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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6권 23일
천국은 나의 소유(훈독본)
날짜 : 1986. 1. 5(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하나님의 중심은 사랑
오늘은 ‘천국은 나의 소유’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천국의 중심이 어디냐” 하고 묻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중심은 뭐냐? 그것은 천국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천국이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그 내용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의 중심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중심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누구의 것이냐 할 때 천국은 하나님의 것이요, 또 하나님은 누구의 것이냐 하면 천국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것이 천국의 것이 될 수 있고, 천국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느냐? 사랑만을 중심삼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또, 대상 자체가 주체를 대해서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을 가지고는 서로의 소유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반드시 지상세계와 천상세계를 연결해 가지고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연결하는 사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천국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혼자 계셨을 때는 어떠했을 것이냐? 하나님한테도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137-309)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여러분이 혈통적인 모든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통해서 인연되었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줄기를 통해서 연결시켜 가지고 그 핏줄이 연결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은 어디에 기원해서 살다가 갔느냐 할 때 사랑의 핏줄을 이어받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 간 인생이었더라,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연결된 밑바탕이 뭐예요? 나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부모를 바탕으로 한 나, 또 조상을 바탕으로 한 나입니다. 끝에는 하나님의 나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몸과 마음의 중심이 되는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나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을 중심삼고 서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바탕의 근원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137-311)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중심삼고 돌고 있습니다.
안식이 어디에 있느냐?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최고의 안식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자리를 찾게 된다면 의식주의 문제를 초월할 수 있고 잠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도 그 사랑 앞에는 소화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중심삼은 내가 될 때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가치로 보면 무한한 가치와 대등한 자리에 올라감과 동시에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 앞에 그 가치를 당당히 나타낼 수 있는 권위까지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생각할 때 나를 동떨어진 나로 알았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나입니다. 그 사랑의 배후는 무엇이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를 중심삼고 내 자체가 사랑으로 연결된 사위기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나가 누구냐, 도대체? 나는 뭐예요? 난 남자고, 난 여자지요. 그러면 그 남자라는 것은 무엇이고 여자라는 것은 뭐예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겨났어요?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이렇게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상대로부터 찾아지기 때문에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은 사랑을 앞에 놓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죽음도 사랑을 가지고 소화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애승일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죽음을 소화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랑을 가지고 소화하느냐? 죽음이 슬픈 거예요? 그 사랑하는 자식이 여기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횡적인 사랑에 박자를 맞추는 것보다도 종적인 사랑에 박자를 맞추기 위하여 이동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동하는 세상에서는 죽음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가지고는 영계와 육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의 힘을 통해서는 죽음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애승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인간이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릅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슬픔이 아니라구요. 그것은 차원이 낮은 세계에서 차원이 높은 세계로 사랑의 다리를 통해서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화식입니다. 차원 높이 승화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137-314)
사랑을 중심삼고 나를 내 것으로 규정해야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예요? ‘천국은 나의 소유’입니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자기가 자기 것이 못 된 그 자체가 내 것으로 만드는데, 그건 도적놈이나 강도보다도 더 나쁩니다. 내가 내 것이 안 되어 가지고 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그래요? 그런 허황된 노릇이 어디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나왔습니다. “아이고, 이 집이 내 집이다” 하면서 내 집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러면 너는 네 것이냐? 집이 네 것이기 이전에 네 자신이 네 것이냐? 이거 문제입니다.
근본이 될 수 있는 자기 자체가 자기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대답할래요? 여자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이거 문제가 큽니다. 여자가 자기의 것이 자기 것이에요? 젖이 자기 것이에요? 궁둥이 큰 것이 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 입술이 그렇게 얄팍하고, 수염도 안 나고 삔들삔들한 것이 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겼어요? 근본을 헤쳐 봐야 됩니다.
