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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6권 22일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훈독본)
날짜 : 1958. 11. 9(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피조물
우리는 지음 받은 피조물이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도 그러하고 우리 자신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소유되지 못하고 있고, 또 만물과 이 세계를 절대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지으신 만물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자신 있게 주관하지 못하고 계신 이 서글픈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한 주인 앞에 소유되기 위한 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오르는 제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눈물을 많이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하여 슬퍼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고생을 대신하여 짊어지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의 참소를 받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행하고 충성하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다 싫다고 접어둔 슬픔이나 고통을 붙들고 충성하게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길이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원칙의 길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한 주인 앞에 소유되기 위한 노정이었습니다. 시대를 지나고 세기를 지나 오늘 이날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파란곡절의 투쟁역사를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 모든 피조만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인하지 못한다고 할진대 이 피조물을 주관하는 주인, 어떤 절대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절대자의 주관 하에서 어느 누구도 참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정점을 찾지 않는 한 이 세계는 투쟁의 역사를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오늘날 신자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온 정력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뜻대로 주관하지 못하시고 뜻대로 활용하지 못하시는 입장에 계십니다. 그래서 본래의 입장을 회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신앙자들은 시대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억울한 박해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싸워 나오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없는 것 또한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노정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실존적인 소유의 가치를 만우주 앞에 자랑하실 수 있게 되는 그 한 날이 하나님의 섭리가 총결산되는 날이요, 온 피조물이 바라는 초점이요, 예수님과 지금까지 왔다갔던 성현 현철들이 이상하던 기준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을 살펴볼 때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나 여러분 한 개인,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 여러분이 속해 있는 사회, 그리고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국가와 세계는 누구의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고도 할 수 없고 여러분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에게는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섭리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것을 다 갖고 나를 위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극히 슬픈 사정을 우리는 느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만물의 주관자의 입장에 세워주셔야 할 하나님인데 모든 것을 갖고 당신을 따르라고 권고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노정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세계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과 관계를 다 끊어 놓고 따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알아야 하고, 느껴야 하고, 체험해야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찾을 때가 오더라도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은 구원받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제3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나서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나 자신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기준과 자격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지 못하시는 입장에 처해 계시는 연고로 이 땅 위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을지라도 이 땅을 완전히 주관하여 자기의 것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용자는 나타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5-10)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하실 수 없었던 때 인간이 마음대로 행동한 것이 타락의 발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하실 수 있었던 때를 맞이하여 행동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후 지금까지 주관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을 움직이려고 했고, 국가를 움직이려고 했고, 세계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 시대를 총책임진 자리에 머문 사람이 없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씨족, 부족, 민족, 국가, 더 나아가서 하늘땅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때가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땅뿐만 아니라 영계가 있다면 그 영계까지 주관하시게 되는 필연적인 움직임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전체의 이념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대하여 모든 물질을 버리고, 생명을 버리고, 이념을 버리고, 이 땅 위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정까지도 버리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인간을 대해서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요구의 조건을 우리에게 내세우게 되셨던가? 그것은 절대자의 소유의 권한이 나타나는 한 때가 기필코 옴으로 그때 우리를 하나님 앞에 넉넉히 설 수 있는 자격자로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선의 뜻을 찾아 나오던 사람들이 지켜 나와야 했던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하나님은 기쁨을 주시기 전에 고통을 당하게 하셨고, 무엇을 자랑하기 전에 핍박을 받게 하셨으며, 스스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피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도의 기준을 인간들 앞에 제시한 것은 어느 한 때를 계기로 인간들을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너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그 나라와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즉,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 것이냐? 