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도 못내고 있는 상황에서 거금을 썼다. 물론, 카드로...
남덕유산 등반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목표는 수리산.
잘 될지 모르겠다.
- 등산 첫째날
집 뒤에서 출발을 했다.
짝꿍은 대충 2시간 30분 정도 코스란다.
그래서 준비한거라고는 고작 빵 한조각에 매실음료수 하나..
처음에는 그냥 산책 코스라고 해서 그냥 속고 말았다.
뒷꿈치는 까지고, 허리는 욱신거리고, 무릎은 따끔하고, 발목은 저린다.
배가 고파서 더이상 갈수가 없다.
너구리봉에서 빵을 먹고 동박골로 내려와버렸다.
12시에 출발해서 집에 오니 5시가 다 되었다.
등산을 4시간 이상 한 꼴이다.
이런,,, 예상보다 2배가 걸렸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술 한잔을 먹고 노래방에 갔다.
몸이 흐느적거린다.
내일 내가 움직일 수 있을까?
- 등산 둘째날
첫 등산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하루를 쉬었다.
둘째날이니 종주를 하자한다.
김밥 3줄과 귤, 정상주를 준비했다.
역시 집 뒤에서 엄마와 누리까지 다리 10개가 출발.
또 눈이 온것 같다.
미끄럽고, 춥고... 엄마는 첫 오르막길에서 포기하신다.
그냥 노적봉에나 가서 운동하시고 목욕을 가신단다.
할 수없이 다리 8개가 움직인다.
첫날보다는 수월하다.
그래도 숨이차고 몸이 아프기는 마찬가지..
중간에 누리가 버티며 걷기를 거부한다. 할수없이 안고간다.
그래도 인기척만 들리면 짖어댄다.
옷속으로 파고들어 머리만 삐죽 내민다.
귀여운 자식...
전에 먹던 자리에서 김밥과 귤, 커피, 홍삼차, 정상주 3분의 1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첫번째 소나무가 있는 막걸리집은 문을 닫았다.
수암봉으로 가기위해 철탑 여러개를 지나고, 철조망을 부여잡는다.
폭발물처리장이란다.
자리가 좋은 바위까지 모두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 있어 쉴곳도 없다.
이 좋은 산에 엄청난 크기의 흉물이다.
수암봉 바로 밑 헬기장까지 왔다.
더이상은 못가......나도 누리처럼 버틴다.
할 수 없이 막걸리를 두잔씩 하고, 약수터로 내려가기로 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잔동에 사신다는 등산과 마라톤을 즐겨하시는 아저씨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집까지 태워다 주신다며 같이 내려가잔다.
우리는 민폐라며 그냥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데 폐쇄적이 되어가는것 같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것에 대한 두려움이던가......
마음이 무겁다.
등반을 시작할때는 다리 열이 시작했다가 내려올때는 다리 넷이 걸어내려왔다.
- 등산 셋째날
집 문을 나서면서부터 엄살을 부렸다.
짝꿍은 가스공사부터 끝까지 종주를 하잔다.
난 그냥 수암봉만 올라갔다오자한다.
1시간 코스? 역시 나에겐 2시간이 걸렸다...
그냥 주구장창 올라갔다가 쭉 내려오는 코스다.
오랫동안 등산을 하는것 보다 더 힘들다.
발걸음에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처음엔 100걸음 걷고 쉬고, 그 다음엔 150걸음, 그 다음엔 200걸음....
내려가는 코스보다 올라가는 코스가 몸이 산소를 더 필요로 한다.
중력을 반하여 내 몸의 높이를 올릴때 큰 숨을 내쉬며 몸을 올리기때문인가보다.
숨조절에 들어간다.
많이 들이마시고, 적당히 내쉬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니 괜찮은것 같기도 하다.
신년산행을 가기위해서는 이틀이 남았다.
고민이 된다.
사야할것이 너무 많다.
짝꿍은 이왕사는거 좋은 것을 사자고 한다.
그게 성능좋고 오래가는걸 모르지 않지만, 내키지 않는다.
월세도, 이자도 못 내고 있다.
아무래도 남덕유산 등반은 힘들것 같다.
- 준비 넷째날
오늘은 등산은 말고 그냥 걷기로 한다.
누리도 동반...
집에서 출발해서 부곡동을 지나 안산IC를 거친다.
배가 너무 고프다.
아무것도 준비한게 없다. 심지어 밑창이 얇은 5,000원짜리 운동화를 신었다.
몸이 점점 내려앉는다.
겨우 와동 공동묘지까지 가서 찐빵과 사발면으로 배를 채운다.
누리도 배가 고팠나보다. 식혀서 준 사발면을 환장을 하고 먹는다.
와동체육공원을 거쳐 화랑유원지를 한바퀴 돈다.
이상한게 많이 생겼다.. 콜라 하나로 갈증을 피하고, 다음 코스를 고민한다.
원래 계획은 호수공원, 갈대습지공원을 거쳐 집에 가는것이었는데, 시간도 꽤 늦었다.
누리때문에 도시 한복판을 지날수 없어 단원구청 앞에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거기서 노적봉까지 또 걷기....
집에 오니 샤워할 기운도 없다.
누리는 다리를 절뚝거린다. 너무 무리했나보다.
내일이 말일인데, 어디로 가야 하나....
- 남원, 여수, 하남
김밥을 싸고, 물을 준비하고, 등산화, 등산복을 준비해서 남원으로 출발..
저녁 늦게 도착한 연수원에서 방패연을 만들고, 쥐불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힘들게 모신 고수와 창하시는 분의 첫 소리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사랑가를 배웠다.
민주노동당에 비정규직 문제는 중요한게 아니라는 한 정책위의 사람과 소리질러 싸우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우리 둘은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까지 먹은 술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노고단으로 가고자 했던 계획은 무산되었고,
5개의 장승을 세우고, 남원 광원루원으로 출발했다.
1년에 한 번 이상 건너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오작교도 건너보고,
춘향이와 이몽룡, 방자와 향단이의 대사도 한번씩 쳐보고, 남원 추어탕을 먹었다.
섬진강줄기를 구경하며 여수로 건너가 뼈꼬시(보통 세꼬시라고 함)에 잎새주도 먹고,
해를 향해 있는 암자라는 향일암, 등대, 오동도.... 도 구경하고,
태환이형이 추천한 - 지금은 깜빡한 - 어디어디 곱창도 먹고....
남원과 여수에서는 자연경관을 안주삼아 술에 빠져 있었나보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발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섬진강가에서 재첩국을 먹고,
하동에 가서 차밭도 구경하고, 토지 촬영장도 구경했다.
맛기행 멋기행이 되어버린, 신년산행이 아닌 신년여행..
원래 계획대로 산행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구경을 많이 했다.
특히, 여수 돌산에 있는 향일암에서는 일출이나 일몰을 보지 못했지만,
바위 사이로 낸 길과 암자는 우리나라에 몇곳 없을것 같은 좋은 경험이었다.
꼬박 이틀동안 집에서 혼자 있던 누리는 우리가 도착하자 바짝 엎드려 애교를 부렸고
그동안의 외로움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마루, 방 어디를 가도 졸졸 쫓아다니면서 반가와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서 할 일들이 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들도 있다.
이번 여행은 석달 이상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구경이었다.
이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며,
아자!!! 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