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watch?v=q2nORfVOkwk
2025.5.18(주일) 사무엘상 12:19~25 ‘두려움이 임할 때’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위협 앞에서도 두렵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도 두렵습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결과 앞에서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두려움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두려움은 인간이 위협을 감지할 때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며, 이를 이기기 위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매우 다양합니다.
1. 회피 (Avoidance) 두려운 상황이나 사람, 장소를 피하려고 합니다.
예: 무대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발표를 회피하거나, 높은 곳이 두려운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피하는 것.
2. 통제하려는 시도 (Control-Seeking Behavior)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예: 계획을 철저히 세우거나, 불확실한 요소를 제거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함.
3. 도피적 행동 또는 중독 (Escape or Addictive Behavior) 술, 게임, 인터넷, 쇼핑 등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함. 현실에서 직면하는 것을 피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함.
4. 과도한 자신감 혹은 공격성 (Overcompensation or Aggression)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지나친 자신감이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임. 예: 비난이나 방어적인 태도로 상황을 장악하려고 함.
5. 도움 요청 (Seeking Support) 신뢰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나누거나 조언을 구함. 공동체나 가족, 친구, 상담자에게 의지하려는 시도.
6. 현실 직면 및 문제 해결 시도 (Problem-Focused Coping)
두려움을 일으킨 실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함. 예: 면접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반복적인 연습과 준비로 자신감을 키우려는 태도.
7. 자기 암시 및 긍정적 사고 (Cognitive Reframing)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 “이건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야”와 같은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통해 두려움을 이기려 함.
이런 행동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한 가지 방식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식이 혼합되기도 합니다. 상황의 성격과 개인의 성향, 신념 체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왕을 구한 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였구나”(19절)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까 두려워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두려워하지 말라”(20절)고 하십니다. 죄를 지은 백성에게, 실수한 사람들에게, 실패한 인생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첫 음성은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도 여전히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 대신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두려움에 떨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자신들만의 왕을 달라고 한 것이 큰 죄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레(천둥)과 비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심판을 실제로 경험했고, 그것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18절).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고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지도자인 사무엘 선지자를 멀리하고 왕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왕이 부럽고, 잘 갖추어진 제도와 환경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두려움에 떨며 이제야 자신들이 버린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19절). 두려움은 나쁜 것이지만, 죄에 대한 자각에 근거한 두려움은 자신을 회개로 이끌고, 그 회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애통해하는 마음입니다. 이 근심은 진정한 회개를 낳고, 회개는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반대로 “세상 근심”은 단지 상황에 대한 후회, 자책, 또는 사람 눈치로 인한 슬픔일 뿐이며, 생명을 주지 못하고 파멸로 이끕니다.
사도행전 2:37–3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중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반응합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자각과 구원에 대한 갈망으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묻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회개, 세례, 죄 사함, 성령의 선물이라는 구원의 흐름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회개는 구원의 첫걸음입니다.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죄책감, 실수, 실패 앞에서 그 두려움을 억누르려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그 두려움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기도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됩니다. 두려움이 임할 때 두려움에 떨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역대하 20:3–4 — 여호사밧 왕의 반응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여호사밧은 큰 적군의 침공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을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낯을 향하여 간구했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이 구원의 전환점이 됩니다. 이 본문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시편 56:3 — 다윗의 고백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요점: 다윗은 여러 번 두려움의 상황에 직면했지만, 두려움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단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은 두려움을 느끼는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갈 타이밍임을 보여줍니다.
적용) 요즈음 겪는 두려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이기려고 내가 일반적으로 택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 두려움이 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20~21절).
사무엘은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20절)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20절)고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의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한 악행과 죄의 결과로 인한 심판은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고 따르던 것은 아무런 유익도, 힘도 없는 헛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헛된 것’은 우상일 수도 있고, 인간적인 계산과 두려움에 근거한 선택들일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 회개한 백성에게 가장 좋은 적용은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두려움이 몰려올 때 세상이 주는 안정감이나 자기 방식을 붙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진정한 평강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을 따르겠다고 적용하는 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성도는 자기 욕망대로 세상 우상을 섬기고 자기 방식대로 사는 데서 돌이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마음다해 섬기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두려움이 물러나고 진정한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1:7–9 — 여호수아에게 주신 명령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요점: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엄청난 부담과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통해 담대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붙들면 형통하게 하겠다”고 하시며,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담대함 자체가 아니라 ‘말씀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시편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요점: 시편 기자는 고난과 두려움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살리고 위로했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은 단지 교훈이 아니라, 살리는 능력, 두려움을 이기는 위로의 통로입니다.
적용) 두려움이 임할 때 내가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헛된 우상과 세상 방법은 무엇입니까?
3.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돌이켜야 합니다(22~25절).
사무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이고, 그 분의 신실하심과 언약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넘어지고 때로는 죄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끝까지 책임져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 – 탕자의 비유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가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눅 15:17–18)
요점: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를 떠올리고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향한 사랑과 수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자식이라도, 돌아오면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열왕기상 19장 – 엘리야의 낙심과 회복 “그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왕상 19:4)
갈멜산에서 승리한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죽기를 구할 정도로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고 떡과 물로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으로 이끄십니다.
낙심하고 도망친 엘리야조차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또한 사무엘은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할 뿐 아니라, 선하고 옳은 길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합니다(23절).
이것은 오늘날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와 성도, 그리고 소그룹과 가정의 역할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선하고 옳은 길을 제시하며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참된 공동체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자라기 어렵다.”—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믿음의 공동체는 보너스가 아니라 신앙의 생존 조건입니다. 혼자선 살 수 없는 “지체”로 부르신 하나님의 설계를 따라, 공동체 안에 뿌리내릴 때 우리는 두려움도 시험도 함께 이겨내며, 세상 앞에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25절은 동시에 경고로 끝납니다.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지만, 그 은혜를 거부하면 다시 멸망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언약의 성실성)’과 ‘인간의 책임(회개와 순종)’ 사이의 긴장 관계에 관한 것으로,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1.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 (예: 삼상 12:22, 시 94:14, 히 13:5)
→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변함없이 지키시는 분이시며,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2.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 (예: 삼상 12:25)
→ 하나님은 회개 없는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1. “언약”은 무조건적이되, “복”은 조건적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무조건적)’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회개와 순종이라는 조건(책임)’이 따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지켜 행하라.” (신 29:9)
따라서 하나님은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지만”, 백성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나고 죄 가운데 있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멸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백성이 언약에서 떠난 것입니다.
2. 심판은 버림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기 위한 징계이다. 삼상 12:25의 경고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벌하실 수 있다는 뜻이지, 언약을 폐기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백성이 다시 돌이키고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주께서 징계하시는 자를 사랑하심이요…” (히 12:6)
실제로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지만(바벨론 포로 등),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부르십니다.
→ 즉, 버리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돌아오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이 부분을 요약해서 정리해드리면,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지만, 그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선 돌이킴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위협이 아니라, 은혜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스스로 떠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나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적용) 두려움이 임할 때 나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고 돌이킵니까?
결 론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다른 성경 말씀에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
(디모데후서 1:7)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이사야 41:10)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편 56:3)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한일서 4:18)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C.S. 루이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 두려움은 작아진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면 불안은 물러난다.”(코리 텐 붐 (Corrie ten Boom)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단 한 명이라도 다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마틴 루터)
죄가 크더라도, 실수가 반복되어 두려움이 내게 임하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변화의 적용을 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길 때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자녀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서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