선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 나라는 종교를 초월하고, 일개 국가의 관념을 초월하고, 인간의 차별을 초월하고, 주권을 초월하고, 어떤 문화나 사상을 초월하는 선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한 사람들이 이상적인 나라라고 주장했던 나라요,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이라고 주장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자기의 것을 마음놓고 주장할 수 있는 곳, 소유의 관념을 세울 수 있는 곳입니다. 그와 같은 곳이 우리가 바라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까지도 용납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탄을 치지 못하고 용납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사탄의 참소조건을 들어주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따르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싫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여 “하나님, 내 수중에 있는 이 세계를 당신께 드릴 테니까 아담의 자리에 나를 세워 주소! 그렇게 해주면 나도 인간이 모시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모시겠습니다” 하면서 간청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자신을 그러한 입장에 세워 주신다면 인간이 모시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모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난처한 입장에 계십니다. (5-12)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왔던 목적
그러면 하나님이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고 예수님을 보내서 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사탄이 아는 이상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사탄이 하나님을 위하는 이상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서 사탄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완성하는 것이 재림역사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사탄 된 동기가 어디에 있었던가? 천륜을 파탄시킨 동기가 어디 있었던가? 아담 해와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시던 이상 아담 해와를 사랑하려고 하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사랑하던 이상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고 했던들 사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조건이 걸렸던 것입니다. 악은 무엇인가? 자기보다 더 남을 위하지 못하고 선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이 조건에 다 걸려 있습니다. (5-14)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왔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만물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주장한 주의는 어떤 주의였던가? 예수님의 주의는 “나를 희생하고 민족과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 봉사하자”는 주의였습니다. 우주를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한 사람은 그 우주의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날 악의 세계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말없이 충성하고 봉사하는 무리는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한테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를 소유하실 수 있는 권한을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있음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런 소유권은 하나님 자신이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워서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중대한 의무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섭리를 대표하여 왔던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이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목 베임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천국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의 교단을 이루어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소유의 결정을 받은 성도들이 한국 강토의 어디에 있느냐? 그러한 교단은 한국 강토의 어디에 있으며, 그러한 민족은 세계의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내게 있는 온 기운을 쏟아서 지칠 때까지 부르짖어야 하며, 내 발을 움직여 쓰러질 때까지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나를 단장하기 전에 삼천만 민족을 단장하려는 마음, 나를 생각하기 전에 이 땅 위의 만민을 생각하려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풀 한 포기까지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중에서 폭발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갖지 못하고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됩니다.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의 눈물의 열매요, 하나님의 고통의 열매이고, 또한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오르는 제물입니다. (5-19)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민족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선지선열들이 간 걸음이 우리의 생활을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은 우리의 사조(思潮)를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탈되는 사람들은 천법에 의하여 대수술을 받아야 할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땅을 찾으시고 사람을 찾아서 하늘의 것으로 만드신 후에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생명을 자기의 것으로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념과 사랑을 만우주와 인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자랑한 사람이 있어요? 또, 영광의 하늘나라를 이루고자 생명까지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고자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복귀과정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권내에서 천국의 맛을 보았을지는 모르나 사탄을 제거시킨 가운데 진정으로 영원한 평화의 조국, 천국을 체휼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진정한 천국의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천국의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는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유가 결정되어야 할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그것은 한 포기의 풀과 같은 최말단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심정세계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소유의 형태는 상대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면 안됩니다.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형태여야 됩니다. 