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
삶의 균형을 위한 어설픈 몸짓
<30여년 전에 쓴 글>
김광한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는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 사는 동안에 사람은 무엇을 해야만 한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생리적인 삶을 지탱해 주는 물질을 얻는 수단으로서의 직업을 갖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일을 통해 반대급부적인 소득을 갖게 해준다. 많은 소득을 얻게 해 주는 직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직업도 있다. 많은 소득을 얻는 직업, 그 직업을 갖춘 있는 사람들이 출근하는 곳을 좋은 직장이라고 한다. 그런 직장을 갖기 위해선 좋은 가정에 태어나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또 입사 시험을 거쳐야 한다.
때로는 악조건에서 고학을 통해 좋은 직장을 얻을 수가 있다. 때로는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개인사업을 하기도 하고, 직장인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소득이란 소유와 동일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한 사람을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이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글 을 업으로 하는 작가나 시인 같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작가나 시인 같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의 범주에서 제외가 된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으니까, 간혹 베스트셀러를 써서 큰돈을 만진 작가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에 불과하다. 뻔히 큰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죽치고 들어앉아 창작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대중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내 곁을 지나다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종이와 연관된 직업을 갖고 30여 년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숱하게 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것은 소유할 수 없다는 데 따른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문과 대학을 나와 잡지사에 발을 들여 놓은 지 30여 년 동안 수많은 글을 썼다. 그러나 남아 있는 글은 아무 것도 없었다. 월간 잡지에 쓴 글은 다음 호가 되기 전에 대부분 행방불명이 됐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이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 평균 수명이 마흔이었던 이조 시대에 태어났다면 벌써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할 나이이다. 눈이 침침해 돋보기를 쓰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돋보기를 쓰고부터 점차 세상이 보이기 시작 한다는 점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던 젊은 시절에는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러나 돋보기를 쓴 지금, 이성과 감성이 거의 똑같은 함량으로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의 판별도 어느 정도 되고, 그래서 글을 써 보면 될 것 같아 나머지 인생을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안에는 내 인생도 있고 남의 인생도 있고, 세상의 모든 일들을 수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통치 않은 글을 써서 남의 귀중한 시간을 뺏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도 있다. 성경의 전도서에 탐탁치 않은 글로써 남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 것도 죄악이란 말이 있듯이, 어떻게 세상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은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글이란 무엇이냐? 좋은 생각을 갖고 그 생각을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나는 좋은 사람인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길가에 떨어진 만 원짜리를 주워 신고하지 않고 주머니에 집어넣는 사람, 그런 사람의 범주에 드는 내가 과연 무슨 글을 쓴다고 작가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만났고 겪었고 느꼈던 일들을 적는 것이다. 졸부도 있고, 교만한 자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을 씀으로서 남들에게 읽는 재미를 줄 수가 있다. 그러나 읽는 재미만으로는 메시지가 없다. 그들을 통해서 과연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동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전해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팔십 년대 초, 언론 통폐합이란 것이 있었다.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서인지 독재자의 마음에 드는 신문과 잡지 방송만 빼놓고 대부분의 '매스컴'이라 일컫는 것들을 없애 버렸다.
내가 몸을 담고 있던 잡지가 없어져 버려 실업자가 되었다. 나는 그때 그 신문과 잡지를 없애 버린 독재자보다 더 야비한 인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잡지사의 사장이었다. 그는 여름 휴가비로 오만 원씩 기자들에게 지급했는데, 잡지가 폐간이 되자 그걸 월급에서 '까' 버렸던 것이다. 남은 실업자가 돼는 '고해의 길'을 걸어야 할 판에, 주었던 노자 돈 까지 뺏는 자가 독재자를 규탄할 자격이 있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그가 불쌍해졌다. 그의 소유가, 그의 빈약한 생각이, 그리고 그의 삶이 불쌍해졌던 것이다. 거기에 나의 구도(求道)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용서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 나의 화두(話頭)가 있는 것이다.
육십 년대 말,
내가 첫 직장에 나가서 탄 월급이 육천 원이었다. 나는 그 한심한 월급을 놓고 '묵상'에 잠겼다. 그때 대학 선배이자 시인이기도 한 전달문 형이 내게 말했다.
"넌 다른 사람보다 천 원 더 준 거야. 실망하지 마. 이 동네는 다 그렇다."
대학 등록금의 십분지 일도 안 되는 월급에 불만을 품고 경찰 간부 시험을 보았다. 다행히 합격을 했고, 경찰 대학에 들어가기 전 나는 포기를 했다. 아무래도 '완장'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고난에 처할 때마다 후회를 하곤 했다. 왜 그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람마다 갈 길이 따로 있다. 작가가 된 것이 내 정확한 길이라는 뜻이 아니다. 요즘처럼 '완장'찬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때, 완장을 차고 삼십 년 동안 지내는 동안 과연 평탄한 길만 갔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걸어 다닐 만한 건강을 갖게 해주고, 별다른 후환 없이, 남은 생을 살게 해 준 신(神)에게 감사할 뿐이다.
나는 '고바야시 아리카타'라는 일본 신부(神父)가 쓴 시를 좋아한다.
네 이름 그것은
네가 이 세상 살아가는 한
너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네가 죽으면
묘비에 그 이름이 새겨지고
그리고 얼마 동안은 사람과
너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 이름과 관계있는 자로서
네 추억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네가 아는 사람들이 죽어
사라질 때
그리고 네 호적에서도
너에 대한 기록이 삭제될 때
네 이름은 이 세상에서
이 세상 사람으로부터
영원히 사라진다.
영원히 ‥‥‥‥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애를 쓴다. 졸부들은 남의 손을 빌려서 자신의 탐탁치 않았던 과거의 행적을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남기려 한다. 그것이 그는 죄악이 되는 줄 모른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팔십 년대 초,
나는 한때 좌절을 한 적이 있었다. 매일처럼 술을 마시다 보니 알코올 중독자가 돼 버렸다.
그 1년 동안의 행적‥‥‥‥
내가 단골로 다니던 함바집에는 이 사회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방범원, 청소원, 미장공, 경비원, 노가다 사람들, 그들은 내게 김씨란 호칭을 썼다. 그들은 나를 친구로 대해 주었다.
지금도 우연히 나를 만나면 '김씨, 요즘 뭘 해?' 하며 손을 내민다. 그러나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사회에 나를 끼어주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진솔한 인생이 있었다. 눈물과 한숨과 불행이 있었다. 그리고 진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남을 속일 줄 모른다.
화려한 연애 경력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살고 있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그리고 큰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는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이름 없는 이야기를‥‥‥‥ 어쩌면 그것이 돈 많이 가진 집의 딸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판검사가 된 아들의 연애 이야기보다 더 진실에 접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염된 욕망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들은 순수하기 때문이다. 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소설 '욕망의 탈'에 등장하는 인간들이란 한가지로 욕심이 많은 자들이다. 바늘이란 하찮은 무기로 큰 것을 회득하려는 그 욕망 때문에 창피하게도 몰락해 버리는 사람들이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리고 싶다. 이 글로 인해 여러분들의 귀중한 시간을 훼손시키지나 않았는지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