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위 시복시성 약전을 바라보면서......
먼저 시복시성 전문을 소개 하고자 한다.
하느님의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에 대한 시성시복 예비심사 공고
춘천 주교 장익 요한은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북한에서 선교하던 중에 생명을 바처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 38위에 대하여 시복시성을 위한 예비 심사를 요청 받았습니다. 본인은 이 하느님의 종들의 순교 사실이 확실하다고 판단하여 예비심사를 시행할 것을 공고합니다. 이에 시성성의 규정에 따라 하느님의 종들의 하느님의 종들의 명단과 약력을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교우들에게 공지하며 그분들과 관련된 모든 문서와 아는 사실을 본 주교에게 알려주도록 요청합니다.
♱ 장익 요한
2009년 12월 25일 춘천 주교 장익 요한
이번 시복시성의 공고는 현대 한국교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큰 사건중에 하나이다. 한국의 세 번째 신부님이셨던 강도영 말구 신부님은 당시 교구장이셨던 민 대주교님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시복시성을 위해 순교 자료 모음과 동시에 신자들의 지속적 기도, 즉 순교자 현양 운동을 펼치셨다.
시복 시성이란 순교자나 탁월한 신앙의 모범을 보인 분들에게 공적인 공경을 바칠 수 있도록 복자나 성인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가 펼쳤던 시성시복에 관한 자료들을 되돌아 보자.
1839년 기해박해부터 1846년 병오박해 순교자 79위의 시복식(諡福式)이 1925년 7월 5일 거행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마침내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미사 중에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하였다.
“갈림이 없으신 천주 성삼께 영광을 드리고 가톨릭 신앙을 현양하며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증진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권위로써, 또 내게 맡겨진 권한으로써,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외 101명의 한국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판정하고 결정하여 성인들 명부에 올리는 바이며, 세계 교회 안에서 이분들을 다른 성인들과 함께 정성되이 공경하기를 명하는 바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선언)
이번에 시성시복의 영광을 차지할 38분의 가경자들도 이미 성인으로 선포된 103위의 영광스러운 절차를 따라 성인으로 선포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이쯤에서 지난 날 들을 되돌아 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은 너무 부끄럽다. 한국순교자 시성시복 전후를 냉철히 되돌아 보면 시성을 정점으로하여 신앙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고 자평하는데 그것이 사실일까?
이 번의 경우 38위는 103위와 많이 다르다. 아주 평범하고 상식적인 일이건만 지난 날들처럼 불같은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북한이 눈앞에 딱 버티고 있기 때문일까?. 그 곳을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이기 때문일까?. 누군가 교통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옥사덕, 그 곳은 38명중 많은 이들(17명)이 피를 흘린 곳이다. 그때 그곳을 잘 살펴보면 옥사덕의 공산당은 수도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매 시간마다 달랐다. 처움에는 철두철미한 격리 또는 고립 정도로 만족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격리는 제거로 바뀌면서 많은 희생이 따랐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103위나 38위 모두 동일하다. 순교란 그 자체가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순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순교자의 피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낳기 위한 씨앗이다” 테르툴리아누스 교부의 말씀이다. 왜 그럴까?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셨는가. 그분은 많은 시간들을 하느님 나라 선포에 사용하셨다. 수난이 다가오자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부활후에는 믿는이들과 함께 계신다.
순교자의 진정한 가치는 부활에 대한 확신에 있다. 일반인은 죽음뒤에 알수 없는 절망이 오지만, 순교자는 부활신앙으로 그리스도 함께 기쁨과 영광을 누린다. 그리스도는 믿는이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103위 시성이후 신앙인의 열정이 식은 이유는 부활 신앙이 빛을 잃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그 원인은 현실이 너무나 강렬하게 조명되기 때문일 것이다. 황금 만능, 쾌락, 권력......, 이러한 것들은 죽음을 끝없는 공포로 포장하여 현실에 몰두하게 만든다. 때로는 죽음의 그림자 조차 근접할 수 없는 무아지경으로 만들어 현실에 몰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8위 시복시성은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다. 종소리는 한반도를 시작으로 하여 전 세계로 울려 퍼져 나갈 것이다. 종소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제일 먼저 종소리는 역사적 사실보고(옥사덕 수용소등)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연스럽게 하느님 나라가 선포될 것이다.
세 번째로 어리석은 십자가의 가치(죽음의 그리스찬적 문화)를 높이 들어 올릴 것이다.
네 번째로 부활 신앙의 재조명으로 많은 이들이 교회품으로 돌아 올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북한이 하느님품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한국교회가 103 시성운동 때처럼 기도 운동을 펼쳤으면 좋겠다.
지면을 통하여 이미 발표된 가경자 몇분을 소개하고자 한다(한국 사람들 몇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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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1914년3월.11일생
경기,파주 감곡리
순교일;1950.10.5 평양인민교화소 |
장아네타 헌신자
1910년생
황해도
순교일:1950. 10월 함흥인민교화소 |
최병권 마티아 신부
1908년3월3일생
함남 안변
1949.평양인민교화소 |
김봉식 마오로 신부
1913년8월24일생
북간도 훈춘 출신
순교일:1950.10.9. 원산 |
김종수 베르나륻 신부
1918년 2월12일생
북간도 삼원봉 출신
순교일:1950년10월3일 평양 |
김동철 마르꼬 신부
1913년1월3일생
부산 영주동 출신
순교일:1950년 신의주 |
김이식 마르티노 신부
1920년7월20일생
강원 양양 출신
순교일:1950.10.3 평양 |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1912년 생
서울 이화동 출신
순교일:1950년 10월 평양 |
이재철 베드로 신부
1912년5월12일
서울 출신
순교일:1950.7. 청진 |
이춘근 라우렝시오 신부
1915년 3월 8일생
경기도 양주 신암리
순교일:1950.10.5. 평양 |
한윤승 필립보 신부
1911년6월9일생
북간도 용정출신
순교일:1950.6. 해주 |
신윤철 베드로 신부
1906년 5월28일생
황해 신철 출신
순교일:1950.6. 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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