비로소, 그러한 세계가 건설되어야 하나님의 안식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6천 년 역사가 지난 오늘날까지 안식의 날을 자랑하며 쉬어 보시지 못한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도 복음의 말씀을 강조했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2천 년 섭리역사의 곡절 속에 역사를 붙들고 싸워 나왔지만 승리의 영광의 한 날을 맞아 아버지께 자랑하고 만민과 더불어 안식하고자 한 때가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예수님도 안식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까 우리도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이 오기 전에 전쟁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고통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가 안식의 맛이라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린 후 안식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소유해야 할 것인가? 안식의 동산, 행복의 동산, 선의 동산, 사랑의 동산, 이상의 동산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소유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탄에게 맞고 하나님한테도 맞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사탄과 하나님한테 맞았습니다.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몰아낸 동시에 로마인들도 몰아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을 볼 때, 하나님도 예수님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을 소유할 사람, 천국에 소유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노정에서 하나님 때문에 불쌍한 입장에 놓이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가운데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가장 불쌍한 민족입니다. 그런 민족일수록 하나님한테 가까운 것입니다. (5-24)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대환난이 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소유하려는 마음이 강한 자, 자기를 중심삼고 편안하기를 바라서 행동하는 자들은 들이침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대환난입니다. 그래도 인간들로 하여금 그러한 것을 거치도록 하여 각성시켜서 대심판을 통과하게 하시려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한다면 참을 위하여 살고 참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사람들은 불쌍해질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의 무덤에서 살아남아지는 무리가 안식의 동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볼 때 성경 66권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도 예수님이 죽으면서 증거한 진리를 붙들고 실천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소유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무슨 책임자니, 내가 어쨌는데 나를 몰라주느니 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무리는 어차피 한때에 가서 청산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정의에 불타는 마음, 새로운 이념의 동산을 건설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졌다고 할진대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소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소유의 권한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여러분은 자신을 넘어 세계를 대신하여 싸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손길이나 여러분의 발걸음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몸이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재창조 이념을 성취해야 할 천주시대입니다. 이러한 때 새로운 안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한 하늘의 용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이 간섭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밀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을 모시고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걸어갔던 예수님 이상, 6천 년 동안 뜻을 위해 갔던 어떠한 사람들 이상 어려운 길을 늠름히 걸어갈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와 이상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을 소유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옥도 주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지옥을 주관할 수 있었느냐? 만일 선한 면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책임지고 선한 면에서만 하나님을 위해서 죽었다고 할 때 천국은 주관할 수 있지만 지옥은 주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리에서도 자기의 절개를 지켜 천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지옥까지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지옥의 고난을 밟고 올라서서 사탄을 대하여 늠름하게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을 증거할 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염려할 줄 알고,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당당하게 나타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때에 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의 심판까지, 최후의 결정점까지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곳을 향하여 개인으로, 민족으로, 세계로 달려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게 하기 위하여 개인을 넘어 민족과 세계가 전부 다 들이침을 당하게 됩니다. 거기서 감사하며 넘어서는 무리가 새로운 하늘 백성이 되어 새로운 가정,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여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염려하고 우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금식도 시켜 봅니다. 그건 왜냐? 자기를 중심삼고 허덕이는 자리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금식도 시키고 시련도 겪게 합니다. 그런 자리를 피하면 들이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도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기준을 세워주시기 위하여 6천 년 동안 참고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악을 중심삼고 움직이던 모든 사람들을 선으로 굴복시키는 그 날이 대심판의 날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대심판을 넘어설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끝날에는 대심판, 7년 대환난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맞기를 싫어하고 피하는 자들은 천국 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즐겨하며 “어서 오게 해주시옵소서! 한 시간에 부딪치고 부딪쳐서 내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7년 대환난을 넘게 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가 되면 6천 년 역사의 소유는 문제없고 천국과 하나님의 심정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말씀드리고 요구하면 하나님이 응해주시는 존재, 즉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아버지는 우리를 자랑하시고, 우리는 수고하신 아버지를 대하여 공손히 경배하며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한 날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5-26)*
천일국 훈독경 제6권 22일 , 원문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날짜 : 1958. 11. 9(일)
장소 : 한국 전본부교회
하나님의 소유와 우리의 소유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피조물