내가 누구의 것이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내 것이라는 것을 결정해야 되느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우주적인 사랑의 질서에 화합할 수 있는 기준에 서 있어 가지고 모든 사랑이 나와 더불어 화동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오케스트라 같은 것을 들어 보게 되면, 전부가 자기 나름대로 따로 하거든요. 뭐 옆으로 불고, 버티고 불고, 까불어 불면서 야단하지만 모두 다 박자가 맞아 들어갑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화합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우주애가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 몸 마음이 주고받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주고받겠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그 사랑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나입니다. 나라는 소유결정은 내 몸이 있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있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가진 입장에서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라는 절대기준을 갖고 나올 수 있습니다. (137-328)
사랑이 가는 데 안 따라오는 게 없다
나라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가치결정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하느냐?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이 영원히 갈라지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품고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음, 내가 제일이다”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 이렇소! 당신이 잘난 게 뭐요? 나보다 크다뿐이지…. 이 원칙에 불합격하는 당신은 하나님의 노릇을 못 합니다” 할 때, 하나님도 “문 아무개, 네 말이 틀렸다” 안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하하하…” 하실 것인데, 그것은 “그럴 성싶고, 안 그럴 성싶지” 하시는 말이 아닙니다. 만사가 오케이라는 것입니다. 두루뭉수리든, 평평이든, 납작이든, 삼각형이든, 뾰쪽이든 다 좋다는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판대기 안에서는 무엇이 없다고 해도 좋고, 안 입어도 좋고, 새까맣게 알록달록하게 차려도 좋습니다. 좋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만지고도 또 만지고 싶고, 두들기고도 또 두들겨 패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만물을 놓고 “너희는 전부 다 누구의 것이 되고 싶어, 이 쌍놈의 것들아” 하면서 매일같이 아침부터 욕을 하고 들이 밟고 하더라도 사랑하기에 미치는 주인이면 좋다고 합니다. 남편이 하루에 나갔다 들어와서 몽둥이찜질을 하더라도 사랑의 표시를 그렇게 하면 얼마나 행복해요! “예뻐 못 견디겠다. 몽둥이로라도 패 줘야 내 마음에 흡족한 사랑의 표시가 되겠으니까 두들겨 팬다. 이 쌍것아, 죽어라” 하면서 별의별 욕을 하더라도 오케이입니다. 사랑의 매를 맞아 죽었다면 천국에서 1호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정 가지고는 못 잴 것이 없고, 사랑의 주머니에는 안 들어가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는 데 안 따라오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137-331)
사랑은 영원한 것
여러분, 영계에 가서 “하나님…” 하면, 이 속에서 “응” 한다구요. 하나님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무칠 때 하나님은 내 속에 들어와서 대답하시더라 이거예요. 그렇지 않을 때는 먼 데서 대답하시지만 사랑이 그리운 마음에 사무치면 이 중앙에 들어와 계시더라 이겁니다. 그냥 그대로 보통 얘기할 때는 하나님이 먼 데서 대답하시지만 그립고 보고 싶어서 부르게 될 때는 벌써 내 속에 들어와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이 언제나 계십니다. 영원히 같이 계십니다. 시작에서 같이하시고, 과정에서 같이하시고, 영원히 같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 설정할 수 있고, 그 이론을 통해서 이상적인 행복의 경지를 연결시켜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우주까지 천국화가 가능합니다. (137-333)
가정은 사랑을 전시하는 제1전시장
그래서 나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거예요?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사랑의 실체적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사랑에서 태어나서 사랑의 길을 가다가 사랑의 열매로 돌아갑니다. 하나님한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한테 돌아가게 되면 우주에 안 통하는 데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것이라는 소유관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사랑에서부터입니다. 사랑이 설정 안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몸과 마음을 사랑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왜 그리워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 그리워합니다. 자식은 왜 그리워하느냐? 미래의 사랑을 나에게 압축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형제의 사랑을 왜 그리워하느냐? 평면적인 세계의 사랑을 사방에서부터 압축시켜서 나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부모형제가 그립고 자식이 그립습니다. 원인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원인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미래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자식을 그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서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부부를 좌우로 하게 되면, 아들딸은 전후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를 꽁꽁 다짐해서 열매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일 년 열두 달 전후 좌우에서 풍상을 겪은 모든 요소들을 압축해 가지고 결실됩니다. 사랑의 결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이 요사스러운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레버런 문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입어 이 땅 위에 천리의 기본을 밝히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러한 사랑의 논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왜 그리워한다구요? 원인을 나에게 갖다 붙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식은 왜 그리워한다구요? 미래를 압축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는 원인과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좌우, 남자 여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중앙에 갖다 압축시킵니다. 열매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은 자식을 중심삼고 전후로 압축시킵니다. 왜 그래요? 사랑의 모태가 나를 중심삼고 둥지를 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뭘 하느냐? 하늘과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적당히 필요한 게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자식이 적당히 필요한 게 아니에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내와 남편도 적당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라구요. 형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의 사랑의 핵을 이루기 위해서 연단하고 가는 수련장이 가정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전시하는 제1전시장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핵인 내 가치를 무한히 확대시키기 위한 전시장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그렇습니다. 서로가 떠나면 안됩니다. 어머니가 있는 것은 우주를 대할 수 있는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의 가운데 있는 이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가 살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천국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인연지어지는 천국은 누구의 것이냐? 내 것입니다. (137-335)
하나님의 소유
세상의 에미 애비들은 자식들의 사랑을 부모의 것으로 만들고 아무개 문중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나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몰아내 가지고 레버런 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것이 되는 데 있어서는 사랑의 인연이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도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아들딸밖에는 생각을 못 합니다. 자기들의 교파밖에 생각을 못 해요.
앞으로 세계인들 앞에 쫓김을 받아 가지고 보따리를 싸지 않으면 공산당의 칼날에 몸뚱이가 동강날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을 거치는 놀음을 통하지 않고 갖고 있는 사람은 우주의 강도입니다. 여기 있는 나 레버런 문은 이 나라에서 지금 부러운 것이 없는 자리에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결속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욕을 먹으면서도 빼앗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천국은 나의 소유’라고 했는데, 소유결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은 소유물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러한 입장의 남편으로서 서야 됩니다. 내 집이라는 말은 사랑과 인연되어 묶어진 요소를 말합니다. 나라고 할 때는 사랑을 통해 가지고 만백성과 연결되어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말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나면서부터의 소유결정은 어떻게 되느냐? 여자로 태어났으면 그 여자가 누구의 소유가 먼저 되어야 하느냐 하면 내 소유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임할 수 있게 될 때 여자라는 내가 되는데, 그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를 안 찾아가면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는 데 있어서 비로소 하나님의 소유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137-338)
타락한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소유가 있을 수 없어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소유결정이 아직까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로 보면 내 자신이 완성단계에 못 나갔기 때문에 내 자신의 소유결정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리고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있지만 내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결정을 볼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모양은 사랑이지만 내용이 미완성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남녀의 공동적인 소유결정이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집이 안 생겨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내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이 안 생겨났다 이거예요. 이게 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될 수 있는 나를 찾아야 됩니다. 내가 왜 태어났느냐? 부모의 미완성된 사랑으로부터 태어나서 완성된 사랑으로 결실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비애의 역사니 고해의 역사라고 합니다. 참다운 사랑의 길을 가는 사람한테는 비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깊은 사랑의 골짜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의 골짜기일수록 깊습니다.
