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암산 한우물과 불영암
▲ 북쪽에서 바라본 한우물(제1한우물) |
호암산성 북문터에서 서남쪽 길로 내려가면 한우물과 불영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우물은 석 구상과 더불어 호암산의 오랜 명물로 추앙을 받은 존재로 한우물이란 큰 우물을 뜻한다. 하여 천정(天井), 용복, 용초 등에 별칭도 지니고 있으며, 산 정상부에 자리해 있고, 마땅한 수원( 水源)이 없음에도 물은 늘 넉넉하게 나온다. 특히 가뭄 때도 물이 가득해 신비로움을 준다.
이 우물은 신라가 호암산성을 닦던 7~8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우물 자리 밑 에서 7~8세기 우물(못)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못의 규모는 동서 약 17.8m, 남북 약 13.6m, 깊이 약 2.5m였다. 이후 조선 때 서쪽으로 약간 자리를 옮겨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 의 장방형 못(우물)을 구축했다. 허나 조선 후기 이후, 호암산성과 함께 철저히 버려져 제대로 헝클어진 것을 1991년 2차 보수 정비공사 때 신라 때 우물터와 조선 때 우물터를 혼합하여 복원했다. 하여 현재 물이 있는 부 분은 신라 우물 자리이며, 수풀이 자라는 남쪽 부분은 조선 때 우물 자리이다. 또한 동쪽 산 정에도 비슷한 크기의 우물 유적이 있는데, 그를 제2한우물, 불영암 옆에 있는 이곳을 제1한 우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1990년 봄, 한우물 2개를 발굴하면서 12개 기종의 1,313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 ' 仍伐內力只來..' 글씨가 새겨진 청동제 숟가락이 나와 조성시기를 알려주는 열쇠가 되었다. 또한 지표에서 30cm까지는 백자 파편을 비롯한 조선 때 유물이 많이 나왔다. |
▲ 남쪽에서 바라본 한우물(제1한우물) |
임진왜란 시절인 1593년 1월, 전라병사 선거이가 권율 장군의 명으로 군사 4,000명을 이끌고 호암산성에 머물 때, 이 우물을 군용으로 썼으며 세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에는 '虎岩山 有固城 城內有一池 天早祈雨(호암산에 견고한 성이 있는데 성안에 연못이 있어 일찍 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다)'란 기록이 있어 평상시와 전쟁 때는 식수로 쓰고, 가뭄이 극성일 때는 기우제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비보풍수의 일환으로 서울의 화재를 막으려는 방화용설(防火庸設)도 설득을 얻고 있다. 또한 석구지(石狗池)란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여기서 '석구지'라 쓰인 장대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우물은 식수용으로 태어난 곳이나 현재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딱히 손은 대지 않는다. 우 물에 가득 모인 수분은 식수가 아닌 우물을 채워 연못 분위기를 내는 원초적인 역할을 할 뿐 이다. 우물 남쪽에는 갈대 등의 수풀이 둥지를 틀고 있어 운치를 드리우며, 북쪽에는 소나무 1그루가 우물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는다. 그리고 우물 주위로 돌난간과 철난간 을 2중으로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한우물은 처음에는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10호였으나 1991년 호암산성과 제2우물터, 건물터를 한 덩어리로 묶어 사적 343호로 승급되었다. (지정 명칭은 '서울 호암산성')
* 호암산 한우물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산93-2 (호암로192) |
▲ 키 작은 수풀이 우거진 한우물 남쪽 부분 못 남쪽에는 우물(못)보다 약간 높이 터를 다지고 갈대 등의 수풀을 심어 우물의 달달한 수식용으로 삼았다. 이 부분은 조선 때 우물터이다.
▲ 꺼꾸로 박힌 '석구지' 명문 장대석 |
한우물 동쪽 석축에는 '석구지' 글씨를 품은 돌(장대석)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글씨가 워 낙 작고, 돌의 피부색이 다들 비슷하여 그와의 술래 신세를 면하려면 열심히 두 망막을 굴려 야 된다.
1990년 한우물 발굴로 오랜만에 햇살을 본 그는 1991년 한우물 복원에 쓰이면서 다시 한우물 석축으로 살아가게 되었는데, 한우물 복원에 너무 급급했던 것일까. '석구지' 돌을 반대로 배 치하는 원초적인 실수를 범했다. 기껏 기분 좋게 복원을 했지만 '석구지' 장대석은 180도 꺼 꾸로 된 상태로 살아야 되니 그의 처지가 참 가련하다. 그렇다고 저걸 바로 잡고자 저 부분을 바로 건드리기도 조금 그렇다. 하여 나중에 한우물을 보수할 때 그때 바로 잡아야 될 듯 싶다. |
▲ 한우물에서 바라본 뿌연 천하 ① 시흥동 벽산아파트와 독산동, 가산동 등 금천구와 구로구, 양천구, 광명시, 부천시 지역
▲ 한우물에서 바라본 뿌연 천하 ② 호암산 북쪽인 목골산과 금천구, 관악구, 영등포구, 한강 너머의 서울 서북부 지역 등 |
한우물과 불영암은 서쪽과 북쪽이 확 트인 벼랑에 자리해 있어 천하를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하여 여기서는 금천구와 구로구, 영등포구 등 서울 서남부와 한강 이북에 서울 서북 부 지역, 북한산(삼각산)을 비롯해 광명, 부천, 인천 지역, 대기가 좋으면 서해바다와 고양, 파주, 개성까지 거침없이 바라보여 두 눈이 제대로 호강을 한다. 그리고 한우물 주변과 한우 물전망대에는 의자가 여럿 있어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로 높은 서울을 굽어보며 잠시 쉬 어 갈 수 있다. |
▲ 불영암 대웅전(佛影庵 大雄殿) |
호암산 남쪽 봉우리 서쪽 밑이자 한우물 옆에는 불영암이란 작은 암자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한우물을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은 이곳은 해발 310m 정도로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 에 들 정도로 하늘과 가까운 절인데, 가파른 벼랑에 자리하여 속세를 향해 훤히 모습을 드러 내고 있어 호압사나 시흥동 벽산아파트, 호암로에서도 확 눈에 띈다.
