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이 인사말이 어울리는 날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드디어 교회의 생일인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이 기쁜 날, 교회의 구성원인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성령의 은총이 우리 성당에, 또 여러분 가정교회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제가 교회의 생일이라 인사드렸는데,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니 맞는 말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아쉬운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교회의 시작은 당신께서 사람과 함께 한 창조의 시작부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흔히들 교회의 생일로 부르는 오늘,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파견됩니다. 교회는 사명을 받고 성령께 받은 힘으로 파견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부활시기 내내 사도행전의 말씀을 평일미사 독서로 들으며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그 사명을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묵상하였습니다. 우리도 같은 성령을 받은 사도, 교회의 구성원, 파견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그 힘을 주실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지 모르십니다. 어떤 분은 성령을 나몰라라 하시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하느님과 같으신 분,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위로자, 협조자 등 여러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를 통해 우리가 보다 면밀히 성령에 대한 배움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먼저 1독서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 성령의 강림을 언급한 내용입니다. 그 서술어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저는 이 구절을 오늘 자세히 읽기 전에는 여태까지 바람이 집안을 가득 채운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운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빠스카 축제로부터 7주 후 그 다음날에 이 축제를 지내기 때문에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 부릅니다. 이날 이스라엘은 보리추수를 하고 감사드리는 절기로 이 축제를 지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연명하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첫 곡식을 수확함에 대한 감사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축제입니다.
그러니까 빠스카 축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탈출과 해방을 기념하는 것이고, 오순절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빠스카 축제가 예수님으로 인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난 구원의 축제로 변질되고, 오순절은 새로운 교회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축제로 그 의미가 더 풍성해집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보리를 얼만큼 많이 추수한 지는 모르겠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추수함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인 만큼 사도들은 당연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교우들이 모여서 할 일이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성령께서 한소리를 더하십니다. 그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특정한 형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워합니다. 어떤 명확한 소리가 아니라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입니다. 불꽃이 아니라 “불꽃 모양의 혀들”이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도 비둘기가 아니라 “비둘기 모양”으로 임하신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처럼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강생하신 것이고 성령께서는 특정한 형상이 없으십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소리인 것처럼,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에서 중요한 것은 불꽃 모양의 혀들이 아니라 “갈라지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르게, 그 사람들에 맞게, 마치 거푸집이 다 다르면 다른 형상이 찍혀 나오는 것처럼 우리들 각자는 하느님께 다들 유일무이한, 대체불가능한 존재들이고 이러한 우리들이 하나의 성령을 받아 모두를 한 목소리로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한 분이시지만 우리들 각자에게 맞게 임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은총으로 머무르시며 하나의 일,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힘으로 기뻐하며 기도하고 일합니다.
화답송에 “당신이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당신이 숨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온 세상이 새로워지나이다.”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숨, 주님의 성령은 우리들의 폐 깊숙이 파고드는 하느님의 꼴이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느님과 함께 만들도록 힘이 되어 주십니다. 성령으로 새로나고 거듭나는 존재,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으니 다함께 기쁨으로 이날을 즐기도록 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첫댓글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