누구든지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깊은 사랑의 사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천상세계에 가게 되면 활동범위가 깊고 높아집니다. 그러한 사랑의 범위에 의해서 소유권이 결정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되고, 지상생활에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내가 천국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의 도리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품에 못 들어갑니다.
오늘 ‘천국은 나의 소유’라고 했는데, 오늘날 이 세계에 하나님의 소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가지고 완성된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그 완성된 사람이 없으므로 완성된 가정이 안 나왔고, 완성된 가정이 안 나왔으니까 완성된 사회와 완성된 국가와 완성된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타락한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소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137-340)
사랑을 확대하면 자연히 천국이 된다
금년의 표어가 천국창건인데, 그 천국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첫 번째의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기준에서 내 존재의 기반이 생겨납니다. 나라는 가치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묶어지게 될 때 부부의 가치관이 생겨납니다.
그런 부부를 중심삼고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가정이 생겨날 때 가정의 가치관이 생겨나고, 그 가정의 사랑이 연결되어서 국가와 세계 그리고 천주의 가치관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부 다 말할 수 없는 가치의 실체권까지 연결시킬 수 있게 될 때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맞닿기 때문에 영원히 동화될 수 있는 체휼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입니다.
금년에 들어서 오늘이 첫 주일이고, 금년의 표어가 천국창건이니 만큼 여러분이 사랑을 확대하면 자연히 천국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오늘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에 들어가서도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아하, 내가 모가 났으니까 갈아주기 위해서 그러는구나”라고 생각하라구요. 그것이 전부 다 원만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대해 가지고 애를 태우면서 가르쳐 주고 그러는 것도 때가 많이 끼어 있는 것을 닦아 버리고 풍화작용에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핵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여러분이 천국창건의 기지를 확대하는 것이 통일교회 1년의 표적이므로 열심히 그 기지를 확대시켜서 민족천국과 세계천국으로 창건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137-350)*
천일국 훈독경 제6권 23일, 원문
천국은 나의 소유
날짜 : 1986. 1. 5(일)
장소 : 한국 본부교회
하나님의 중심은 사랑
오늘은 ‘천국은 나의 소유’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천국의 중심이 어디냐” 하고 묻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은 누구냐? 하나님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중심은 뭐냐? 그게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의 중심이 뭐냐? 그 말이 뭐냐 하면, 그것은 천국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중심과 부체(副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이것은 하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천국이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그 내용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의 중심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중심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누구의 것이냐 할 때 천국은 하나님의 것이요, 또 하나님은 누구의 것이냐 하면 천국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것이 천국의 것이 될 수 있고, 천국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느냐? 사랑만을 중심삼고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으면 하나님도 이의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걸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나 영계 혹은 실체세계인 무형세계 전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 대상 자체가 주체를 대해서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을 가지고는 서로의 소유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한테 있어서 돈을 매개체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과 천국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지식을 가지고도 아니요, 어떠한 힘을 가지고도 안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러면 본래의 하나님 자신은 어떠했느냐? 천국은 반드시 지상세계와 천상세계를 연결해 가지고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연결하는 사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천국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혼자 계셨을 때는 어떠했을 것이냐? 하나님한테도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감각으로 봐서 뭐라고 할까요? 영적인 오관을 통해 가지고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차원이 높아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체가 없는 것 같지만 체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한테도 몸이 있고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느냐? 부모는 누구를 닮았느냐? 자식을 닮았습니다. 자식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자식은 누구를 닮았느냐? 부모와 비슷합니다. 그런 논리로 미루어 보게 될 때 하나님도 몸과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몸과 마음이 있는데 그 몸과 마음이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소유관념을 무엇을 중심삼고 설정했을 것이냐? 이거 중요한 얘기입니다. 우주의 근본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몸과 마음이 있는데, 그 몸과 마음이라는 것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마음을 표준으로 한 것이냐, 몸을 표준으로 한 것이냐? 이게 문제가 됩니다. (137-309)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왜 내가 제일 귀하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모릅니다. 어째서 내가 귀하냐? 모든 측정은 딴 사람을 중심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 살아온 수많은 조상들로부터 연결되어 가지고 몸으로 있는 나, 그 나라는 것을 제2의 존재로 취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도 모르게 나를 귀한 것으로 인정하고 나를 절대적인 자리에서 모든 걸 측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냐? 우리 인류의 조상입니다. 나는 그 조상을 닮아서 태어났다는 것 아니에요?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 역사과정에 지나갔던 수천 수만 대 선조들의 그 무엇이 피를 통해서 남아 있습니다. 그 피를 통해서 유전되어 내려오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연결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무엇이 근원이 되어서 연결되었느냐? 그것이 돈이었더냐? 아닙니다. 그럼, 오늘날과 같은 지식이었더냐? 아닙니다. 어떤 힘이었더냐? 아닙니다.
