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마을도서관이 허물어집니다.
도서관 건물이 헐릴 계획입니다.
지난 주 5월 16일 목요일
구청장님과 관련 실무자들이 동행한 행사에서
마을 도로 확장 공사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앞 마을 주도로를 넓히는 공사입니다.
선이 깔끔하고 반듯한 도로 공사 설계도를 보았습니다.
도로 공사에 관해 전혀 모르는 저도
확장되는 지점을 표시하는 선이 도서관 건물 한편을 지나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에 함께했던 이웃들이 놀랐습니다.
건물을 건들지 않고 길을 넓히는 방법은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구청장님과 담당자에게 부탁했습니다.
구청장님은 도서관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담당자는 도서관 위치를 알고는 있었으나 이런 곳인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구청 측에서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1. 물러날 때가 아니겠는가?
사람이 만든 것은 언젠가 없어집니다.
아이들이 쌓은 벽돌과 이웃들이 칠한 저 낡은 벽도 결국에는 허물어질 겁니다.
혹 지금이겠는가?
그때가 온 것일까?
이것이 순리인가?
순리라면 거스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이 일어나기 1년 전
작년 도서관 10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도서관 폐관 조례를 살폈습니다.
아이들이 줄어가는 시대
급변하는 시골 마을의 상황
호숫가마을도서관의 존재 가치는 여전한가?
일꾼인 나의 가치는?
도서관을 정리하고 떠날 때가 지금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도서관 정리 계획을 궁리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때'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확인해야했습니다.
계속해야 하는가? 그만해야 하는가?
이를 판단하는 기준 말입니다.
그때 제 판단 기준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은 모르겠고
지금 당장 오늘 내가 만나야 할 아이들과 이웃들이 있다면
도서관을 정리할 때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도서관 정리 계획은 '계획'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10주년 행사 1년 후인 지금
동구청 도로 확장 공사 계획과 도서관 철거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저는 도서관 건물을 그저 껍데기라고 했습니다.
그 공간을 쓰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뜻이었겠지요.
저는 도서관 건물을 그저 관문이라 했습니다.
사회사업가인 제게 도서관이라는 '건물'은 마을로 가기 위한 '관문'일 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이들과 이웃들'에게는 어떨까요?
놀자매 언니들이 양보한 곳
바람꽃과 도라지와 강반장님과 금봉 선생님과 시원이 아빠의 헤아릴 수 없는 손길이 묻어 있는 곳
완두콩과 물들다의 부지런한 발자국이 닿은 곳
풀잎 꽃나무 고민중 선생님의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던 곳
육체 노동에 서툰 임박사님이 땀흘려 힘을 쓰던 곳
송반장님과 광옥이 아저씨가 말없이 두고가시던 장작
개관식날 나팔 불던 채원이와 우쿨레레 치던 시열이
밤의 관장 해오리 아저씨
학교를 탈출했던 현승이가 숨어 있던 곳
호운이와 동건이가 용돈 5만원을 모아 장사해서 번 돈 3만원으로(망한 장사) 공사 기금을 보탠 곳
연우가 벽돌을 놓은 곳
정민이가 동생들과 놀던 책장 사이
시원이 지원이에게 뛰지말라고 다그쳤던 복도
다락 밑에 숨어 낄낄 거리던 담이 하윤 서로 규리 은우
책상에 앉아 늘 그림을 그리고 가끔 소리지르던 예랑이와 세영이
선빈이가 주술회전 읽다가 잠든 다락
책놀먹 엄마들이 땀흘리며 요리하던 부엌
민채 생일 파티 한 곳
책 읽고 먹는 간식을 좋아고 간식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시율 승아 태완 서율 제민 제윤 수민 수현 다온
유빈이가 스피드스텍스 연습하던 책상
현준이 창빈이 시열이가 동무들과 울고 웃었던 창가
정남이랑 한울이가 빗물을 맞던 처마
오빠들이랑 다락에서 뛰어내리던 서연이
가만히 구석에서 놀던 해솔이와 서현이
춤추고 노래하던 유민이와 한영이
도서관 풍금 소리에 동요를 고래고래 부르던 동현이
동혁이랑 승주가 라면 끓여먹던 부엌
석훈이랑 승현이가 멍하니 바라보던 난로
반야솔이 쓸고 닦았던 바닥
요은이가 코피를 쏟았던 탁자
건이와 상인이의 자전거 여행이 시작된 도서관 앞 도로
준희 혜성이 미승이 찬민이랑 브롤스타즈 하던 책상
채경이 채린이가 아기 은성이를 돌보던 저기 어딘가
청년 사회사업가들이 새벽까지 일했던 난롯가
그리고 또 또…
아이들과 이웃들은 도서관 건물에 마음과 물질과 시간을 썼습니다.
