 이를 보고 당시 <진천 송씨 종친회보>를 편집하던 형님이 연락한 것이다. 혹시 본관이 진천이냐는 것이다. 전화 속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진천 송씨는 물론 같은 안성공 파임을 확인하였다. 게다가 13년 차이를 두고 같은 신학교를 동문수학한 선후배라는 사실 때문에 급속히 친밀해졌다. 십자가가 맺어준 형님인 셈이다.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떠나서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조기은퇴 후 귀국해 인사동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놀랍게도 소년 시절에 배운 한문학 덕분에 지금은 옛 한문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는 일로 현역 이상으로 분주하게 지낸다. 평생 미국에 살던 분이 대종회의 홍보이사 역할을 맡아 종친 중 소개할 만한 인물들을 발굴하는 중이었다. 이듬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종친회보에 나온 내 사진과 소개글을 보시고 몹시 흐믓해 하시던 일이 떠오른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코로나19 시절에도 병혁 형님은 종종 외신에 나온 기사들을 일러주었다. 토요일 밤에 내일 설교에서 사용할 만한 해외 토픽감 에피소드를 일러주며, 아우를 응원하였다. 100세를 맞은 영국인 캡틴 톰 모어(Captain Tom Moore)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점심을 먹는 식탁에서 자신이 익힌 유튜브 영상 제작법을 실연하면서, 아우도 십자가 영상을 만들라고 권면하셨다. 곧 80세를 바라보는 형님의 모습은 노익장이 아닌, 여전히 청춘의 품모이다.
운현궁을 함께 들른 후 형님은 곧 바로 영상을 제작해 한 꼭지 올렸다. “진천송씨의 십자가를 어제 병구 족제를 보내고서 이 짧은 동영상 하나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려서 여기 링크를 보내요. 혹 열리지 않을가 싶어 동영상을 따로 보내리다. 족형 병혁.”
형님은 진천송씨의 순교자 송마리아(1753-1801년)를 소개하였다. 송마리아 할머니는 조선 왕실 최초의 그리스도인으로 철종 임금의 할아버지 은언군의 아내 상산군부인이다. 1801년 3월 17일(음) 예수 신앙을 지닌 것과 주문모 신부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죄목으로 송마리아와 며느리 신마리아 왕족의 두 부인은 사사되었다. 대왕대비의 준엄한 명문이 남았을 뿐, 어떤 재판이나 심문, 형식과 절차가 없었다.
“강화읍에 갇힌 죄인 인(은언군)의 처 송씨와 상기 죄인 인의 아들 담의 처 신씨의 사건에 대하여,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둘 다 사학에 물들었음이 명백하고, 이들이 고약한 외국종자와 상통하고 외국인 신부를 보았으며, 또 엄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염치없이 그를 자기들 집에 숨겨 두었음이 명백하다. 이런 중대한 죄를 생각하면 그들은 하루라도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음이 만인에게 명백하다. 그런즉 그들에게 독약을 내려 둘이 함께 죽게 하라.”
명령이 떨어진 그 다음 날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대한 사형은 바로 집행되었다. 사약을 받는 것은 자살이라며 거부한 까닭에 강제로 사약을 먹인 결과다. 그 비감한 역사는 절두산에 남아있는 ‘은언군과 상산군부인 진천송씨 묘비’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사패금표석’이 고증하고 있다. 병혁 형님은 송씨 중 최초의 그리스도인이고, 또 순교자인 송마리아 할머니를 진천송씨의 십자가, 곧 ‘진송십자가’라고 불렀다. 속닥속닥 십자가의 고리는 한도 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