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하여(7)
내가 왜 이리 상사화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산수 좋은 곳이라고 찾아와 마을에 발을 내리고 살던 어느 날, 마을 숲에서 만났다. 애절한 그리움을 지닌 꽃이란 걸 알았다. 내게도 맺혀 있던 무슨 그리움이 있었던지, 그 후로 상사화 꽃밭은 내 정서의 샘이 되고, 내 삶의 한 의지처가 되기도 했다. 비가 내리든 바람이 불든 그 꽃을 찾지 않는 날이 없었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그리며 돋아나고 피어나다가 말라가고 잦아드는 꽃이라지만, 나는 상사화를 보며 피어나고 잦아든다.
눈이 채 녹기도 전인 2월 하순께 어느 날 마을 숲에 들다 보면 문득 땅속에서 뾰족한 순이 솟는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순은 잎이 되어 자라난다. 봄을 지나 5월을 넘어서기까지 난초처럼 길쭉하고 치렁한 잎을 돋우어 내다가, 6월 들면서 꽃 한번 만나보지 못하고 서서히 말라간다. 7월이 되면 거의 형체도 없이 말라 땅속으로 잦아든다.
7월 말경이 되면 그 잎 진 자리에 또 순이 솟는데, 그 순은 잎이 아니라 꽃대가 된다. 솟은 꽃대는 며칠 만에 성큼성큼 자라나 끝자락에 여섯 잎 분홍 꽃을 예닐곱 송이 피워낸다. 한창 화사하게 피어나다가 지친 듯 꽃이 시들면서 진다. 진 꽃대 끝에 열매 같은 걸 남기지만, 그리던 잎을 만나지 못한 탓인지 맺지는 못한다.
꽃과 잎이 만나지는 못하면서 서로 그리기만 하다가 말라가고 져가기에 상사화相思花라 했다던가. 그렇다면 치렁한 잎이 말라 시들어가는 것이며. 그 화사한 꽃이 제빛을 잃고 져가는 것이 모두 그리움으로 애타 하는 몸짓이란 말인가. 그리움은 기다림이 되고 기다림은 병이 되어 그렇게 이울어가는 꽃-. 누구에겐지, 무엇엔지 모를 내 그리움도 그 꽃 따라 피고 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그 잎이 그리워할 자유를 무참히 빼앗겨 버렸다. 숲에 풀이 무성해 지면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숲의 무성한 풀을 베어내는데, 일 잘한다는 이장이 자기 집 과수원 네발 예초기를 몰고 나와 탱크로 적진을 쳐부수듯 숲의 모든 풀을 깡그리 밀어붙여 버린 것이다. 상사화 잎도 그 이장에겐 잡풀일 뿐이었다. 예초기 바퀴가 잎 잘려나간 알뿌리를 무자비하게 짓이기도 했다.
남은 것은 갈가리 찢긴 잎 자국, 무참하게 뭉개진 알뿌리 자취뿐이었다. 잎은 꽃이 그리워 말라갈 수도, 그리움에 지쳐 땅속으로 잦아들 수도 없게 되었다. 저 짓이겨진 알뿌리가 무엇을 그릴 수 있으며, 어떤 날을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움도 기다림도 모두 처절한 아픔이 되고 말았다. 이리 한 많은 그리움이 또 있을까.
처참한 날들이 하루이틀 흘러갔다. 누가 또 나처럼 애를 태울까. 이 뿌리를 보며 가슴 죄며 애태우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 한 사람뿐일 것이다. 나의 봄도, 여름도, 내 삶의 시간들도 무참히 다 쓸려 가버린 것 같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던 어느 시구가 아니라도, 이제 나는 무엇을 그리며,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나.
그 꽃자리를 잊지 못하고 떨칠 수 없어 날마다 찾아가 보아도 짓이겨진 상흔만이 애를 태울 뿐, 꽃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이 지나가고 열흘이 넘어갔다. 다른 해 같으면 벌써 꽃대가 솟고 연분홍, 진분홍 꽃 빛깔을 뿜을 때도 되었건만, 올해는 덧없고 허망하게 지나가야만 하는가. 저 알뿌리, 생기 차려주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아, 심상사성心想事成,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했다던가. 그렇게 빌고 빌던 어느 날, 마침내 움 하나가 솟아났다. 선 자리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다른 해에 꽃대가 솟아날 즈음을 두 주일쯤이나 넘긴 뒤였다. 저 움 커서 꽃대가 되어 꽃을 피울 무렵, 잃어버린 내 한 해가 다시 올 것도 같았다. 살아봐야겠다 싶었다.
내 삶에도 이장의 네발 예초기보다 더 비정한 일이 할퀴고 갔었다. 옆에 있던 사람을 데려가 버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무참히 데려갔다. 상사화가 그렇게 짓이기고 베어지듯 내 삶도 참혹하게 베어지고 말았다. 막막하고 처절하다 못해 그 네발 예초기가 내 삶을 다시 한번 밟고 가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살면 살아지는 건가. 크로노스 시간들의 흐름을 따라 카이로스 시간들도 추적추적 따라 흘러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두 해도 흘러갔다. 외로움일지 고독일지 모를 시간들 속에서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날 안아 주길 바라며, 상사화가 있는 숲 지나 강둑길도 걷고, 물에 비친 하늘 구름도 바라곤 했다.
짓이겨진 상사화가 다시 피어났다. 상처 난 명줄을 잡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하나둘씩 솟아나던 꽃대가 쑥쑥 자라 올라 꽃을 피워낸다. 눈부시다. 그 질곡 속에서도 힘을 어디서 만들어 내었을까. 잎을 애타게 그리는 그 그리움의 힘이었을까. 이 꽃처럼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며 기다리며 살다 보면 나에게도 그 힘이 일까.
오늘 찾아간 상사화밭에는 거의 모든 꽃대가 꽃을 활짝 피웠다. 짓뭉개어진 뿌리가 피워냈다. 살아보자. 그리다 보면, 기다리다 보면 내 삶의 날도 저리 다시 피어날까. 그리움은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그리움이지 않은가. ♣(2025.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