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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숲길에서 / 고재종 .........................................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동백 / 강은교 ..................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오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동백 피는 날 / 도종환 ............................. 허공에 진눈깨비 치는 날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 아름답구나 눈비 오는 저 하늘에 길이 없어도 길을 내어 돌아오는 새들 있으리니 살아 생전 뜻한 일 못다 이루고 그대 앞길 눈보라 가득하여도 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 품어 가시라 다시 올 꽃 한 송이 품어 가시라 동백, 섬에서 / 민병도 .............................. 돌아보면 삶이 어디 대를 쪼개는 일이랴 파도의 이빨자국이 군데군데 선명한데 검붉은 피를 흘리며 누가 이 섬을 떠났나. 민초의 길이 어디 먹을 가는 일이겠는가 발끝에 툭툭 차이는 피보다 붉은 침묵을 끝끝내 가슴에 묻고 누가 이 섬을 떠났나. 스치는 바람이 곧 하늘의 말씀이니라 아무도 귀 기울여 듣는 이 없는 새벽 눈발 속 발자국 챙겨 누가 이 섬을 떠났는가. 동백 / 문인수 .................. 섬진강 가 동백 진 거 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동백 져 버린 거 아, 마구 내다 버린 거 본다 대가리째 뚝 뚝 떨어져 낭자하구나 나는 그러나 단 한번 아파한 적 없구나 이제 와 참 붉디붉다 내 청춘, 비명도 없이 흘러갔다 동백꽃 / 문정희 ......................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 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斬首)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點字)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동백 / 문정희 ...................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붉은 동백 / 문태준 ......................... 신라의 여승 설요는 꽃 피어 봄마음 이리 설레 환속했다는데 나도 봄날에는 작은 절 풍경에 갇혀 우는 눈먼 물고기 이고 싶더라 쩌렁쩌렁 해빙하는 저수지처럼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어도 봄밤에는 숨죽이듯 갇혀 울고 싶더라 먼발치서 한 사람을 공양하는 무정한 불목하니로 살아도 봄날에는 사랑이 살짝 들키기도 해서 절마당에 핀 동백처럼 붉은 뺨이고 싶더라. 동백꽃 / 문충성 ..................... 누이야.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들어본 적 있느냐. 사각사각 맨발로 하얀 눈 한 겨울 캄캄함을 밟아올 때 제주바다는 이러저리 불안을 뒤척이고 찬바람을 몰아다니던 낙엽 소리 돌돌 잠재우며 밤새 동백꽃 피어나는 꽃소리 아련히 나의 잠 속에 묻혀가고 있다. 매천사당에서 / 복효근 ............................... 절명하듯 동백꽃 지는 화엄사 곁에 두고 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 매천사당 뜰 앞 매화향기 높은데 병든 사직의 야록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초상화 둥근 안경 너머 눈빛이 시리다 선운사 동백꽃 / 박남준 ...............................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습니다 대웅전 뒷산 동백꽃 당당 멀었다 여겼는데요 도솔암 너머 마애불 앞 남으로 내린 한 동백 가지 선홍빛 수줍은 연지곤지 새색시로 피었습니다 흰 눈밭에 울컥 각혈을 하듯 가슴도 철렁 떨어졌습니다그려 동백꽃 / 손병흥 .....................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기다림이란 아름다운 꽃말을 가진 겸손 고결한 사랑 아름다움 간직한 꽃도 오래피고 희망 상징인 성장 꽃 ?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 맞은 채 꽃봉오리를 맺고 탐스런 꽃망울 터트리며 청렴과 절조에다 진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새해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얼굴 차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소교목의 관목(灌木) 꿀이 귀하다는 겨울철에 동박새 들이 찾아와 나비나 벌을 대신하여 꽃가루받이까지 해주는 동백 산다화인 애기동백 뜰동백 흰동백의 품종 투박하면서도 허세 부리지 않아 돋보이는 자태 동백꽃이 지고 있네 / 송찬호 ...................................... 기어이 기어이 동백이 지고 있네 싸리비를 들고 연신 마당에 나서지만 떨어져 누운 붉은 빛이 이미 수백 근 넘어 보이네 벗이여, 이 볕 좋은 날 약술도 마다하고 저리 붉은 입술도 치워버리고 어디서 글을 읽고 있는가 이른 아침부터 한 동이씩 꽃을 퍼다 버리는 이 빗자루 경전 좀 읽어보게 겨울 선운사에서 / 이상국 ..................................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뾰로통하게 토라진 동백은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절 아래 레지도 없는 찻집 담벼락에서 오줌을 누는데 분홍색 브래지어 하나 울타리에 걸려 있다 저 젖가슴은 어디서 겨울을 나고 있는지 중 하나가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고해(苦海)만한 절마당을 건너가는 저녁 나도 굵은 체크무늬 목도리를 하고 남이 다 살고 간 세상을 건너가네 모란 동백 / 이제하 .........................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동백꽃이 질 때 / 이해인 ................................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보셨어요? 피 흘려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선운사 동백꽃 / 용혜원 ...............................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니무가 숲을 이루어셀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가지가지 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듯 큼지막 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할것만 같았다. 가슴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 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듯 피를 토한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꽃처럼 살려고 / 이생진 ...............................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散調)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선운사 동백꽃 / 유안진 ............................... 무너지고 싶습니다. 녹아지고 싶습니다라고 여우바람으로 자맥질치는 불길 미친 이 불길 잡아 달라고 눈비를 맞아봅니다만 밤마다 고개 드는 죄를 죽입니다만 눈서리가 매울수록 오히려 뜨거워만집니다. 마침내는 왈칵 각혈 쏟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동백꽃 / 유치환 ...................... 그 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없이 피었나니 그날 한 장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 마땅히 받을 罰이었기에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 그 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선운사에서 / 최영미 ...........................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강종열 作 은이네 우체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