여러분이 혈통적인 모든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통해서 인연되었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줄기를 통해서 연결시켜 가지고 그 핏줄이 연결되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은 어디에 기원해서 살다가 갔느냐 할 때 사랑의 핏줄을 이어받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 간 인생이었더라,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연결된 밑바탕이 뭐예요? 나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부모를 바탕으로 한 나, 또 조상을 바탕으로 한 나입니다. 끝에는 하나님의 나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몸이 있어서 그 몸에서 시작되었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마음도 아니요, 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몸과 마음의 중심이 되는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나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을 중심삼고 서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바탕의 근원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게 볼 때 나라는 개념이 왜 중요하냐? 나를 왜 중요시하느냐? 이것을 확실히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나는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열매로 맺혀진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의 두 세계를 볼 때 영계를 마음의 세계라고 하면 육계는 몸의 세계라고 하는데 몸과 마음, 이것이 어디에 서 있느냐 이거예요. 이 우주에 개념이 있다면 그 개념이 우주적인 나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느냐?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기준으로 우주적인 자아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작은 데서부터 큰 것까지 운동하는 모든 자체는 순환운동으로서 발전하고 전진합니다. 모든 존재물은 반드시 하나의 원점을 중심삼고 돌고 있습니다. 돌고 있는데, 그 원점의 중심이 무엇이겠느냐? 돌고 있는 것은 핵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데, 그 핵이 무엇이겠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우주의 공통적인 핵이 되어야 하고, 모든 존재들이 그 존재의 가치를 절대화시키기 위한 기반에 서 있는데 그럴 수 있는 공통분모가 무엇이겠느냐 이거예요. 사랑이라는 걸 중심삼고 그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차원이 낮기 때문입니다. 차원이 높은 것이 안 보이는 것은 차원이 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낮은 급에 있는 하나님의 세포와 마찬가지가 피조물이다, 이렇게 생각하라구요!
여러분의 머리에는 여러분의 성품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성품이 있는데 그 몸과 마음에 있는 성품의 기원이 어디에 있었느냐 할 때, 그건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전수방법이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서 있느냐? 부모의 혈육을 이어받은 사랑의 터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를 닮았느냐 할 때 부모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사랑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닮을 수 있는 길을 어떻게 이어받았느냐 할 때 사랑의 길을 통해서 이어받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결과가 나라는 것입니다. (137-311)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중심삼고 돌고 있습니다. 아무리 무슨 일이 바쁘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나가서 일을 하더라도 그 마음은 자식에게 돌아옵니다. 자식을 중심삼고 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고생한 것을 전부 다 잊을 수 있는 것은 자식을 마음으로 그리다가 저녁에 돌아가 자식을 품고 사랑할 때 그 자식이 화동하며 웃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위안이 있습니다.
안식이 어디에 있느냐? 뭐 일 안 하고 편안히 쉬는 것이 안식이 아닙니다.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최고의 안식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자리를 찾게 된다면 의식주의 문제를 초월할 수 있고 잠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도 그 사랑 앞에는 소화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중심삼은 내가 될 때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가치로 보면 무한한 가치와 대등한 자리에 올라감과 동시에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 앞에 그 가치를 당당히 나타낼 수 있는 권위까지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생각할 때 나를 동떨어진 나로 알았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나입니다. 그 사랑의 배후는 무엇이냐? 하나님입니다. 맨 처음의 기원이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를 중심삼고 내 자체가 사랑으로 연결된 사위기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나가 누구냐, 도대체? 내가 무엇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나는 뭐예요? 난 남자고, 난 여자지요. 그러면 그 남자라는 것은 무엇이고 여자라는 것은 뭐예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겨났어요? 왜 이렇게 생겨났어요? 그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이렇게 생겨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생겨나고 여자가 그렇게 생겨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 사람이 왜 생겨났느냐 이거예요. 어디에서 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생겨났느냐? 여자가 이렇게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상대로부터 찾아지기 때문에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위해서 내가 왜 태어났어, 나를 위해서 태어났지”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 그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은 사랑을 앞에 놓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불평 바가지라도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면 가만히 있습니다.
할머니들, 생각해 봐요! 지금까지 층층시하로 시조부모로부터 시부모까지 모시고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 또, 제일 악한 뭐라고 할까요? 악하다면 이상하지만, 말썽꾸러기 며느리까지 같이 산다면 어때요? 지금까지 그러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이 있다면 다 소화해서 살로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무슨 살이에요?
그렇게 소화해서 사랑의 살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환경이 보기만 해도 눈을 찌푸리고 도망갈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한번 음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저렇게 극성맞은 시할머니로부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며느리까지 3대로 흉악한 것도 내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해 보라 이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위대하겠어요!
