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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만세
엊그제 고등학교 동창 세 사람과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중 두 친구는 졸업 후 처음이니 꼭 45년 만이다. 하나는 3학년 때 뒷자리에 앉았던 친구이고, 둘은 3년 내내 도서부에서 함께 활동했다. 놀랍게도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금새 편안한 친구 사이로 돌아왔다. 다시 만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다른 길을 가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내가 고집했던 신학교를 아주 명문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신학교 간 친구는 너 하나라면서, 알고 보니 감리교회는 아주 정통교회라고 추켜세웠다.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60대 중반의 나이를 먹다 보니 귀에 쌓아둔 이야기가 많다면서 “기독교는 왜 그렇게 이단도 많고, 전광훈 같은 사람도 있느냐”고 물었다. 구구한 변명대신 짧게 대답했다. “명품일수록 짝퉁도 많은 법이야.” 전적으로 공감해준 그들이 고마웠다.
세 친구의 말대로 감리교회는 “과연 명품일까?” 다시 생각할 계기가 되었다. 사실 역사적 감리교회만큼 신앙과 인간에 대해 관용이 넘치고, 사회 및 역사와 소통하는 신학과 전통을 지닌 그리스도교 교파를 찾기는 쉽지 않다. 도그마에 갇혀있는 보수적 신앙에 비해. 한결 자유롭고 공동체적이며, 믿음과 행함에 있어서 진취적이다. 신앙고백에 대한 자부심, 교회 전통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여전히 이를 긍정하고, 변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상처와 오염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찬양사역자 스카렛 브레더는 침례교인인데 이렇게 충고한 바 있다. “감리교인은 형식적인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규칙쟁이가 아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방법을 사모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메토디스트’란 이름은 고지식한 경건의 태도 때문에 조롱받던 별명 ‘규칙쟁이’였지만, 그 이름 덕분에 자랑스러운 명함과 명예를 누려왔다.
존 웨슬리 회심을 기념하는 날에 다시 웨슬리 유산을 생각해 본다. 지극히 규칙적인 웨슬리는 하루의 시작을 성경으로 시작하고, 하루의 마감은 일기로 끝냈다고 한다. 22세였던 1725년 4월 5일부터 시작하여 88세를 사는 동안 평생 일기를 썼다. 그런 일상의 리추얼(Ritual) 때문에 ‘오늘의 웨슬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쌓은 전통은 영적 유산이고, 실천적 영성이었다.
웨슬리의 성실한 신앙과 실천적 삶은 “이론의 종교를 은총의 종교로, 머리의 종교를 가슴의 종교로, 입술의 종교를 삶의 종교로, 의인의 종교를 죄인의 종교로 바꾸어 냈다”고 평가받았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산상설교>에서 존 웨슬리를 이렇게 평가한다. “복음은 천성으로 가장 교만한 사람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생래적으로 존 웨슬리보다 더 자만심이 강했던 사람은 다시없다고 하겠으나, 그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본질을 무시하는 광신을 경계하고, 이성의 역할을 중시하였다. 말씀의 해석과 훈련의 원리를 못을 박듯 정리한 <표준설교>는 엉뚱한 성경이해와 상식을 벗어난 일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메도디스트가 이성의 종교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체험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탕으로, 가슴 뜨거운 회심을 통해 새로운 삶의 변화를 이끌었다. 감리교 4가지 신앙원리는 ‘성서, 이성, 전통, 경험’이다.
연합감리교회(UMC) 장정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그리스도인 생활처럼 밀접한 관계는 없다면서 ‘세 가지 생활 수칙’(Three Simple Rules)을 정하여 ‘웨슬리식으로 살아가기’를 강조한다. 요약하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실효가 있는 삶의 방식’이다. 세 가지는 ‘해를 끼치지 마라’(Do No Harm), ‘선을 행하라’(Do Good), ‘하나님과 사랑 안에 거하라’(Stay in Love with God)이다.
2010년에 색동교회를 시작하며 ‘예수교회, 개신교회, 감리교회’를 내세웠다. 초대교회 신앙과 개신교회 개혁정신과 문화 그리고 존 웨슬리의 메토디스트 유산을 강조한 것이다. 처음 만든 전도지에 이렇게 적었다. “담임목사는 존 웨슬리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지닌 평균치 감리교 목회자입니다.” 이젠 한물간 브랜드 취급을 받는 처지이지만, 오늘만큼은 마치 3.1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듯, 그렇게 낮은 목소리일망정 변호하고 싶은 미련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