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사마타]은 부처님 당시부터 제자들이 해야만 하는 수행이요,
참선은 대승불교가 들어와 안으로는 경 공부 중심으로 이타행인 보살행을 강조하고 밖으로는 권력에 협력하여 현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역활을 하는 것에 실망한 중국 수, 당 시대 일단 수행자들이 자기 수행을 우선하려는 흐름이 생겨나
달마 이후 6조 혜능 선사가 나오면서 후학에 의해 '선학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선풍이 베트남을 포함해 동아시아에 불타 오르는데..
그들의 수행법을 참선이라 한다.
경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를 그들은 교종이라 하고, 선 수생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은 선종이라 한다.
교종 안에는 선정이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선종은 교외별전이라 하듯 경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선종의 문제점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선종의 핵심은 수행이듯이.. 수행인 참선법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 가운데 우리 참선법은 간화선이라 하여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참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사마타인 선정은 어떻게 수행함으로써 계학, 정학, 혜학 가운데 두번 째인 정학에 되는가..
사마타의 첫번 째 목적은 석가모니부처님 수행 시절에서 보이듯..
마음을 최고로 집중하여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깊은 진리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유하면 현미경으로 대상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만드는 작업이라 하겠다.
석가 수행자를 보면.. 모두가 의심하지 않고 있는 몸과 정신의 주인인 자아는 없다는 이치가 떠 올랐는데..
그 이치가 참인지 관찰하기 위해서는 최고 선정 상태여야 했기 때문이다.
두번 째 목적은 제자들이 발견한 것으로..
부처님께서는 무상, 무아, 공, 중도를 가르친다고 들어 이해하고 있으면서..
선정에 들어 취고 상태이 이르러 관찰해 보니 나라고 여기던 6근과 외부에 있던 대상인 6경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6내입처와 6외입처인 12처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관찰한다.
하여 12처를 멸하니 무아를 깨치고, 나아가 중도와 공을 깨칠 수 있었다.
이 말은 평소 아함경 모두를 암송해야만 한다고 스승과 선배에게 듣고 그런 줄 알고 일체 아함경을 외우는 것에 힘을 쓰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없이 핵심 주제만 잘 이해하고 있다가 선정 최고 상태에서 몸으로 깨치면 열반에 이른다는 것을 체혐한 것이다.
그것을 부처님 설법 가운데 나오는 선정법을 수집하여 9차제정으로 정리하고..
9차제정의 마지막인 멸진정[상수멸정, 멸진삼매 등]에 이르면 그 힘으로 무아를 깨칠 수 있다고 가르쳤다.
9차제정의 마지막인 멸진정에 이르면 부처 단계라 하여
'부처는 부처만이 본다'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멸진정에 다다른 수행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멸진정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상좌라고 존칭하며.. 멸진정에 이르려 평생을 사원 안에서 수행만 하는 현상이 나오니..
'그것은 아니다' 하며 나선 자들이 대중부를 만들어 기존의 불교를 상좌부 불교.. 더 나아가 소승불교..라 칭한다..
대중부 가운데 대승불자들이 나오게 된다.
지금 스리랑카, 버어마, 태국을 중심으로 한 남방 아시아에 전해진 상좌부 불교는 천번 째 선정의 맥을 이어오며,
스리랑카는 반야인 경을, 버어마는 수행인 선정을 중시한다.
불교 공부는 3학인 계학, 정학, 혜학이라 하는데..
계율을 지키는 것은 악행은 멀리하며 선행을 열심히 닦아 아라한이란 목적을 이루려는 방법이듯,
선정 역시 아라한을 이루려는 방법이다.
그러기에 정학인 사마타 수행으로 최고의 지성을 통찰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면
혜학이라 하여.. 부처님 가르침인 법[반야]을 관찰하는 것이니
그것을 남방 불교에서는 반야를 통찰하는 위빠사나라 했다.
그런 남방불교의 핵심은 계학과 위빠사나가 되는데..
뉴스를 보면 남방 불교 수행자들도 청정이 아닌 탐욕의 늪으로 점점 더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나무관세음보살.().
선종의 참선은 어떠한가?.
정학의 두번 째인 9차제정의 멸진정에 이르는 수행을 중시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수행법을 만들고.. 더 나아가
교외별전에서 보듯 이것이 불교다 하여 선종 불교라 하고 있다.
선종에서는 강조한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견성성불, 이심전심, 직지인심
교외(敎外) 라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인 <경> 밖에 있다는 것이요,
직지인심은 <경>을 통할 필요 없이 마음으로 직접 들어감이요,
견성이 성불이듯 굳이 석가 가르침을 필요하지 않음이요,
살불살조라.. 부처님이 나타나면 목을 자르라고 까지 한다.
만일 이것이 선종의 본체라면 굳이 부처님가르침인 불교라는 옷을 입힐 필요가 있을까?.
만일 불교라 하면서 선종을 저렇게만 안다면 무지의 오만에 떨어진 것으로 본다.
그러기에 선종을 전한 우리 선배님 선지식들은..
참선 공부를 하기 전에.. 초심자에게 경 공부를 먼저 시켰다.
그뿐 아니다..
참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법으로
<경>을 보도록 하였다. <경> 이 어떻게 이해되는지..
성철큰스님께서 화두를 포함한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와 같은 수행으로 견성을 이룬 후
10년간 성전암에서 두문불출하면서 팔만 경을 섭렵하셨으니..
그 결과 <백일법문>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백일법문>은 근본경전인 아함경에서 대승경 그리고 참선과 관련된 자료가 무수히 인용하여..
중도가 불교의 핵심임을 밝혀..
대승경전을 부처님의 진설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중도가 바르게 전하고 있는 경이라면
그것은 불경이 틀림없다고 밝힌 것이다.
성철큰스님 경우는
선정의 최고인 멸진정을 체험하시고,
그 힘으로 반야인 경을 통해 스스로 인증하는 혜학을 완성한 학인이 된다.
그러기에 큰스님은 계학, 정학, 혜학을 완성한 삼장법사라 칭하며..
20, 21세기 한반도에서 활동하신 부처님이라 하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무관세음보살.().
다만 많은 참선 수행자들은 경을 무시하며 오로지 참선 수행만 강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나 염불만 하면서 그것을 최상의 것으로 여기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망집이다.
기도와 염불뿐만 아니라 경전의 가르침도 자세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넓게 자세히 배우지 않고 기도나 참선만으로 평생 동안 수행하는 것은 바르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는 가운데 기도와 참선도 행해야 하는 것이다. / <보리도차제> 에서
다행인 것은 근래 들어 경을 합송 하거나 사경 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합송이나 사경을 무엇을 하는 수행인가?.
바로 혜학과 선정을 동시에 닦는 수행이다.
보리사에서도 윤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경을 권장하며 사경하는 모임을 적극 장려하는 이유도
3학을 해야 비로소
완전한 수행이 되어..
반듯하게 나아가는 불자가 되니.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불자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왜 여기서 굳이 이 말을 할까?.
성철큰스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하면..
"이 뭐꼬?" 시삼마(是甚麼).. 하듯 화두 수행이 전부인 듯 여기는 님들이 적지 않으며..
또는 염불 기도인 아비라 기도가 최고인 듯 여기는 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철큰스님께서는 불교는 중도가 핵심이다 하셨는데..
그 말에 불교는 계학, 정학 그리고 혜학.. 3학을 닦는 종교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