사랑만이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죽음도 사랑을 가지고 소화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애승일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죽음을 소화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랑을 가지고 소화하느냐? 죽음이 슬픈 거예요? 그 사랑하는 자식이 여기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횡적인 사랑에 박자를 맞추는 것보다도 종적인 사랑에 박자를 맞추기 위하여 이동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동하는 세상에서는 죽음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가지고는 영계와 육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의 힘을 통해서는 죽음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애승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인간이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릅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슬픔이 아니라구요. 그것은 차원이 낮은 세계에서 차원이 높은 세계로 사랑의 다리를 통해서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화식입니다. 차원 높이 승화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137-314)
사랑을 중심삼고 나를 내 것으로 규정해야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예요? ‘천국은 나의 소유’입니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느냐? 여러분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내가 물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것이에요? 자기가 자기 것이 못 된 그 자체가 내 것으로 만드는데, 그건 도적놈이나 강도보다도 더 나쁩니다. 내가 내 것이 안 되어 가지고 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그래요? 그런 허황된 노릇이 어디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나왔습니다. “아이고, 이 집이 내 집이다” 하면서 내 집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러면 너는 네 것이냐? 집이 네 것이기 이전에 네 자신이 네 것이냐? 이거 문제입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그 여자 자체가 자기의 것이에요?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이렇게 미인으로 생긴 여자이고 알뜰하니까 지나가는 남자들, 잘난 사람들은 전부 다 나한테 98퍼센트는 틀림없이 반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리 좋아했댔자 뭐예요? 그게 자기의 것이에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게 누구의 것이냐?
근본이 될 수 있는 자기 자체가 자기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대답할래요? 여자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이거 문제가 큽니다. 여자가 자기의 것이 자기 것이에요? 젖이 자기 것이에요? 궁둥이 큰 것이 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 입술이 그렇게 얄팍하고, 수염도 안 나고 삔들삔들한 것이 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겼어요? 근본을 헤쳐 봐야 됩니다.
내가 누구냐? 내 것이냐, 누구의 것이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내 것이라는 것을 결정해야 되느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우주적인 사랑의 질서에 화합할 수 있는 기준에 서 있어 가지고 모든 사랑이 나와 더불어 화동하고 나를 지나가면서 모른 척하지 않고 화동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오케스트라 같은 것을 들어 보게 되면, 전부가 자기 나름대로 따로 하거든요. 뭐 옆으로 불고, 버티고 불고, 까불어 불면서 야단하지만 모두 다 박자가 맞아 들어갑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화합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우주애가 내 마음의 중심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닙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라구요.
왜 그렇느냐? 마음과 마음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주고받으면 반드시 중심핵이 생깁니다. 강물이 소용돌이치게 되면 모래성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운동을 하면서 돌아서 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산같이 올라옵니다. 모든 작용이라는 것은 가운데로 집중하기 때문에 중앙부가 생깁니다.
그래, 몸 마음이 주고받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주고받겠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그 사랑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나입니다. 나라는 소유결정은 내 몸이 있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있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가진 입장에서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라는 절대기준을 갖고 나올 수 있습니다. (137-328)
사랑이 가는 데 안 따라오는 게 없다
세상에서 제일 큰소리가 뭐냐? 사랑의 소리입니다. 사랑의 소리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이 청각이라는 것은 주파수가 9백 몇 싸이클 이상이면 안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소리가 너무 커서 못 듣습니다. 무슨 소리가 크냐 하면 벼락치는 소리가 큽니다. 벼락치는 소리가 뭐냐 하면 하늘땅이 결혼식을 하는 소리입니다. 공중 전기하고 땅 전기가 좋아 가지고 키스하는 소리가 우레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벼락을 쳐 가지고 소리나는 것이 사랑하는 소리다 이거예요.
나라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가치결정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하느냐?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이 영원히 갈라지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품고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음, 내가 제일이다”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 이렇소! 당신이 잘난 게 뭐요? 나보다 크다뿐이지…. 이 원칙에 불합격하는 당신은 하나님의 노릇을 못 합니다” 할 때, 하나님도 “문 아무개, 네 말이 틀렸다” 안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하하하…” 하실 것인데, 그것은 “그럴 성싶고, 안 그럴 성싶지” 하시는 말이 아닙니다. 만사가 오케이라는 것입니다. 두루뭉수리든, 평평이든, 납작이든, 삼각형이든, 뾰쪽이든 다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조화통이 뭐냐 이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저렇게 말할 때는 참 재미있게 하는데, 진짜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모르겠구만” 할 텐데, 그러면 “아, 사랑해요” 이래야 되겠구만!