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2025.5.11(주일) 사무엘상 9:1~14 ‘블라인드 서밋을 주의하라’
영어권 국가에서 운전하다보면 ‘블라인드 서밋’(Blind Summit)이라고 적혀 있는 교통 표지판을 보게 됩니다. 이 표지판은 차량이 언덕을 오를 때 정상에 이르기 전에는 언덕의 정상이나 그 너머의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고 예측할 수도 없다는 점을 알려주시면서 속도를 줄여 주의해 운전하라는 표지입니다. 요즘 우리는 거의 매일 이 표지판을 대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마치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기에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보면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인하여 불안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베냐민 사람 사울을 세우시고, 그를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에게로 인도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사람을 바라볼 때 어떤 ‘블라인드 서밋’을 주의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 또 나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블라인드 서밋은 무엇일까요?
1. ‘세상과 기복’이라는 블라인드 서밋을 주의해야 합니다(1,2절).
본문에서 사울은 매우 인상적인 첫 등장을 합니다. 그는 “유력한 집안” 출신입니다. 기스 가문은 베냐민 지파 내에서도 지위가 있습니다. 또한 사울은 “준수한 소년”입니다. 즉 외모가 뛰어나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출중했습니다. 이후 2절에서는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컷더라”고 합니다. 사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완벽한 왕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외형적 스펙은 ‘블라인드 서밋’과 같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그 너머엔 위험과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울의 등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의해 시작됩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이유는 외적 위협이 아니라, 자신들의 불안과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복, 즉 복을 더 누리고 싶어서 자신들 만의 왕을 원한 것입니다. 사울은 백성의 기복적사고가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으로 보신다고 했습니다(삼상16:7). 오늘날에도 우리는 ‘기복신앙’ 을 따라 하나님께 묻고 인생의 복을 말씀에서 찾기 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보이는 것을 먼저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지 않으면 결국 사울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맞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용) 내가 기대하는 기복신앙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행복입니까?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까?
2. ‘성품과 재능’이라는 블라인드 서밋을 주의해야 합니다(2~10절).
사울은 아버지 기스의 지시로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러 사환과 함께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을 헤매다가 결국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갑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사울은 책임감있는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먼 길을 떠납니다. 일정시간이 지나자 “아버지가 우리를 걱정할지 모른다”며 배려의 말도 합니다(5절). 또한 사환의 제안을 무시하지 않고 듣습니다. 즉 경청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가졌습니다. 당시로 보면 사환은 계급상 아래였지만, 그의 말도 경청합니다. 또한 사울은 선지자를 만나기 전에 예물을 챙기려고 합니다. 당시 관습에 따라 예의를 갖추려는 기본이 있는 성품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그는 모범청년, 잠재력있는 지도자입니다. 그의 성실함과 판단력, 겸손함은 매우 바람직안 리더의 자질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성품과 재능이 ‘영적 분별력’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나귀를 잃었을 때,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선견자에게 가는 것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사환의 제안을 통해서 결정합니다. 사울은 사람 보기엔 ‘괜찮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보이지 않는 결핍’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는 ‘성품과 재능’이라는 블라인드 서밋이 줄 수 있는 착시현상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격이나 능력이 아닌 영적 중심으로 사람을 보십니다.
적용) 내가 사람을 볼 때 성품과 재능이라는 부분에 마음이 갈 때가 있습니까? 중심의 믿음과 신앙을 봅니까?
3. 말씀으로 중심잡는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11~14절).
사울과 사환의 시선은 사람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말씀으로 준비시키십니다(15,16절). 사울이 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이지만,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있는 ‘섭리의 만남’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지금 하나님의 집 제사를 위해 산당으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그는 단순히 예언자나 점쟁이처럼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말씀의 질서와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이 자기 말을 거절하고 왕을 구하고 있지만,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를 섬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중심을 잡고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성품도 있고 실천력도 있고 예의도 갖추었지만,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인생’이 되지 못했습니다. ‘블라인드 서밋’을 넘을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선택의 정점에서 사람이 진짜로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적용) 내가 진실로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주어지는 말씀을 붙잡습니까? 외적인 조건이나 성품이나 재능을 붙잡습니까?
결 론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말씀 위에 중심잡은 사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움직이는 사람,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야 인생에 닥치는 블라인드 서밋을 올바로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