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특집>
기아飢餓를 읽다
—퓰리처상 수상 사진전에서
박방희
수금을 연주하듯 제 갈빗대를 뜯으며
넋 놓고 울고 있는 아프리카 검은 아이
두 볼에 흐르는 눈물로 나일강이 흐르고
해골 속에 담겨 있는 퀭한 두 눈망울엔
배고픈 어린 짐승의 깊이 모를 서러움이
비탄의 발원지가 되어 세상을 적시는데
끝없는 눈물 줄기 악보로 읽으면서
나는 그저 바라만 보며 하염없이 젖고 있네
잠잠한 흑백사진 속에는 모래폭풍 일어나고
나일강에 이는 파도 가슴 벽을 치고 들어
슬픔이 슬픔을 부르고 눈물이 눈물을 불러
적시네, 휴일 오후를, 쓸쓸하게, 처량하게
너무 큰 의자
어떤 의자는 너무 커서 앉기에 너무 커서
의자에 앉는 사람을 파묻어 버리거나
제 위에 앉는 사람을 자기 위胃로 먹어버린다
시방도 어떤 이가 좋아라, 해롱대며
깜냥 안 맞는 자리에 겁 없이 올라가서
세상에! 가엾게 시리 목 내놓고 앉았네
삼릉 숲에서
너와 나 여기 와선 소나무로 설 일이다
나무가 나무끼리 더불어 뻗어 가는
직립의 여러 이치에 비로소 눈이 뜨이리
저마다 일가를 이뤄 서 있는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당겨 안아 들이며
하늘을 주거니 받거니 교감하는 나무들
한 세월 한자리에 숲이 되어 서 있자면
비틀고 뒤틀리고 휘어지고 구부러져
서로가 더 큰 하나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나무가 서 숲이 서고 숲이 서 나무가 서는
상승과 하강이 출렁이는 이 언저리
우리도 어깨를 겯고 소나무로 설 일이다
<대구시조> 2023. 제27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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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특집> 기아飢餓를 읽다 외 2편 / 故박방희 시조시인님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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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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