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가 “에이, 이 자식아…” 할 때, “이 자식, 요사스러운 자식 같으니라구! 그러면 네가 깨지지 나 안 깨져” 그러더라구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한 나, 그렇게 된 여자가 가만히 어디에 가서 궁둥이만 싹 보이고 숨어 있더라도 우주적인 사랑의 뭐라고 할까요? 그 사랑의 풀이 와 가지고 딱 붙여서 빼 갑니다. 그렇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즈음 여자들은 “전부 다 시집 잘 가기 위해서 대학 가지! 시집가기 위해서 요렇게 화장을 하고 오색가지 찬란하게 요렇게 이쁘장하게 차렸지, 헤헤헤…” 하는데, 요사스러운 것들이라구요. 그거 요사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판대기 안에서는 무엇이 없다고 해도 좋고, 안 입어도 좋고, 새까맣게 알록달록하게 차려도 좋습니다. 좋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만지고도 또 만지고 싶고, 두들기고도 또 두들겨 패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만물을 놓고 “너희는 전부 다 누구의 것이 되고 싶어, 이 쌍놈의 것들아” 하면서 매일같이 아침부터 욕을 하고 들이 밟고 하더라도 사랑하기에 미치는 주인이면 좋다고 합니다. 남편이 하루에 나갔다 들어와서 몽둥이찜질을 하더라도 사랑의 표시를 그렇게 하면 얼마나 행복해요! “예뻐 못 견디겠다. 몽둥이로라도 패 줘야 내 마음에 흡족한 사랑의 표시가 되겠으니까 두들겨 팬다. 이 쌍것아, 죽어라” 하면서 별의별 욕을 하더라도 오케이입니다. 사랑의 매를 맞아 죽었다면 천국에서 1호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정 가지고는 못 잴 것이 없고, 사랑의 주머니에는 안 들어가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는 데 안 따라오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문 아무개가 40년 동안 욕을 먹고 다니다 보니까 세계의 어디라도 선생님이 뭘 하게 되면 돈이 잘 생기고 내가 손만 닿게 되면 황금덩이가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말이에요, 그거 왜 그래요? 그것은 남이 모르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걸 모릅니다. (137-331)
사랑은 영원한 것
통일교회 문 선생을 만난 서양 간나들은 전부 다 선생님을 만나면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느냐? 자기 남편보다 더 좋아하니까 야단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좋아하니까 병입니다. 그래서 요사스런 바람을 일으켜 가지고 나를 욕먹게 한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욕을 먹었어요? 이 간나들 때문에 욕먹었지요. 통일교회 간나들이 전부 다 가르치는 대로 행동을 안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욕을 하더라도 싫지 않거든요. 내 여기 볼때기에 먼지가 붙으면 서로가 먼저 치우려고 생각합니다. 그저 두들겨 패도 “아이구, 여기에 무엇이 묻어서 털어 내려고 그럽니다” 하고 생각하거든요. 참, 이상하지요? 적당히 해석할 수 있고 적당히 오르락내리락 편리하게 모든 것이 궁글러 나가더라 이거예요. 그래서 성격 급한 이런 사람이 통일교회 교주의 노릇 40년 동안 해먹어도 누가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거 왜 그렇느냐?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꽃다운 청춘에 만나서 사랑하던 사람끼리 늙어 떨어진 호박같이 되어도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늙어 떨어져서 서리를 맞은 호박은 얼마나 정이 떨어져요! 그렇지만 말라 가지고 바삭바삭하고 쭈글쭈글한 호박이라도 만져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구요. 놔두면 뭘 해요? “새새끼들이 날아와서 사랑으로 파먹어 주면 좋겠다. 나를 파먹어라! 아 좋다”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만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진화론을 보게 된다면 온 세계는 약육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요. 이놈의 자식들…! 사랑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더 큰사랑에 연결되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내던지려고 합니다. 식물은 광물보다 사랑의 차원이 더 높기 때문에 광물은 식물에 흡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물의 원소보다 동물의 원소가 더 큽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 앞에 전부 다 흡수되겠다는 거예요. 사람한테 먹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한 나를 알겠지요?
여러분, 영계에 가면 그렇습니다. 영계에 가서 “하나님…” 하면, 이 속에서 “응” 한다구요. 하나님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무칠 때 하나님은 내 속에 들어와서 대답하시더라 이거예요. 그렇지 않을 때는 먼 데서 대답하시지만 사랑이 그리운 마음에 사무치면 이 중앙에 들어와 계시더라 이겁니다. 이거 다 체험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럴 성싶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그대로 보통 얘기할 때는 하나님이 먼 데서 대답하시지만 그립고 보고 싶어서 부르게 될 때는 벌써 내 속에 들어와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이 언제나 계십니다. 영원히 같이 계십니다. 시작에서 같이하시고, 과정에서 같이하시고, 영원히 같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 설정할 수 있고, 그 이론을 통해서 이상적인 행복의 경지를 연결시켜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우주까지 천국화가 가능합니다. (137-333)
사랑을 전시하는 제1전시장
그래서 나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거예요?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사랑의 실체적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사랑에서 태어나서 사랑의 길을 가다가 사랑의 열매로 돌아갑니다. 하나님한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한테 돌아가게 되면 우주에 안 통하는 데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것이라는 소유관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사랑에서부터입니다. 사랑이 설정 안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몸과 마음을 사랑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왜 그리워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 그리워합니다. 자식은 왜 그리워하느냐? 미래의 사랑을 나에게 압축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형제의 사랑을 왜 그리워하느냐? 평면적인 세계의 사랑을 사방에서부터 압축시켜서 나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부모형제가 그립고 자식이 그립습니다. 원인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원인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미래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자식을 그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서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부부를 좌우로 하게 되면, 아들딸은 전후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를 꽁꽁 다짐해서 열매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일 년 열두 달 전후 좌우에서 풍상을 겪은 모든 요소들을 압축해 가지고 결실됩니다. 