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초대, 인터뷰도 거부...평생 번 돈 기부한 어른의 한 마디
윤성효입력 2022. 12. 23. 09:30수정 2022. 12. 23. 16:33
한약방 운영하며 선행 베푼 김장하 선생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 ... 'MBC경남' 다큐 방영
[윤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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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남성당한약방 김장하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 |
ⓒ 윤성효 |
"이만큼 베푼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20대 중반부터 50년 넘게 이어온, 기대 없이 베풀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삶."
김장하(78, 호 남성 南星)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과 다양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취재해 쓴 책 <줬으면 그만이지>(도서출판 피플파워 간)가 나왔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감독 김현지)를 만든 MBC경남과 함께 김장하 선생에 대해 취재한 내용으로 책을 펴낸 것.
김 선생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누구를 돕게 되도 보도자료 등을 일체 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언론사 인터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김주완 기자가 그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책을 썼다. 그 숫자만 대략 100명이 넘는다.
한약방 가운데 전국 세금 납부 1위... 자가용 없이 자전거 이용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열아홉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1963년 고향에서 한약방을 개업했고, 10년 뒤 진주로 이전했다. 남성당한약방은 50년간 운영되다가 지난 5월 말에 문을 닫았다.
한약방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이크로 순서를 호명할 정도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빵을 나눠주기도 했다. 전국 한약방 가운데 세금을 가장 많이 내기도 했는데 이는 그만큼 성실납세를 했던 탓이기도 하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해 번 돈을 개인을 위해 쓰지 않았다. 평생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대신 지역사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이듬해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했고, 10여년 간 이사장을 하다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또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1990년대 시민주로 창간했던 옛 <진주신문> 주주·이사로 참여했고, 1995년부터 27년간 '진주가을문예'를 지원했다.
2000년에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후원을 했던 김 선생은 해산(2021년) 당시 남은 기금 34억 원(서경방송 주식 포함)을 경상국립대에 기탁했다.
김장하 선생은 1991년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를 통해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번 돈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기 때문에 내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평소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려 버리면 거름이 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눠야 사회에 꽃이 핀다"는 생각으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김 선생은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 진주문화사랑모임 부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 경상국립대 발전후원회장,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영남대표, 진주오광대보존회 이사장,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등을 지냈다. 시민사회, 문화예술, 교육 분야의 든든한 뒷배이자 후원자였다.
시민사회도 김 선생의 '아름다운 기부'를 기억하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문화예술 단체들은 김 선생의 75회 생일날인 2019년 1월 16일 '고맙습니다'는 제목으로 깜짝 생일잔치를 열었고, 한약방 문을 닫을 무렵 여러 인사와 시민들이 찾아가 인사를 전했다.
김 선생은 늘 겸손했다. 많은 후원을 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1990년대 첫 민선 진주시장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추대할 시민후보를 뽑았는데 김 선생이 압도적으로 1위가 됐다. 그러나 그는 후보를 제안하러 오는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해 버리기도 했다.
주변에서 경남도문화상이나 진주시문화상, 경남교육대상을 추천하려고 해도 못하게 하거나 '본인이 싫다는데 왜 하려고 하느냐'며 극구 사양했던 적도 있다.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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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 줬으면 그만이지>. |
ⓒ 도서출판 피플파워 |
책을 쓴 김주완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어떻게 김장하 선생에게 (책 내는 걸)허락 받았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허락한 적이 없다. 선생은 그동안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여러 공적인 단체에 몸을 담고 활동을 해왔다. 공인에 준하는 인물을 취재하겠다는 데 그것까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답했다.
"정식으로 선생을 인터뷰한 적은 없다"고 한 김 기자는 "찾아오는 사람을 냉정하게 내치지 못하는 선생의 약점(?)을 공략했을 뿐이다. 많은 분이 자연스럽게 선생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다"고 전했다.
360여 쪽에 이르는 책에는 김 기자가 들은 김장하 선생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는 호 남성(南星)에 대해 김장하 선생은 '남성은 목숨 수(壽)를 맡은 별이라고, 남성이 비치는 곳에는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다. 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단다.
김 선생은 아들·딸 결혼식을 올리면서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수많은 사람이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축의금을 받는 창구가 없었다. 음식을 대접했지만 일부 불쾌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다. 본인은 모든 지인의 경조사에 다 참석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고도 받지 않으니 '돈 있다고 유세하는 기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대학 다닐 때 김 선생의 장학금을 받았던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선생은 명신고 설립 뒤 이사장실을 없애고 이를 양호실로 쓰도록 했고, 결재는 서무실에서 했다. 학교에 갈 때는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이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학교 관계자들이 기억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김성진 전 보좌역은 "대선 후보 때 한약방을 방문했고, 50분간 만나고 나온 뒤 노 대통령께서 '참 좋은 분을 만났네. 정치인을 만나 훈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하셨다. 뒤에 김 선생께 여쭈었더니 '정치 10단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하고 나서 부산에서 축하모임이 있어 초대했지만 김 선생은 한약방을 지켜야 한다며 가지 않았다. 당시 <내일신문>은 '이런 사람이 총리가 돼야 한다'며 김 선생의 삶을 사진과 함께 1면 머릿기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김 선생은 노 대통령 서거 뒤 묘역 조성 때 박석에 이름을 새겨 놓기도 했다.
김주완 기자는 "요새 만원어치 봉사를 하면서 고아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백만원어치 피알을 한다든지, 그 봉사의 가치를 되받으려 한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고 봉사를 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실제 김장하 선생의 삶과 나눔은 이런 걸 철저히 배격하며 이뤄져 왔다.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보시, 이런 걸 실천해온 사람이 김장하였다"고 평가했다.
김 기자는 "선생은 나눔과 배품을 일상 속에서 실천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고, 지금까지 선생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1000명을 웃돈다고 한다"며 "선생의 지원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여성, 인권 등 지역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선생에게 그이를 본받고 배우려는 이들이 100명, 1000명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며 "선생은 장학생들에게 나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했다.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선순환, 이른바 '김장하 바이러스'다"고 했다.
한편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오는 31일 오전 9시 1부, 새해 1월 1일 오전 9시 2부가 MBC경남을 통해 방영된다.
▲ 2019년 1월 16일 저녁 진주 옛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아트홀에서 열린 "김장하 선생님 고맙습니다" 행사에서 김장하 선생이 환하게 웃고 있다. |
ⓒ 유근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