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놀이
성경은 舊約과 新約로 되어 있다. 여기서 約은 “묶는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과 나를 묶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나를 묶는 强度를 의미하게 된다.
약속의 관념이 철저하다는 것은 묶는 정도가 강하다는 뜻이며, 약속의 관념이 약하다는 것은 묶는 정도가 느슨하여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신용사회를 만든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이 신용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약속”을 목숨처럼 지켰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인간끼리의 약속도 목숨처럼 지켰다. 그래서 그런 “약속”을 바탕으로 은행, 주식, 채권, 펀드, 신용장, 약속어음 등을 만들 수 있었다. 농경문화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약속”이 빠진 통장, 주식, 증권, 채권, 신용장, 약속어음 등은 모두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농경문화에서는 “情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情의 문화에서는 약속을 깨도 “情 때문에” 용서가 되었다. 즉 “우리가 남이가?”라는 것 때문에 벌을 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서양 기업인들과 무역을 하면서 약속을 철저하게 배웠다. 그 이유는 약속을 깼다가는 무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내국인을 상대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은 농경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치가의 의식만 그럴까? 목사와 神父와 승려의 의식도 그와 똑같다. 그 이유는 농경문화에서 태어나 농경문화에 젖어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태어난 문화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있다! 바울은 그것을 발견했던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바울은 날마다 죽으면서 자신이 속해 있던 유대(율법)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러분도 날마다 죽으며 사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단단히 묶여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문화에도 묶여 있는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종교 놀이”를 하는 사람일 수 있다.
p.s.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창12:4)는 말은 아브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묶고 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