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 가끔 반복해서 읽어오던 옛 현인의 글을 한편 소개합니다.)
이제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에픽테투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주변 사람,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힘들고 슬픈 일로 고통받을 때 결코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
삶에는 우리가 초대하지 않는 일들이 자주 찾아온다. 어떤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이때 가장 쉬운 것은 그것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도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다. 또 그것마저 불가능하면 이제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남이든 자기 지신이든 비난하는 것은 습관적인 충동이다. 지혜가 있는 자는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비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삶은 그냥 그 자체로 일어날 뿐이다. 일어난 일은 그냥 일일 뿐인데 그것에 판단과 생각을 가하여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일어나는 일을 무감동하게 받아들여라. 항상 그대의 생각과 판단을 주시하라.
병으로 고통받는가? 그러나 병은 그대의 육체를 공격할 뿐 그대의 내면을 공격할 수 없다. 그대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대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대의 의지는 전적으로 그대 자신의 것이다. 병이 그대의 육체를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는 그대의 육체인가? 그렇지 않다. 소아마비가 그대의 다리에 장애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대는 단지 그대의 다리인가? 그렇지 않다. 그대의 정신은 그대의 다리보다 훨씬 크다.
그대에게 찾아오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라. 어떤 장애와 불행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대를 가로막거나 불해하게 만들 수 없다. 다만 그대의 다리, 그대의 신체 일부분을 공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대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대의 정신은 어떤 사건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그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것을 항상 기억하라.
자연의 의지를 배우라. 어떻게 자연의 의지를 배울 것인가? 나날의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배우라.
예를 들어 이웃집 아이가 그릇을 깨뜨렸거나 그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쉽게 이렇게 말한다. “그릇은 언젠가 깨어지게 되어 있지요.” 그대 자신의 그릇이 깨졌을 때도 그대는 마찬가지로 똑같이 반응해야 한다. 중요한 일들, 더 큰 감정적인 의미를 가진 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자식이나 배우자 죽었는가? 그럴 경우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요. 누구든지 한 번은 죽게 되어 있지요. 아무도 영원히 살 수는 없어요.” 그러나 우리의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땅을 치며 “ 아, 슬프다! 난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하고 통곡한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대는 자연의 의지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대 자신에게 그러한 상황이 찾아왔을 때도 그 이해에 따라 행동하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 심지어 죽음 까지도 지성을 갖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대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라.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라. 자신이 만나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들이 가진 생각. 의견. 가치관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자세로 인생의 사건을 해석하는가?
그대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대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무엇이 가치있는 삶이고 무엇이 가치없는 삶인가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또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지난날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대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대가 가치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누구를 친구로, 삶의 동반자로, 이웃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라. 그들 모두가 그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는 그대를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사람, 영혼의 성숙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대 역시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기억하라. 인간관계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대가 만나는 사람의 인생은 그대로 인해 흔들리거나 깊어진다. 그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 말, 행동 등이 그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그 영향이 부정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
이제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할 시간이다. 그대가 갖고 있는 목표에 따라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할 시간이다. 정신적인 원리들에 따라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면 법을 지키듯이 충실히 그 원리를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의 확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신경쓰지 말라. 그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그 일을 미룰 것인가?
지금 곧바로 그대가 알고 있는 원리들을 실천에 옮기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더 이상 핑계대지 말라. 이것은 그대의 삶이다. 그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정신적인 추구의 길에 더 빨리 들어설수록 더 많은 행복이 그대에게 찾아올 것이다. 더 오래 기다릴수록 그대는 더 세속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자신이 더 낳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그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을 통해 그대가 얼마만큼 더 나아졌고, 얼마만큼 더 깊은 정신을 가진 인간이 되었는가를 삶에서 실천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책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다 읽었다고 해서 그대가 그 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 에픽테투스는 기원 후 55년에 태어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자다. 그는 원래 노예였으나 주인에게 탁월한 지혜를 인정받아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첫댓글 정말 좋은 글이네요. 오래 숙성시킨 지혜가 담겨있는.....
읽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감동을 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을 통해 그대가 얼마만큼 더 나아졌고, 얼마만큼 더 깊은 정신을 가진 인간이 되었는가를 삶에서 실천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박추기경님 말씀... 이밤, 피곤한 봄밤, 꽃이 흐드러진...새기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일상의 삶으로부터 실천궁행하고 도에 이르는 과정의 제시는 감동적입니다. 에픽테루스의 노예란 신분이 그의 인간적 가치를 훼손하지 못하였습니다. 멋집니다. 다만 안과 밖은, 마음과 육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