우리는 지음 받은 피조물이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도 그러하고 우리 자신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소유되지 못하고 있고, 또 만물과 이 세계를 절대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지으신 만물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자신 있게 주관하지 못하고 계신 이 서글픈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한 주인 앞에 소유되기 위한 노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슬픈 사정
예수님은 요셉의 집에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의 전권대사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긴 역사를 거쳐오시면서 그런 주장을 한 번도 못하셨음을 알았던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최후의 기도를 하는 마당에서도 자기 뜻을 중심삼고 “아버지,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못 하고 “아버지,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땅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에 대한 존재의식과 소유관념이 강했지만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자기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한테 소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알았던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을 자기의 심정으로 대신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대신할 수 있었던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피조만물과 인간들 앞에 구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5-15)
천국 백성의 심정
그러면 천국의 백성들은 어떠한 사람들이겠는가? 자기를 들어 만민 앞에 봉사의 깃발을 들고나서는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어느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그 민족을 위하여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자기의 생명까지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곧 천국 백성들입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규합해 천국이념을 성취하셔야 될 하나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31)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모순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러한 말씀을 했던가? 그것은 6천 년 동안 안 먹고, 안 마시고, 안 입더라도 회복해야 할 천적인 이념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굶주리고 불쌍한 민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 이상 불쌍한 입장에 계시며, 어떤 억울한 민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 이상 억울한 입장에 처하여 계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염려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야 할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염려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예수님은 그러한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 그는 자기의 굶주림을 걸어놓고 땅 위에서 나와 같이 굶주림을 당하는 선한 무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염려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선한 입장에 있지 못한 자신이 굶주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굶주려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이 우리에게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진대 어떠한 사람들을 택하실 것인가? 또, 어떠한 사람들을 택하여 자기의 자녀로 삼으실 것인가? 자기의 굶주림을 넘고 자기의 어려움을 넘어서 남을 위하여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실 것이고, 자기의 분함과 슬픔을 넘어 하나님의 분함과 슬픔을 염려하여 울 줄 아는 사람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기 일신의 운명이 촌각에 달려 있던 십자가상에서도 원수들을 바라보며 “하나님, 저들에게 천벌을 내리소서”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이 천국 백성의 심정이요, 곧 하나님의 심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를 살펴보게 될 때 하늘나라에 남아질 수 있는 백성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소유라고 주장하실 수 있는 민족은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하실 수 있는 땅은 어디에 있으며, 그러한 물건이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천국 가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천국은 내 것이야” 하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을 왕왕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예수님도 천국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에 서지 못했는데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도 지금까지 수고하고 계십니다.
지금 영계에 있는 수천 억의 영인들이 해방과 영광의 자리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어찌하여 그러한 입장에 처하여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창세 후 지금까지 천국을 이뤄놓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입장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땅 위의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천륜의 원칙과 배반되는 입장에서 그러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5-17)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오르는 제물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면 나갈수록,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하면 할수록 빚져 있는 자신을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그 나라와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찾아오시며 수고하신 역사적인 빚이 6천 년 동안 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한 자체가 만족과 기쁨을 가졌다고 해서 천국을 소유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하나님 대신 염려하고 하나님 대신 보호해 주어야 할 세계가 남아 있는 한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자로서 주도적인 행사를 할 수 있는 심적인 기준을 가지고 이 땅에 왔지만 한 번도 그렇게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쳐 주었고, 심지어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생활한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로지 남을 위하던 생활이었습니다. 남을 위하여 허덕였고, 남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남을 위하여 욕을 먹었고, 남을 위하여 죽임을 당했던 서러움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서러움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온 하늘땅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시며 만민을 대하여 다같이 즐기자고 하실 수 있는 그 날이 되기 전에는 누구든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사랑을 강조했고, 희생과 봉사를 강조했고, 핍박과 천대받는 생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눈물을 많이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하여 슬퍼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고생을 대신하여 짊어지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의 참소를 받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행하고 충성하는 만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다 싫다고 접어둔 슬픔이나 고통을 붙들고 충성하게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길이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원칙의 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에 불을 붙이게 된 것은 초창기의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노정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천국 백성인데 왜 죽어” 하며 부정하는 무리가 나타났던들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이 한국에 전파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죽어? 