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부시終而復始
친구는 우리 네 사람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그날 이른 아침에도 저녁 아무 시에 모일 것이니 그때 보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던 사람이 그날 늦은 오후 무렵, 걷기가 힘들어 외출이 어려우니 셋이서 즐거운 자리를 가지라며 더 이상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문자를 다시 보내왔다.
무슨 오해가 있는 건지, 홀연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하니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속이 뒤틀리면서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말도 잘 안 나온다며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다 했다. 무슨 변인가 싶어 달려 가보겠다 하니, 부담된다며 오지는 말고 차도 소식을 기다려 달라 했다. 친구와 나눈 마지막 목소리였다. 소식은 아들이 보낸 모바일 부고장으로 왔다.
나 말고 세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내가 따로 만나던 세 사람을 한데 모았다. 넷은 나이도 거의 같고 모두 현직을 은퇴한 사람들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막걸릿잔이나 나누며 살아가는 회포나 풀어보자 했다. 그 세월이 십수 년이 흘렀다. 모두 인생을 살 만큼 살면서 산 고투 물 풍파 다 겪은 사람들이라 이해 못 할 말도, 그럴 일도 없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다 보니, 함께 앉아 잔을 기울이다 보면 지난 일들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철학이며 종교, 예술 등에 대한 고담준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치 이야기로 설왕설래할 때는 가끔은 지지도 보내지만, 때로는 분개도 하면서 ‘정 안 되면 우리라도 올라가 봐야 하는 게 아니냐.’ 하며 호탕하게 웃기도 한다.
화제에 가장 많이 오르는 것은 건강 문제다. 어디가 안 좋아 어느 병원에 가서 무슨 치료를 하고 어떤 약을 먹으며,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하고, 무슨 요법을 어떻게 쓴다는 등, 저마다의 비법, 비책을 털어놓느라 열을 올린다. ‘이런 이야기에 열 내는 걸 보니, 우리도 늙은 모양일세!’ 하며 또 한 번 웃는다.
무슨 문제를 토론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우리의 잔 속에 담기는 건 늘 웃음과 정이었다. 살아온 날들의 무슨 일을 말하다가는 입은 웃으며 눈은 눈물에 젖는 일도 없지 않았다. 한 친구는 ‘이런 말 다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네!’, 또 한 친구는 ‘한 달이 왜 이리 길어? 좀 더 자주 보면서 세상 욕도 좀 하자.’ 하며 다시 웃기도 했다.
십수 년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우리는 만났다. 그렇게 엄중했던 코로나 시기에도 약속한 달과 날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누구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날은 만사를 제친 날이었다. 그런 날들을 돌이키며 ‘우리는 목숨을 걸고 만났던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그런 뜻에서 건배!’ 호기로운 웃음소리가 술잔을 흔든다.
그렇게 담소하다 보면 서너 시간도 잠시, 종업원도 다 퇴근하고 혼자 남아 있는 주인 눈치를 보며 의자에서 억지로 몸을 떼어낸다. 이 친구는 자리 주선뿐만 아니라, 마칠 때는 뒤처리까지 말끔히 다 한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싫다 한 적 없이, 응당 자기가 해야 할 일인 줄로 알고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자리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한 친구와 함께 지하도 긴 길을 걸어가다가, 숨차고 힘들어 같이 못 가겠다며 먼저 가라 하더란다. 두고 먼저 갈 수 없어 보조를 맞추며 걸어 전철을 같이 탔다고 했다. 그날이 우리가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그다음 달 만날 날에 시각과 장소를 자기가 알려 놓고 자기만 오지 못했다.
셋이서 걱정스럽게 잔을 나누고 헤어진 두 주일쯤 뒤의 어느 날, 우리는 검은 옷을 입은 채 꽃장식에 둘러싸인 영정 앞에 앉아야 했다. 곧장 같이 한잔하며 잔을 내밀 것만 같았다. 병원에 입원한 지 사나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 했다. 급성 뇌경색이라 한다. 믿기지 않았다. 지금 다음 달 약속 문자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영정을 마주해야 했던 그날이 내 오랜 속병인 요통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영정과 헤어지고 병원행 먼 길 차를 탔다. 믿기지 않던 일이 내 통곡이 되어 울대를 치밀어 올라왔다. 친구는 정말 가버린 건가. 그리도 쉽게 갈 수 있는가.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가버릴 수 있다면 이 병고도 없을 것 아닌가.
의사가 내 검정 행색이며 그렁한 표정을 보고는, 어디 문상이라도 다녀오시느냐 했다. 가버린 친구한테 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의사와도 친숙하다. ‘친구가 가셔서 마음 아프시겠지만, 오랜 고생 안 하고 가신 건 다행이라 여기시고 좋은 데 가시도록 빌어 주세요.’ 다행이라고? 오랜 병을 안고 있는 나보다, 그래, 다행일지 모르겠다.
집에 와 넋을 놓고 앉아 있으려니 의사가 문자를 보내왔다. “…… 종이부시終而復始,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한다는 / 염주 알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을 / 발 없는 발이 걸어간다고 하더라구요. / 먼 길 고단하셨을 텐데 /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편안한 밤 되세요……” 아, 삶과 죽음이란 그런 걸까.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다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발 없는 발이 걸어가는, 그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이 바로 우리의 길일까.
잘 가시게, 다시 만나세! ♣(2025.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