불영암의 내력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정보가 없어 파악하긴 힘들지만 관악산과 호암산의 기운 으로부터 서울을 지키고자 여기서 기도를 올리니 서울에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그런 것을 보면 오랫동안 승려들의 수행처로 쓰였던 듯 싶으며, 호암산성 서벽에 위치해 있고, 조망도 우수하여 산성을 지키며 속세를 살피던 망대(望臺)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게다 가 100년 이상 묵은 절들은 그 내력을 담은 안내문을 절 앞에 내걸지만 이곳은 그런 것이 일 절 없어 20세기 중반 이후 절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무지 짧은 암자로 대웅전과 산신각(山神閣), 요사(寮舍)로 쓰이는 작은 건물이 전부이 며, 그나마 대웅전만 불전(佛殿)의 분위기가 진할 뿐이다. 게다가 절이 들어앉은 위치도 건물 을 크게 불리거나 사세를 늘리기도 여의치 않다. 허나 한우물이 곁에 있어 물 수급은 어렵지 않으며, 벼랑에 자리한 탓에 조망 하나는 몸살이 날 정도로 좋다. 그러니 한우물과 일품 조망, 그리고 기존의 기도처를 후광으로 삼아서 절을 세웠을 것이다.
예전에는 대웅전과 요사만 있던 조촐한 모습이었으나 2009년 이후 대웅전 뒤쪽 바위에 커다란 불두(佛頭)를 얹히고, 절 앞에 돌탑을 심어 돌탑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제2한우 물터 주변에서 발견된 늙은 절구통과 맷돌, 모서리돌 등을 돌탑 앞에 두어 볼거리를 잠시 늘 리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서 없음) 특히 고려불화의 유일한 전수자인 승려 여지 (如智)가 2005년에 그린 '104위 신중탱화(神衆幀畵)'가 봉안되어 있어 이곳의 새로운 명물을 꿈꾼다.
* 불영암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산93-2 (호암로192, ☎ 02-809-3754) |
▲ 돌탑거리를 이루고 있는 불영암 앞길 (한우물, 호암산 정상 방향) |
| ◀ 간단하게 이루어진 불영암 범종각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 등 사물(四物)의 보 금자리이다. 매일 6시와 18시가 되면 잠든 범 종을 흔들어 깨우는데, 그 종소리가 호압사는 물론 시흥동 벽산아파트단지까지 널리 울려퍼 진다. |
▲ 바위에 머리만 꽂은 불영암 석불(石佛) |
대웅전 우측 바위에는 2009년에 만든 석불이 서쪽을 굽어보고 있다. 석불이라고 하나 바위에 커다란 머리만 심은 단출한 형태로 바위는 그의 자연산 몸뚱이가 되었다. 바위에 접착된 머리 주변에 하얀 석고 등이 가득해 다소 이질감을 주나 장대한 세월은 저들을 완연한 하나의 존재 로 만들 것이다. 석불 앞에는 키 작은 소나무가 하늘로 곧게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쳐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 치 불상에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는 듯 하며, 석불 머리 옆에는 산신각(山神閣)이 달려있다. |
▲ 불영암 산신각에서 바라본 천하 |
바로 밑에 불영암 경내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금천구와 구로구, 양천구, 강서구, 광명시, 부천시, 인천시 등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와 두 망막을 제대로 흥분시킨다. 한우물과 불영암 구역에서 제일 높은 곳이자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니 한우물에 왔다면 이곳 에 꼭 들려 국보급 조망을 덤으로 누리기 바란다. 대웅전 옆에서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바로 산신각이다. |
▲ 소나무숲과 바윗길로 이루어진 호암산 서남쪽 능선길 (석구상, 한우물~호암산 정상 구간)
▲ 부드럽게 솟은 호암산 남쪽 봉우리 |
호암산 서남쪽 능선이 지나는 호암산 남쪽 봉우리에는 지금까지 살펴봤던 호암산성과 한우물, 제2한우물, 석구상, 신랑각시바위, 칼바위, 불영암 등 온갖 명소와 일품 조망이 깃들여져 있 다. 하여 호암산의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라 호암산을 찾을 때는 95% 이상 저곳을 거쳐간다.
한우물을 둘러보고 호암산 정상까지 갈 욕심에 서남쪽 능선을 마저 타다가 생각이 바뀌어 호 압사 쪽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통해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으로 쑥 내려갔다. 서울 최대의 잣 나무숲이자 금천구의 야심작인 이곳 산림욕장에는 호암늘솔길(1.78km)이 달달하게 닦여져 있 는데, 그 숲길을 후식거리로 잠시 거닐며 늦은 오후 산림욕을 즐기다가 호압사를 거쳐 속세( 俗世)로 나왔다. 이렇게 하여 호암산 5월 나들이는 충분한 복습을 누리며 기분 좋게 마무리가 되었다. |
▲ 잣나무 속을 누비는 호암늘솔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