왜 욕을 먹고 천대를 받아야 하느냐” 했다면, 오늘날 여러분이 믿을 수 있는 구원의 노정이 인류의 역사상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국가에서 애국자들을 들어서 충성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그것은 애국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일신의 욕망과 명예를 버리고 그 나라의 뜻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라가 당하는 고통을 대신 당하고, 나라의 슬픔을 먼저 슬퍼하고, 그 나라의 주인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늘
우리는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도 그러하고 우리 자신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소유되지 못하고 있고, 또 만물과 이 세계를 절대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지으신 만물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자신 있게 주관하지 못하고 계시는 서글픈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은 한 주인 앞에 소유되기 위한 노정이었습니다. 시대를 지나고 세기를 지나 오늘 이날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파란곡절의 투쟁역사를 거쳐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 모든 피조만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인하지 못한다고 할진대 이 피조물을 주관하는 주인, 어떤 절대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절대자의 주관 하에서 어느 누구도 참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정점을 찾지 않는 한 이 세계는 투쟁의 역사를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오늘날 신자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온 정력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뜻대로 주관하지 못하시고 뜻대로 활용하지 못하시는 입장에 계십니다. 그래서 본래의 입장을 회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신앙자들은 시대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억울한 박해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싸워 나오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하나님이 주관하실 수 없는 것 또한 하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노정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서러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실존적인 소유의 가치를 만우주 앞에 자랑하실 수 있게 되는 그 한 날이 하나님의 섭리가 총결산되는 날이요, 온 피조물이 바라는 초점이요, 예수님과 지금까지 왔다갔던 성현 현철들이 이상하던 기준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을 살펴볼 때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나 여러분 한 개인,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 여러분이 속해 있는 사회, 그리고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국가와 세계는 누구의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고도 할 수 없고 여러분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에게는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섭리라는 표어를 세워 놓고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것을 다 갖고 나를 위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극히 슬픈 사정을 우리는 느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만물의 주관자의 입장에 세워주셔야 할 하나님인데 모든 것을 갖고 당신을 따르라고 권고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노정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세계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과 관계를 다 끊어 놓고 따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알아야 하고, 느껴야 하고, 체험해야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찾을 때가 오더라도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은 구원받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제3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나서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나 자신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기준과 자격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지 못하시는 입장에 처해 계시는 연고로 이 땅 위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을지라도 이 땅을 완전히 주관하여 자기의 것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용자는 나타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노정은 어느 때까지 계속될 것이냐? 이 땅이 영원히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한 주인공이 결정되는 그 날까지 역사는 곡절의 노정을 거쳐나갈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문화 혹은 정치권력과 종교 등 모두를 자기의 소유인 것같이 자랑해 왔지만 사조의 변화에 따라서 어떤 민족이 자랑하던 문화는 그 중심이 다른 데로 옮겨졌고, 어떤 주의 주장을 중심삼던 모든 정치권력도 바뀌었으며, 종교까지도 바뀌었습니다.
역사노정을 고찰해 볼 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그 어떠한 움직임도 결정적인 소유권을 가진 입장에 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노정을 돌이켜 볼 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5-10)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하실 수 없었던 때 인간이 마음대로 행동한 것이 타락의 발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하실 수 있었던 때를 맞이하여 행동했던들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후 지금까지 주관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을 움직이려고 했고, 국가를 움직이려고 했고, 세계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 시대를 총책임진 자리에 머문 사람이 없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씨족, 부족, 민족, 국가, 더 나아가서 하늘땅까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때가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땅뿐만 아니라 영계가 있다면 그 영계까지 주관하시게 되는 필연적인 움직임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전체의 이념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대하여 모든 물질을 버리고, 생명을 버리고, 이념을 버리고, 이 땅 위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정까지도 버리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인간을 대해서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런 요구의 조건을 우리에게 내세우게 되셨던가? 