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안에도 반응하지 않는 전공의들, 尹정부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침묵 속 전공의들..."선배 의사들도 예상못한 일(노환규)"...조갑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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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 1일 ·
< 전공의들의 대량 사직 사태 >
2024.2.6 정부가 2천명 의대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정책패키지(필정패)를 발표한 후 90%가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투쟁의 방식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정부도, 국민도, 그리고 적지 않은 의사들까지도 단순한 투쟁방식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사직이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는지, 그들의 각오가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문은 그것을 정리한 것이다.
전공의들이 대정부 투쟁에 참여했던 것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투쟁, 2014년 원격의료 반대투쟁, 2020년 의대증원 반대투쟁, 그리고 이번 2024년의 의대증원 반대투쟁으로 총 4번이다. 그런데 이전의 마지막 대정부 투쟁이었던 2020년까지 전공의들의 투쟁 방식은 늘 파업의 형태였다. 파업에 참여하고 정부와 협상이 타결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복귀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동일한 대응방식을 준비했다. 2천명 의대증원의 발표와 동시에 1만5천명 전공의들의 핸드폰 번호를 입수해 놓았다. 반발을 예상하고 업무개시명령을 즉시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의대증원이 포함된 필수의료정책패키지를 받아 본 전공의들은 정부의 예상과 달리 약 보름 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90%가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것은 정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렇다.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은 일반 직장인들의 사직과 다른 부분이 있다. 전공의라는 신분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1년이라는 인턴과정을 수료한 후 진료과목에 따라 3년에서 4년의 전공과목 수련을 받는 과정에 있는 의사를 말한다. 따라서 전공의의 사직서 제출은 짧게는 1년(인턴)에서 3~4년에 이르는 수련과정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공의의 사직서 제출은 전문의 취득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들어온 자리를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결코 쉽게 결정내리기 어려운, 매우 어려운 결단인 것이다. 더욱이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수련과정을 중도에 포기하면, 자신들이 지나온 인턴과 수년간의 전공의로 보낸 시간들이 모두 인정받지 못하고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수년간의 기회비용을 모두 상실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공의들의 대량 사직서 제출은 정부는 물론 선배 의사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90%가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을까.
첫째,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필수의료정책패키지(필정패)’라는 정책이 전공의들에게 “이 정책이 실행된다면 의사가 되는 것이 무의미하다”라고 생각될만큼 절망적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의사증가율이 OECD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데, 단 1년만에 의대정원의 65%를 증원하고 의료비 억제를 위한 지불제도 개편 등이 들어있는 필정패 정책이 실현되면 차라리 전문의 취득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의료의 질 저하외 의료윤리의 붕괴가 뻔히 예상되고, 최선의 의료를 제도적으로 막고 경제적 진료를 강제하는 정책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둘째, 전공의들의 강력한 저항을 예상하고 있던 정부는 필정패를 발표하는 당일 전국의 50개 수련병원에 행정요원들을 파견하고 빅5 대형병원에는 경찰을 파견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것을 예고하며 “이번에는 선처나 구제가 없을 것이다”라며 공권력을 이용하여 의사들의 저항에 강력히 대응할 것을 밝혔다. 이런 정부의 대응방식에 대해 젊은의사들은 좌절감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셋째, 정부는 정부정책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발표 수개월 전부터 언론을 통해 의대증원을 포함한 필정패를 ‘의료개혁’으로 포장해왔다. 대부분 언론과 야당에서 필정패를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이에 따라 필정패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 되자 전공의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의사들의 대규모 반발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자신들이 취할 강압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사의 악마화 작업에 돌입했다. 의사들에 대한 악마화 작업은 전공의들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주었고 젊은 전공의들에게 사명감마저 잃게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넷째, 현재 전공의들은 4년 전인 2020년 의대생 때 대정부투쟁에 참여했던 세대들이다. 이들은 의사들의 저항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전공의들이 피고용 상태를 유지한 채 파업에 나섰고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했다. 명령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전공의는 없었지만 의사들의 파업이 용인되지 않는 환경에서 전공의들의 파업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직장에 소속된 채 파업에 돌입하면 업무개시명령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전공의들은 “아예 이참에 전공의 과정을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직장을 퇴직하면 업무개시명령의 대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박회장은 집단행동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대량 사직이 현실화 되었다. 90% 넘는 전공의들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허를 찔린 정부는 크게 당황했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한편, 인턴을 끝으로 사직한 의사들, 더러는 레지던트 지원에 떨어진 인턴들에게까지 강제로 레지던트 업무를 시작하라는 진료개시명령을 내리는 등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각종 행정명령을 만들어 남발했다. 그리고 이것은 더 큰 의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2024년 2월, 1만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1만명이 넘는 대한민국의 미래 의료의 주역들이 자신들의 미래가 담긴 직장을 포기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1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의 사직서는 정부에 의해 수리가 금지되었고, 정부에 의해 취업이 금지되었고, 이에 따라 경제활동이 금지되었으며, 해외에도 나갈 수 없고, 군대에도 갈 수 없는, 자유가 구속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마지막 선택지로 내몰린 직접적인 계기는 대통령실이 제공한 것이 맞지만, 지속될 수 없는 의료제도의 문제를 지금껏 방치한 나를 포함한 선배의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선배 의사들이 이제라도 젊은 의사들에 대한 책무를 깨닫고 행동할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