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로부터 온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에 할례를 받아야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일로 교회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이 일을 판단 받고자 했습니다. 물론 바울 사도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찾아서 판단을 받자는 일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바울 사도가 이 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을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라 ‘계시를 따라서 올라갔다’(2절)고 증언합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 역시 갈라디아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셔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를 찾아보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바울 사도는 바나바와 전도해서 얻은 헬라사람 디도 그리고 교회의 몇몇 유력한 자들과 예루살렘 교회를 찾았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도록 했다’(3절). ‘억지로’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된 자들에게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사실 하나님도 우리가 그 어떤 선한 일에도 억지로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러면 율법주의자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할례와 같은 율법을 실천해야 온전히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형제인 이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교회 안에 침투한 것입니까? ‘가만히’(4절) 들어왔습니다(마13:25 참조).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엿보고’(4절) 이것을 훔쳐서 우리로 자신들의 종으로 삼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한시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5절). 한 순간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이단을 대하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