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빛 퉁소 소리 붉은 구름 흩어지니
주렴 밖 찬 서릿발 우짖는 앵무새
깊은 밤 비단 휘장 비추는 그윽한 촛불
때때로 성긴 별이 은하수 건너는 것 바라보아요.
또르륵 물시계 소리 서풍에 묻어오고
이슬 맺힌 오동나무 저녁 벌레 우는데
명주 수건으로 훔치는 깊은 밤의 눈물
내일이면 점점이 붉은 자국으로 남겠지요.
■ 허난설헌 시선집 『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 (주) 알에이치코리아 수록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이름이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다. ‘난설헌’은 스스로 지은 호다. ‘초희’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의 지혜로운 아내 번희(樊姬)를 뜻하며 ‘경번’도 번희를 사모한다는 의미다.
허난설헌의 불행은 15세에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결혼하면서 시작됐다. 번번이 과거에 낙방한 김성립은 난설헌에 대한 열등감에 빠졌고, 기방을 돌아다니며 극심한 바람을 피웠다. 시어머니 송씨의 상상하기 힘든 구박을 받은 난설헌은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18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었고, 19세 때 딸이 죽고, 20세 때 아들도 죽고, 배 속의 아이도 유산한다. 21세에 그토록 사랑한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고 5년 뒤 금강산에서 오빠마저 객사한다. 난설헌은 오빠를 찾아 금강산을 수없이 헤매다녔으며 결국 27세에 ‘몽유광상산시서’를 남기고 사망한다.
허난설헌은 생전에 입버릇처럼 세 가지 한(恨)을 말하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멍청한 남편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었다. 이는 ‘다시는 조선 땅에 태어나지 않으리, 다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으리, 나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