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와 산책하다 돌아오는 길에 분홍분홍 한 저녁 노을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노을을 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왜 그럴까
노을은 항상 지는 거 아닌가
암튼 황홀경에 빠져 노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내의 허락을 받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진 공식적으로 시골집 한옥에서 밤을 보낸다.
퇴근하고 시간이 좀 나면 개들과 함께 윗마을로 가는 길을 산책하러 나간다.
두 마리의 견공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이 나는 나대로 주변을 관찰한다.
빨갛게 농익은 산딸기를 한 움쿰 따서 입안에 톡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달콤 상큼한 산딸기의 맛은 내가 어릴 적에 먹어보았던 그 맛 그대로다.
오며 가며 바라보이는 송림과 활엽수들의 울울창창한 모습이 너무 좋다.
갑자기 들고양이가 우리 앞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달아난다.
그 모습에 개들이 줄이 탱탱해 지도록 달려가려 한다.
길 언덕 아래로 시원한 계곡이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경사를 따라 힘차게 흘러간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퇴근 후 유유자적 생활하는 산골생활이 내겐 너무나 감사하다.
정신적으로 많은 충전을 얻기도 하거니와 한옥 마당에 들어가 꽃들과 지내는 것도 좋다.
많은 것을 소유하진 못하였지만 작지만 나만의 동굴에서 지낼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사람들은 잠시 왔다 가라 해도 오질 않는다. 내가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인 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그리운 건 아니다. 다만 이 좋은 환경을 함께 공유하며 그들에게 잠시나마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이길
바랄 뿐이다.
오늘도 난 퇴근 후 시골로 간다.
장맛비 소릴 들으며 한옥 대청에서 그동안 못 읽은 책을 들춰 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