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7.
智異山 天王峯 (1,915m)
[산행코스]
중산리탐방센터->칼바위->망바위->로타리대피소->천왕봉->
통천문->장터목대피소->유암폭포->중산리 탐방센터 (약 13키로)
이렇게 정신없을 수 있나?
아침일찍 준비해 나가는데 뭔가 가볍다.
컨디션이 좋아 그런가 싶어 신나게 걸어가는데..
앗! 뭔가 없다. 뭐?
그건 바로 . . . 휴대폰!
미칬다... 빙시같은기.
다른건 없어도 되지만 이놈의 휴대폰은 필수지참품이지 않은가!
우띠이~ 어쩐지 뭔가 가볍게 시작하더라니...
다시 새가빠지게 되돌아 올라가 폰을 찾아온다.
틀림없이 아침에 점검 다 하고 내려왔다 마스크 빠져놓고
다시 챙기기까지 했는데 또 이래 되돌아와야하나?
이놈의 머리는 뭐냐, 장식품이냐?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만큼 알게모르게 긴장한 탓이겠지.
약속을 지킨다는 신의로 가긴 하지만 중요한건 내 정신적 즐거움이다.
모든건 즐겁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무조건 즐거운 생각으로....!
어젠 비 때문에 새벽에 함양까지 갔다가 모든 것을 취소하고
대구 와서 약 1년반만에 첨으로 사우나를 갔고, 그 여파를 이어 오늘은 전세버스를 타본다.
그놈의 못된 코로나로 인해 빚어진 일상들 아니겠나~
김밥으로 아침을 떼우고 중산리 가는 도중, 청련사 앞에서 갑자기 차가 선다. 왜?
무슨일인가 살펴보니 앞차가 나무를 들이받고 반틈 옆으로 전복되어 있는데
길가에 아저씨들 두명이 열심히 차를 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찌그러진 보닛에 연기가 풀풀 나는게 불과 조금전 우측 나무를 들이받고 넘어진것 같다.
좌측 운전자편 문쪽이 밑으로 깔려 빠져나오지 못하니 올바로 세우려 하는 거였다.
우리가 누고?
배달의 민족 아이더냐~ ㅎㅎ
우르르 내려서 다같이 차를 밀었더니 금방 쿵 거리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안에 사람이 타고 있어 퍼뜩 끄집어내어 구조해 드렸는데....
역시 단합의 힘은 아름답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게 세상 이치 아니겠는가~
아침부터 선한 행동을 해서 무척이나 여유롭게 출발한다.
머리 한쪽에서는 지난날의 아팠던(지리산 0.3km지점에서 쥐가 나 기어올라갔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자극하지만 애써 모른척 한다. ㅋㅋ
천천히~ 무조건 천천히 올라가면 된다.
답은 아주 간단한데...
(실제로도 아주 쉽게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올라갔다는... ㅎㅎ)
날씨가 산행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오늘은 복받았다.
산행하기에 딱좋은 날씨, 선선하고 무덥지 않은게 그저 그만이다.
앗싸~ 하늘이 큰 부조를 해주네?
물론 조망은 영~ 에러다 만서도 그까짓것 뭣이 중한디~
안개깔린 천왕봉을 언제 볼 수 있겠는가~
역시 지리산은 지리지리했다 .(알재 지리지리 카면서 욕 하고 있는 상황을...)
우째 그렇게 끝없이 오르막만 있을 수 있겠는가~
칼바위, 망바위 지나 로타리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또 오른다.
오늘은 절대 쥐가 나면 안되기에 무조건 천천히, 무리하지않고 걸어야한다.
중간중간에 술한잔 하고 쉬었다 올라가자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열심히 오르다보니 어느새 선두권이 되어있더라~
오우~ 부리나케 멋지군!
내가 디디는 성실한 걸음이 결코 늦지 않다!
천왕봉 정상 0.3km남겨둔 지점
이야아~ 위로 치솟은 계단을 바라보니 아침부터 꾹 눌러놨던 지난날 악몽이 떠오른다.
꼭 이 지점이었다.
다리를 드는데 떡 하고 쥐가 확 올라왔더랬지....
환장하지~ 미쳐버리겠더구먼
근육이 마구 뒤틀리다못해 떡하니 솟아올라버리니 그 누가 안 미치겠는가~
오늘은 절대 그런일 없다.
슬로우~ 슬로우~다.
근데 이놈의 300미터 사람 잡는다.
가도가도 끝없는 가파른 계단~ 확 깨물어 뜯고 싶었다.