사랑의 결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상이 요사스러운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레버런 문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입어 이 땅 위에 천리의 기본을 밝히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러한 사랑의 논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왜 그리워한다구요? 원인을 나에게 갖다 붙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식은 왜 그리워한다구요? 미래를 압축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는 원인과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좌우, 남자 여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중앙에 갖다 압축시킵니다. 열매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은 자식을 중심삼고 전후로 압축시킵니다. 왜 그래요? 사랑의 모태가 나를 중심삼고 둥지를 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뭘 하느냐? 하늘과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적당히 필요한 게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자식이 적당히 필요한 게 아니에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내와 남편도 적당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라구요. 형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의 사랑의 핵을 이루기 위해서 연단하고 가는 시련장이 가정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전시하는 제1전시장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지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습니다. 어떤 녀석은 싸움을 잘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등 별의별 요사스러운 녀석들이 많지만 어디에 화하느냐?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다 화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싸우던 형제끼리도 그리워하고 화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는 거예요? 사랑의 핵인 내 가치를 무한히 확대시키기 위한 전시장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그렇습니다. 서로가 떠나면 안됩니다. 어머니가 있는 것은 우주를 대할 수 있는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하, 전후, 좌우의 가운데 있는 이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가 살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천국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인연지어지는 천국은 누구의 것이냐? 내 것입니다. 내가 영국 땅에 가 가지고 영국을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이구, 이 나라는 눈이 시퍼렇고 금발 미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세계에 있어서 내노라하는 패들이 살고 있는데 동양의 까무잡잡하고 얼굴이 납작한 사람이 와서는 안 돼”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더 큰사랑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체가 되고 대상이 되어서 주고받는 사랑을 했다고 할 때는 후닥닥 비약합니다. 그래 가지고 주인 녀석이든, 도둑놈이든, 무엇이든 사랑이 없다고 할 때는 후닥닥 옮겨지는 것입니다. (137-335)
하나님의 소유
그래서 나는 사랑의 보따리를 지고 다니면서 세상의 가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을 맛 보여 가지고 가짜 사랑의 보따리를 회수합니다. 크리마스 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선물을 주러 다니지만, 나는 천대받는 사랑을 거두기 위해서 다니는 거라구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뭘 하는 무슨 할아버지예요? 사랑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레버런 문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
서양의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주면서 다니는데, 동양의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주면서 다니는 것이 아니고 거두러 다니는데 무엇을 거두러 다니느냐? 사랑의 열매를 거두러 다닙니다. 그렇게 거두어서 뭘 할 것이냐? 내가 장사를 해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팔려면 무한한 값으로 팔 수 있지만, 아니에요! 하나님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우게 해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 드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에미 애비들은 자식들의 사랑을 부모의 것으로 만들고 아무개 문중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나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몰아내 가지고 레버런 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것이 되는 데 있어서는 사랑의 인연이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도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아들딸밖에는 생각을 못 합니다. 자기들의 교파밖에 생각을 못 해요. 내가 자기들의 교파에 가 가지고 떡을 달라고 했어요, 밥을 달라고 했어요? 왜 통일교회를 이단으로 취급하고 야단이에요? 사탄 마귀가 옆에 따라다니는 것은 모르고, 앞뒤에 시커먼 자식들이 사탄 마귀의 아들딸인 줄 모르고 천리의 사랑길을 닦아주기 위해서 다니는 그것이 마귀예요? 암만 해보라구요! 누가 망하나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망하나, 반대하는 기성교회가 망하나 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인들 앞에 쫓김을 받아 가지고 보따리를 싸지 않으면 공산당의 칼날에 몸뚱이가 동강날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을 거치는 놀음을 통하지 않고 갖고 있는 사람은 우주의 강도입니다. 여기 있는 나 레버런 문은 이 나라에서 지금 부러운 것이 없는 자리에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다리를 놓아 가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결속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욕을 먹으면서도 빼앗아오는 것입니다.
암만 부잣집 맏딸이라도 종새끼와 사랑에 걸려들면 죽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를 못 보더라도 “잘 계시오” 하고 담을 넘어 도망갑니다. 암만 오라고 그래도 도망을 갑니다. 어디로 도망을 가요? 제일 싫어해야 할 사람을 따라갑니다. 거기에 사랑만 있다면 통일교회에 오지 말라구! 다 필요 없다구요. 뭘 하러 새벽같이 와서 야단들이에요?