그 속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이곳이 그들에게는 의미 있는 곳일 수 있습니다.
다만, 추억이 쌓인 곳이라도 언젠가는 떠나야합니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아니면 지킬 것인가?
아이들과 이웃들도 궁리해야 하겠지요.
함께 의논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
늘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라고
마을로 가는 관문 따위일 뿐이라고 말했건만
나는 그동안 이 무너져가는 껍데기 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꾸었던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 전부이기도 했던 곳
호숫가마을도서관이 무너지려합니다.
허물어야 한다면 허물어지는 그 과정을 이웃들과 함께 바라보고 싶습니다.
지켜야 한다면 그 과업을 이웃들과 함께 이루겠습니다.
어디로 향하건 이를 구실로 더불어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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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철거 이야기 9 - 앞으로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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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머무름과 떠남,
그 사이에서 고뇌가 글에서 느껴집니다..
결과가 어찌될진 알 수 없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담담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관장님과 다람쥐의 의중을 기다렸어요. 뜻을 충분히 알았고 그래서 저는 좋았고 안심했습니다.
임은정 선생님 함께하시니 좋습니다.
ㅜㅜ......
오수진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단우 이안이 축구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마음 고맙습니다.
선물하고 싶은 책을 하나둘 모아두고 이런저런 핑계로 찾아가지 못했어요.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도서관에 가겠습니다.
^^
호숫가마을도서관이 허물어진다는 말에 마음이 덜컥했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건 정겨운 사람살이이지만 그래도 공간이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다고 느끼는 편이라서요.
그래도 어디로 향하건 이를 구실로 더불어 살고자 하시는 선생님의 발걸음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함께 응원할게요.
호숫가마을도서관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 전부이기도 했던 곳이에요.
민서 응원 고마워요.
작년 호숫가마을 도서관에 방문 했을 때가 생각 났습니다.
사람사는 냄새 나는 곳
이 곳에 또 올 수 있겠구나!
이제 겨우 1년 지났는데....
허물어진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남궁인호 선생님,
여름 실습생들과 도서관에 꼭 놀러오세요.
가깝지만, 오히려 가깝다는 핑계로 지나치기 쉬웠던 곳. 가까운 곳에 뜻을 지켜주시는 선배님 부부가 있어 든든한 마음이 있었던 곳.
호숫가마을도서관이 허물어질 수 있다니..어떤 말을 남겨야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네요... 어제밤에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어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또 전부이기도 한 곳. 호숫가의 뜻이 어디에서든 지켜질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꼭 나누어 주세요..!
저도 아라를 종종 생각해요.
마음 참 고마워요.
일요일에 처음 글을 보고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호숫가마을도서관을 떠올리면 받았던 것들만 떠오릅니다.
보탬이 될 일이 있다면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준화 선생님 그립습니다.
선생님께서 도서관을 생각하시는 마음과 공간이 주는 따뜻함의 추억이 있는 공간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 허물어진다는 소식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렇지만 후에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께 많이 배우면서 실습을 해보고 싶습니다…!
희영 고마워요.
함께 사회사업할 기회가 오기를 바라요.
머지않은 시간에 놀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또 평안을 얻으러 가겠습니다. 어느날은 속상한 마음 달래러 가겠습니다.
그곳은 늘 호숫가마을도서관 입니다...
임영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일도 순리라고 받아들여야 하다니 서글프다 생각합니다, 제가 뭐라고 ..
세진과 같이 자전거 타고 싶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호숫가마을에서의 학습여행이란 경험은 저에겐 시간이 흘러도 다시 꼭 가고싶은 곳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도로확장으로 없어질 위기에 있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도로확장공사는 좋은일이긴하지만 다른곳으로 도로가 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호숫가마을의 상징이자 복지계의 본보기인 그 곳이 꼭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지연 고마워요.
놀러와요 :)
주인의 일을 객이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추동 아이들 마을분들이 지혜 모아주실테니 응원하는 마음만 보내드립니다
근데 왜 자꾸 내도서관, 우리이야기 같은지요
김선경 선생님 고맙습니다.
올리셨던 글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최선웅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