그것은 절대자의 소유의 권한이 나타나는 한 때가 기필코 옴으로 그때 우리를 하나님 앞에 넉넉히 설 수 있는 자격자로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선의 뜻을 찾아 나오던 사람들이 지켜 나와야 했던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하나님은 기쁨을 주시기 전에 고통을 당하게 하셨고, 무엇을 자랑하기 전에 핍박을 받게 하셨으며, 스스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피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도의 기준을 인간들 앞에 제시한 것은 어느 한 때를 계기로 인간들을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너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그 나라와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즉,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 것이냐? 선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 나라는 종교를 초월하고, 일개 국가의 관념을 초월하고, 인간의 차별을 초월하고, 주권을 초월하고, 어떤 문화나 사상을 초월하는 선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한 사람들이 이상적인 나라라고 주장했던 나라요,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이라고 주장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자기의 것을 마음놓고 주장할 수 있는 곳, 소유의 관념을 세울 수 있는 곳입니다. 그와 같은 곳이 우리가 바라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까지도 용납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탄을 치지 못하고 용납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탄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사탄의 참소조건을 들어주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따르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싫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하여 “하나님, 내 수중에 있는 이 세계를 당신께 드릴 테니까 아담의 자리에 나를 세워 주소! 그렇게 해주면 나도 인간이 모시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모시겠습니다” 하면서 간청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자신을 그러한 입장에 세워 주신다면 인간이 모시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모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난처한 입장에 계십니다. (5-12)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왔던 목적
그러면 하나님이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고 예수님을 보내서 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사탄이 아는 이상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사탄이 하나님을 위하는 이상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서 사탄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완성하는 것이 재림역사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사탄 된 동기가 어디에 있었던가? 천륜을 파탄시킨 동기가 어디 있었던가? 아담 해와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하시던 이상 아담 해와를 사랑하려고 하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사랑하던 이상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고 했던들 사탄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조건이 걸렸던 것입니다. 악은 무엇인가? 자기보다 더 남을 위하지 못하고 선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이 조건에 다 걸려 있습니다.
그러면 선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며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냐? 또, 하나님한테 소유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한테 소유될 수 있는 만물은 어떤 것인가? 그 귀결점은 무엇일 것인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입장에 선 존재, 하나님한테 흡수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법은 자기를 위하라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의 사람들은 가정, 사회, 국가, 세계, 하늘땅의 모든 존재가 자기 개인만을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도와 다른 점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세계에서 어떤 타락의 현상이 벌어졌는가 하면 만물과 세계 그리고 하나님까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 속으로 끌려들이려고 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생긴 타락현상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 관념까지도 전체의 것으로 느끼고 전체를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선의 역사는 무엇이냐? 내 개인의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남을 위하여 새로운 방향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곧, 이것은 종교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세기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자기를 위하여 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5-14)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왔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만물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주장한 주의는 어떤 주의였던가? 예수님의 주의는 “나를 희생하고 민족과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 봉사하자”는 주의였습니다. 우주를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한 사람은 그 우주의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날 악의 세계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말없이 충성하고 봉사하는 무리는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한테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를 소유하실 수 있는 권한을 찾아드려야 할 책임이 있음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런 소유권은 하나님 자신이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워서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중대한 의무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섭리를 대표하여 왔던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이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목 베임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30여 평생의 법을 지키는 자세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혼란 된 이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잘났다고 자기의 주장을 세우고 자기의 권한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참된 크리스천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나 하나님이 소유하실 수 있는 참된 백성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천국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의 교단을 이루어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소유의 결정을 받은 성도들이 한국 강토의 어디에 있느냐? 