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과 자갈의 비유처럼) 자업자득, 자작자수만 고수하면
말년에 마음 돌린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그것의 예외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말년의 예외를 인정해주면
미리부터 믿을 필요 없이 끝에 가서 잠깐 믿으면 된다. (교회에 십일조 안 냈어도 같은 효과)
이렇게 되면 그 종교는 망하고, 안 그러면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이것이 종교의 패러독스(모순)이다.
그래서 불교도 예외를 인정하지만 불교는 심판론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빼줄 수는 없고
그 사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공덕을 급조해서 만들어 주는 방식을 취한다.
(예: 입시기도는 부모님이 대신 하고, 천도재는 자식이 대신 함)
이런 것을 가리켜 '가족합산 마일리지'라고 할 수 있다 ㅎㅎ
자식들이 자꾸 비행기를 타고 다니더라, 내 것을 누군가 찾아먹고 있는 것 ㅎㅎ"
-------------- 참 재미있는 설명인데, 이것을 회향으로 설명하면 ------------------------
법구비유경 '담장 밖 경'
죽은 이들은 담장 밖에 서 있고 옛집에 들어오려고 문기둥에 서 있네.
사람들은 많은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도 과거에 지은 업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네.
죽은 이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보시하고 이렇게 빌어야 한다네.
“이 공덕이 죽은 이에게 돌아가기를! 죽은 이가 행복하기를!”
친척의 그늘에 모여든 죽은 이들은 먹을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이렇게 감사를 해야 하네.
“그들 때문에 이런 것을 얻었으니 그들이 오래 살기를!
우리를 이런 위치에 있게 해준 그들에게 보답이 있기를!”
월호스님 법문
천도재의 진정한 의미는 '빚을 갚는 것'인데 빚은 두 가지이다. 베품에 대한 빚, 진리에 대한 빚.
그래서 베품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보시를 해야 하는데 보시의 복전(福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삼보에 대한 보시<敬田>, 부모와 스승에 대한 보시<恩田>, 병자와 가난한 사람 등 어려운 사람에 대한 보시<悲田>
그래서 이 경(經)에선 삼보에 대한 보시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천도재를 지낼 때, 먼저 상단의 부처님과 중단의 신장님들께 공양을 올리고나서
그 공양 보시의 공덕을 영단 즉 조상님들께 회향하는 마음가짐으로 재(齋)를 지내야 하는 것이고
죽은 이들은 그 회향을 받으면서 또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주는 것이다.
또 두 번째 진리에 대한 빚을 갚으려면 열심히 마음공부, 경전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천도재를 지낼 때 스님들께서 부처님 법문, 즉 염불을 들려 주시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