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蘭草)_이병기(1891~1968)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볕이 발틈에 비쳐 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 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이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밭아 사느니라.
[가람(嘉藍) 이병기]
1891~1968(향년 77세)
전북 익산 출생 (여산면 원수리 진사마을)
독립운동가(유공자), 국문학자, 시인, 교육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921년 조선어연구회 창립 간사
1922년 교편 잡고 시조 연구에 주력
1920년대 중반 최남선, 이은상 등과 시조 부흥운동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옥고
1946년~ 서울대 교수 및 각 대학 강사로 재직
1950년 전북전시연합대학 교수, 전북대문리대학장 역임
1956년 정년퇴임
1957년 뇌일혈, 10년 간 투병 생활
1968년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 자택에서 별세
평생을 시조 혁신을 위해 노력하였다.
[출처] 가람 시조집(1936)
첫댓글 난초 시는 물론
명상과 난은 둘아 아니라는
不二禪蘭이라는 성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賢者만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지같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賢者만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지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賢者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