그러한 교단은 한국 강토의 어디에 있으며, 그러한 민족은 세계의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내게 있는 온 기운을 쏟아서 지칠 때까지 부르짖어야 하며, 내 발을 움직여 쓰러질 때까지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나를 단장하기 전에 삼천만 민족을 단장하려는 마음, 나를 생각하기 전에 이 땅 위의 만민을 생각하려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풀 한 포기까지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중에서 폭발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갖지 못하고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됩니다. 그러한 인간이 하나님의 눈물의 열매요, 하나님의 고통의 열매이고, 또한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오르는 제물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의 갈 길을 개척할 자는 누구인가? 진정으로 이 민족을 위하여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백성들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분열된 교단을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교단을 붙들기 위하여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청년 남녀들이 땅을 치고 호소하면서 위선자들과 피 흘리는 혈투전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5-19)
미국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종교적인 이념
오늘날 서구의 물질문명이 많이 발달했습니다. 이것은 애급 문명을 시발로 하여 앗시리아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 희랍 문명과 로마 문명을 거쳐서 서구의 문명을 형성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3천 년 이상의 문명을 자랑하고 있던 애급은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한 문명을 건설했던가? 애급 사람들은 태양신을 숭배했고 오시리스(Osiris)라고 하는 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신앙과 사상으로 그들의 정신을 무장하고 단결된 힘을 발휘하여 그러한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정책적인 이념으로 삼고 그 이상의 표준을 향하여 민족을 이끌어 애급 문명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국가를 세웠는데, 그때에 그들이 자기의 민족을 넘어서 이방나라에 좋은 점들이 있다고 할 때는 그 좋은 점들을 흡수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는 망했지만 그들의 문명은 역사를 따라서 발전해 왔습니다. 오리엔트 지방에서는 앗시리아 문명과 바벨론 문명이 일어났는데,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유대교를 중심삼고 헤브라이즘이 형성되어 신을 중심삼은 문명이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리스 지방에서는 외적인 신의 이념을 중심삼은 희랍 문명이 발전해 나오다가 예술을 숭배하던 여러 사조들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희랍인들이 창설한 독특한 종교적 이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했는데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던 과정에서 기독교 사상과 융합되었고, 그 후 로마로 건너가 기독교 문명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기독교는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그 이념권에 있던 사람들을 상하를 막론하고 흡수하여 융합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세속적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치시게 되었습니다. 만일 로마 교황청이 부패하지 않고 자기들이 있음은 세계를 위함이요, 자기들이 있음은 인류를 위함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들이 좋아하기 이전에 남들이 좋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즉, 나보다는 남을 위해주는 사상을 가졌더라면 교황청이 붕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두면 안되겠기에 하나님이 외적으로는 문예부흥을 일으켜 치셨고 내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구교를 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퓨리턴들이 미 대륙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은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정치이념, 기독교의 종교이념, 희랍의 지성주의가 융합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범미주의(汎美主義)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미국이 민주주의를 통합하고 천륜과 연결될 수 있을 그때까지 국가적인 책임을 감당하려면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할 것이냐? 먼저, 자기 제일주의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미국 국민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긴요한 것입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 문화, 과학, 종교, 정치체제 등 모든 것이 자기 국민만을 위하여 있다고 주장하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미국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종교적인 이념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뜻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문예부흥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헬레니즘의 복고운동, 즉 그리스 정신에 입각하여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아의식을 강조한 운동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을 위주로 민주주의 권내에 있는 모든 기독교는 초대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씀만을 믿을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내포되어 있는 사상을 찾아서 그것을 중심삼고 재무장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현재의 기독교가 중세의 구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5-22)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민족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선지선열들이 간 걸음이 우리의 생활을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은 우리의 사조(思潮)를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탈되는 사람들은 천법에 의하여 대수술을 받아야 할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땅을 찾으시고 사람을 찾아서 하늘의 것으로 만드신 후에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생명을 자기의 것으로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념과 사랑을 만우주와 인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자랑한 사람이 있어요? 또, 영광의 하늘나라를 이루고자 생명까지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고자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복귀과정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권내에서 천국의 맛을 보았을지는 모르나 사탄을 제거시킨 가운데 진정으로 영원한 평화의 조국, 천국을 체휼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진정한 천국의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천국의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는 떠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유가 결정되어야 할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그것은 한 포기의 풀과 같은 최말단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심정세계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소유의 형태는 상대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면 안됩니다.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형태여야 됩니다. 