나 요즘에 고단합니다. 매일같이 와서 어디 하루라도 편안히 쉬게 했어요? 어디, 며칠이에요? 보름이 지났는데, 요래 저래 뜯어먹고 깎아 먹다가 이제는 뼈다귀만 남았으니까 고아서 먹으려고 합니다. 동정은 하나도 안 하고 말이에요. 왜 그렇겠어요? 사랑이 그리워서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사랑이 그리워 미친 것들이 나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이용되어 줍니다. 이용되는 게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한번 맛을 보게 되면 사랑의 줄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천국은 나의 소유’라고 했는데, 소유결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구요?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은 소유물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러한 입장의 남편으로서 서야 됩니다. 내 집이라는 말은 사랑과 인연되어 묶어진 요소를 말합니다. 나라고 할 때는 사랑을 통해 가지고 만백성과 연결되어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말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나면서부터의 소유결정은 어떻게 되느냐? 여자로 태어났으면 그 여자가 누구의 소유가 먼저 되어야 하느냐 하면 내 소유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임할 수 있게 될 때 여자라는 내가 되는데, 그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를 안 찾아가면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는 데 있어서 비로소 하나님의 소유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137-338)
타락한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소유가 있을 수 없어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소유결정이 아직까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로 보면 내 자신이 완성단계에 못 나갔기 때문에 내 자신의 소유결정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리고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있지만 내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결정을 볼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모양은 사랑이지만 내용이 미완성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남녀의 공동적인 소유결정이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집이 안 생겨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내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이 안 생겨났다 이거예요. 이게 한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들딸이다 하실 수 있었던 아담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내 집을 이루려고 하셨는데 그 자리에 못 나가셨습니다. 왜 그랬느냐? 아담 해와가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결정의 한계선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타락한 세상의 가정들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를 결정하는 것이 원리인데,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소유로 되어 있다는 원통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다시 결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될 수 있는 나를 찾아야 됩니다. 내가 왜 태어났느냐? 부모의 미완성된 사랑으로부터 태어나서 완성된 사랑으로 결실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비애의 역사니 고해의 역사라고 합니다. 참다운 사랑의 길을 가는 사람한테는 비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깊은 사랑의 골짜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의 골짜기일수록 깊습니다.
누구든지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깊은 사랑의 사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천상세계에 가게 되면 활동범위가 깊고 높아집니다. 그러한 사랑의 범위에 의해서 소유권이 결정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되고, 지상생활에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무엇을 뿌려야 되느냐 하면 사랑을 뿌려야 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일생 동안 이러고 보니 아무것도 없다구요. 내 사랑의 확대를 꿈꾸다 보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고, 못난 사람으로 취급받고, 사탄으로 취급받고, 망할 녀석으로 취급받지만 나중에 누가 편들어 줘요? 하나님이 편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계의 끝까지 가 보면 하나님하고 짝자꿍이 될 수 있는 자리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세계의 통일은 통일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이 가능한 시대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내가 천국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의 도리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품에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시작이자 끝이라고 했지요? 그 시작과 끝을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힘도 아닙니다. 사랑만이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시공을 초월해 가지고 직통합니다.
오늘 ‘천국은 나의 소유’라고 했는데, 오늘날 이 세계에 하나님의 소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가지고 완성된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그 완성된 사람이 없으므로 완성된 가정이 안 나왔고, 완성된 가정이 안 나왔으니까 완성된 사회와 완성된 국가와 완성된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타락한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소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137-340)
사랑을 확대하면 자연히 천국이 된다
금년의 표어가 천국창건인데, 그 천국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첫 번째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모르면 안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기준에서 내 존재의 기반이 생겨납니다. 나라는 가치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묶어지게 될 때 부부의 가치관이 생겨납니다.
그런 부부를 중심삼고 전후, 좌우, 상하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가정이 생겨날 때 가정의 가치관이 생겨나고, 그 가정의 사랑이 연결되어서 국가와 세계 그리고 천주의 가치관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부 다 말할 수 없는 가치의 실체권까지 연결시킬 수 있게 될 때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맞닿기 때문에 영원히 동화될 수 있는 체휼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입니다.
씨의 열매는 시공의 모든 것을 동화시켜 가지고 압축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뿌리도 있고, 가지도 있고, 꽃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렇게 출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내 것이 됩니다. 하지만, 사랑이 떠나게 될 때는 하나님도 떠나십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생활을 많이 하면 대번에 압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조용한 데 가서 기도하려고 그러면 “기도할 것 없다” 하신다구요. 청평에 가려고 배 타기 전에 “하나님, 어디 있소” 하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네 마음속에 있지” 하십니다. 청평, 저 기도하는 산골짜기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은 누구의 것이라구요? 내 것, 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 말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이 왜 태어났어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싫지 않지요? 왜 살아요? 꾀죄죄해 가지고 보기 싫게 왜 살아요? 남 보기에는 꾀죄죄하고 못사는 것 같지만 사랑이면 그만입니다.
그 사랑이 둥근지 넓적한지는 모르지만 좋고 좋아서 크게 보태 나가면 무한히 미치지 못할 만큼 늘어납니다. 또, 압축하면 무한히 작아집니다. 마음대로 컸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웃음과 울음은 통합니다. 웃다 보면 눈물이 나오지요? 그거 왜 그래요? 사랑을 중심삼은 눈물은 슬픔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고통도 고통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죽음도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부활과 연결됩니다.
금년에 들어서 오늘이 첫 주일이고, 금년의 표어가 천국창건이니 만큼 여러분이 사랑을 확대하면 자연히 천국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오늘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에 들어가서도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아하, 내가 모가 났으니까 갈아주기 위해서 그러는구나”라고 생각하라구요. 그것이 전부 다 원만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대해 가지고 애를 태우면서 가르쳐 주고 그러는 것도 때가 많이 끼어 있는 것을 닦아 버리고 풍화작용에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핵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여러분이 천국창건의 기지를 확대하는 것이 통일교회 1년의 표적이므로 열심히 그 기지를 확대시켜서 민족천국과 세계천국으로 창건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13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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