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대 궁궐 답사를 마치고/안성환
서울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은 임금이 거처한 궁궐이다. 이 외도 서울에는 많은 궁궐들이 있지만 모두 임금의 집안 사람들 궁궐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문화재 감상을 잘 하고 싶다면 몸과 시간을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책에서 찾을 수 없는 숨겨진 것도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1박2일간 궁궐답사를 하며 느낀 생각이다. 계산상으로 하루 3만5천보 이상 걸어야 되므로 봇짐은 되도록 가볍게, 여벌은 없앴다. 혹시나 기후 변화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홀랑 벗고 다녀야 될 입장이다. 이번 답사는 대중교통 이용이다. 울산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서울역 오전9시경 도착하여 먼저 도착한 일행과 합류했다. 코스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 서궐인 덕수궁과 경희궁을 답사했다. 5대 궁궐 중 하이라이트는 ‘창덕궁의 후원’이다.
창덕궁 후원은 관람 6일전 10시부터 인터넷예매를 한다. 시간대별 80명 관람인데 인터넷예매가 50명이고 당일현장 예매가 30명이다. 주중 예매는 별 문제 없는데 주말 예매는 하늘에 별따기다. 이윽고 창덕궁 후원 예매 일이 다가왔고 답사일행 7명에 가족까지 동원하여 동시에 피 터지게 인터넷 예약 접속을 시도했다. 이 중에는 독수리 타법도 있지만 쌍수로 양 칼잡이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단 한 명도 당첨되지 못했다.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어금니를 깨물며 단단히 각오를 했다. 다음날 아침 숙소인 서울신라호텔에서 4시 30분에 기상, 의관을 고쳐 입고 첫 전철(오전5시23분)을 타고 창덕궁 후원예매소로 달려갔다. 예매는 아침 9시부터, 그곳에 도착하니 아침 6시, 주변에 개미새끼들은 몇 마리 보이는데 인기척은 나 뿐이었다. 평생에 1등은 처음이다. 죽기 살기로 하면 1등 할 수 있다는 지혜도 여기서 얻었다.
1시간 쯤 지나서야 2사람이 내 뒤에 줄을 선다. 여쭤니 경남 양산과 경북 구미였다. 모두 시골 촌놈들이다. 8시 30분쯤 되니 50m 전방에서 마라 토너 선수를 닮은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왜 뛰지? 했다. 조금 있으니 모두가 내 뒤로 줄을 서기 시작했고 예매 5분전에는 무려 57명이나 줄을 섰다. 1등 기분, 참 묘했다. 만약에 예매시간까지 나 혼자였다면 너무 허무하고 억울할뻔했다. 행복은 누군가가 하지 못한 일을 성취했을 때 나타나는 것 같았다. 후원관람 입장권 7개를 양손에 들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기다리던 일행들 쪽으로 갔다. 격려와 박수에 어깨 뽕은 세겹 네겹 쌓여갔다. 참 기분 좋은 하루였다. 더디어 창덕궁 경내로 들어갔다. 궁궐답사는 어떻게 보면 건축뿐이다. 남들은 기와집 보려 서울까지 가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역사의 흔적은 건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다음이 미술이라고 본다. 건축을 공부 하지 않으면 역사를 이해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서와 기록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 시대의 민족이 남긴 문화적 가치는 건축이고, 우리는 건축을 통해서 역사를 찾으며 현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곤 한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 그것은 과거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과거에 묻는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특히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세우는 데는 역사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또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혼을 말살 시키는 데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만큼 손쉬운 것이 없다고 했다. 이번 5대 궁궐을 보면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문화가 훼손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그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궁궐은 그 나라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궁궐이 훼손되기 시작하여 조선의 위상은 곤두박질 하고 민족의 혼마저 짓밟힌 역사의 현장을 보는 느낌은 실로 말 할 수없이 힘들었다. 600여년간 이어지고 있는 옛 도읍을 알고 보면 아픈 상처가 많았다. 먼저 일제강점기 때 서울5대 궁궐의 아픈 상처를 정리한다. 경복궁에는 조선 총독부로 변질 시켰고, 창경궁은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바꾸고, 경희궁은 일본인 중학교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훼철 되었고, 이어 덕수궁은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창덕궁만 순종이 귀거하면서 그나마 본존상태를 유지 해 왔으나 화재 등으로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궁궐을 멋을 한 것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창덕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복궁이 중국풍으로 권위적이면 창덕궁은 자연미를 살린 인간적인 면이 짙다. 창덕궁이 경복궁과 이렇게 차별화된 건축양식을 갖게 된 이유는 그 창건과정에 잘 들어나 있다고 한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이방원에 의해 창건).
동아시아 역사 도시 중 일본교토는 ‘사찰의 도시’ 중국의 소주는 ‘정원도시’로 명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울은 궁궐의 도시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한 시대의 수도였던 왕도의 상징물은 궁궐이다. 그리고 조선 500년이었던 서울에는 궁궐이 5개나 있다. 세계 어느 역사에도 한 도성 안에 법궁이 5개나 있는 곳은 없다. 물론 궁궐이 5개뿐은 아니다. 여기에 운현궁, 남별궁, 연희궁, 육상궁, 경모궁 등이 있다. 이들 궁은 왕가 집안의 궁이다.
이번 서울궁궐답사를 마치고 새삼 느낀 점을 한 줄로 정리 하다면
‘5대 궁궐은 자랑스런 한국의 미학’이다. 라고 당당히 이야기 하고 싶다.
거대한 한양! 설계와 건축은 누가 했을까? 그는 내시출신 박자청이었다.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스페인 출신 안토니 가우디는 알아도 박자청은 몰랐다. 오늘의 서울은 조선 최고의 건축가 박자청(종1품)이 후손들에게 남긴 유산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경복궁 근정전앞에 판석들이다. 판석들은 모두 울퉁불퉁하다. 이유를 확인하니 빛의 난반사를 방지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임금이 아침 조회시 품계별로 서있는 신하들의 눈부심을 막아주기 위해서다. 그 지혜에 또 한 번 감동 받았다.
그리고 궁궐 지붕은 모두 부더러운 곡선으로 이루고 있다. 복잡한 미적분학에 의해 만들지도 않았는데 정학하게 그 기준에 맞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둥근 원 위의 한 점이 미끄러지지 않고 회전할 때 그리는 곡선이다. 빗물에 상하기 쉬운 목조건물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고 빨리 지나가는 최적의 형태, 이것이 사이크로이드(Cycloid)법이다. 옛 건축학자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참 신기 했다.
귀향길 고속열차에 몸 맡긴다. 숙소에 비해 절반 가격도 안 되는 고속열차가 너무 편안했다. 그렇게 편안 할 수가 없었다. 이유가 뭘까? 아마 소통하는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만날 때 주제를 가지고 만나지 않고 만남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인 것 같다.
첫댓글 조선의 5대 궁궐을
다녀오시고 멋진 답사하셨네요.
새벽 6시.. 대단하십니다.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이루어 진다고 했는데 소원성취하셔서 축하드립니다.
봄의 궁궐은 더 멋지고
아름답네요.
특히 부용정과 경복궁 뒷뜰이 아름다워요.
건강하실 때 많은 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