비로소, 그러한 세계가 건설되어야 하나님의 안식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6천 년 역사가 지난 오늘날까지 안식의 날을 자랑하며 쉬어 보시지 못한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도 복음의 말씀을 강조했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2천 년 섭리역사의 곡절 속에 역사를 붙들고 싸워 나왔지만 승리의 영광의 한 날을 맞아 아버지께 자랑하고 만민과 더불어 안식하고자 한 때가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예수님도 안식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까 우리도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이 오기 전에 전쟁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고통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가 안식의 맛이라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린 후 안식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소유해야 할 것인가? 안식의 동산, 행복의 동산, 선의 동산, 사랑의 동산, 이상의 동산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소유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탄에게 맞고 하나님한테도 맞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사탄과 하나님한테 맞았습니다.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몰아낸 동시에 로마인들도 몰아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을 볼 때, 하나님도 예수님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을 소유할 사람, 천국에 소유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노정에서 하나님 때문에 불쌍한 입장에 놓이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가운데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가장 불쌍한 민족입니다. 그런 민족일수록 하나님한테 가까운 것입니다. (5-24)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대환난이 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소유하려는 마음이 강한 자, 자기를 중심삼고 편안하기를 바라서 행동하는 자들은 들이침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대환난입니다. 그래도 인간들로 하여금 그러한 것을 거치도록 하여 각성시켜서 대심판을 통과하게 하시려는 아버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한다면 참을 위하여 살고 참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사람들은 불쌍해질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의 무덤에서 살아남아지는 무리가 안식의 동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볼 때 성경 66권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도 예수님이 죽으면서 증거한 진리를 붙들고 실천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소유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무슨 책임자니, 내가 어쨌는데 나를 몰라주느니 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무리는 어차피 한때에 가서 청산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정의에 불타는 마음, 새로운 이념의 동산을 건설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졌다고 할진대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소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소유의 권한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여러분은 자신을 넘어 세계를 대신하여 싸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손길이나 여러분의 발걸음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몸이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재창조 이념을 성취해야 할 천주시대입니다. 이러한 때 새로운 안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한 하늘의 용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이 간섭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밀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을 모시고 위로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걸어갔던 예수님 이상, 6천 년 동안 뜻을 위해 갔던 어떠한 사람들 이상 어려운 길을 늠름히 걸어갈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와 이상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을 소유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옥도 주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지옥을 주관할 수 있었느냐? 만일 선한 면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책임지고 선한 면에서만 하나님을 위해서 죽었다고 할 때 천국은 주관할 수 있지만 지옥은 주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리에서도 자기의 절개를 지켜 천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지옥까지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지옥의 고난을 밟고 올라서서 사탄을 대하여 늠름하게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을 증거할 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염려할 줄 알고,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당당하게 나타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때에 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후의 심판까지, 최후의 결정점까지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곳을 향하여 개인으로, 민족으로, 세계로 달려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게 하기 위하여 개인을 넘어 민족과 세계가 전부 다 들이침을 당하게 됩니다. 거기서 감사하며 넘어서는 무리가 새로운 하늘 백성이 되어 새로운 가정,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여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염려하고 우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금식도 시켜 봅니다. 그건 왜냐? 자기를 중심삼고 허덕이는 자리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금식도 시키고 시련도 겪게 합니다. 그런 자리를 피하면 들이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도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기준을 세워주시기 위하여 6천 년 동안 참고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악을 중심삼고 움직이던 모든 사람들을 선으로 굴복시키는 그 날이 대심판의 날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대심판을 넘어설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끝날에는 대심판, 7년 대환난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맞기를 싫어하고 피하는 자들은 천국 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즐겨하며 “어서 오게 해주시옵소서! 한 시간에 부딪치고 부딪쳐서 내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7년 대환난을 넘게 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가 되면 6천 년 역사의 소유는 문제없고 천국과 하나님의 심정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말씀드리고 요구하면 하나님이 응해주시는 존재, 즉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아버지는 우리를 자랑하시고, 우리는 수고하신 아버지를 대하여 공손히 경배하며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한 날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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