그러나, 천천히 오르니 뭐 그런대로 오를만 했다.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니까~
이 당연한 진리는 아주 큰 힘을 선사해줬다. 지까짓게 높아봐야 얼마된다고~
디리링~
캬아~ 옳거니~! 그래 이거야~
이 반가운 트랭글 소리가 나를 천국으로 안내한다.
이 솟구치는 기쁨. 이 끝내주는 짜릿함~!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 인증을 한다고 개떼처럼 몰려있더라~
하기사 이렇게 빡시게 올라와서 인증 안하면 얼마나 억울할꼬?
여유롭게 중간조, 후미조들 기다리며 요리조리 틈새사진 박아본다.
아... 이 자리가 뭐라고, 여기에 오른다고 몇 주 전부터 얼마나 신경을 썼던가~
가슴 결림도 있고, 몸도 찌뿌둥한게 잘 안움직여지는것 같고....
그랬던 마음고생을 방금 한방에 다 털어냈다. ㅎㅎ
한마디로 속이 시원했다~ 얏호우~~!!
간단히 점심 먹고 제석봉 거쳐 장터목으로 향한다.
예전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남는건 역시 추억뿐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름다운 추억 많이 남기자~
스스로 다짐하며 장터목에 도착, 음수대로 가서 물을 맛나게 마셨다.
다 마시고 있는데 이거 뭐야, ... 엥?
"이 물은 먹는데 부적합하오니 마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들이 음수대로 적어 안내해놓고, 옆에다 조그마하게 경고문은 왠 말이냐~?
물 다 마셨는데 환장하겠네~ ㅋㅋ
괜히 봤다. 찝찝하지만 원효대사 모르고 먹은 해골바가지 물이 그렇게 달았다지 않던가~
도나 터뿌라~ ㅋㅋ
내리막은 말그대로 지리지리 미치겠다. 제발 그만좀 끝내자~
한참을 가파르고 또 가파르게 내려간다.
알지?
이쯤되면 뭐가 문제되는지.....
무릎이 내 뚱뚱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비명을 지른다.
'안다 안다~ 조금만 참거래이~
니마음 내가 모르는게 아니잖어, 여기가 그 유명한 지리지리 지리산이란다. '
우야겠노~ ㅋㅋ
한참을 고통스럽게 가다보이 유암폭포가 나온다.
허이구 여기서도 4.5키로는 더 남았네? 환장한다. -_-';;;
오를때보다 땀이 더 흘러내린다.
눈이고 안경이고 뭐고 다 땀으로 둘러쌓여 미칠것 같다.
이런데 짚라인 설치해놓고 돈받으면 와우~부르는게 값이겠다.
이렇게 무릎이 터질듯 아픈데 비싸고 안비싸고 따지겠는가~
몽땅 다 짚라인 타고 내려갈 참이니~
절뚝 거리고 한참을 내려가다 쉬고 있는데 멋진 해일님을 만난다.
다리 저는거 보고 마음 아팠던지 자기가 찬 무릎 보호대를 내어준다.
아 고마운 마음. 이 베푸는 맘이 백만불짜리다. ~
나도 양심이 있어 안받으려다 억시로 하나만 받아 차고 나니 훨 낫다. ㅎㅎ
그마음도 잠시~
또 한참을 땀 줄줄 흘리며 내려가니
무릎 이놈도 이제 비명까진 아니라도 마구 흐느껴댄다.
그때 타이밍 적절하게 국공(국립공원관리 지킴이)을 만난다.
평소 국공을 음주단속 경찰만큼 싫어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ㅋㅋ
오히려 반갑고 행복했다. 왜!?
파스를 시원하게 뿌려주더라 이 말씀이야~ 오메 좋은거~!
파스의 성분 중 최고의 효능은 마치다.
놀랍도록 차갑게 아픔을 싹 종식시켜 준다는 것~ 물론 잠시동안만~! ㅋ
파스 바르자말자 파스효능을 시험이라도 하듯 제트기로 돌변~!
수성형 따라 미친듯 내달렸다 .
(원래 내리막 신공은 무릎 수술 전까지는 내 전공이었거든.)
모처럼 파스효능 믿고 미친듯 달려 통천문 입구까지 내려왔다.
거기에 덤으로~
수성형 덕분에 최고의 알탕!을 할 수 있었다 .
새로운 세상의 발견이랄까? (장소는 절대 공개 안하려고 함 ㅋㅋ)
올해 최고의 알탕이었다.
홀딱벗고 훅 들어갔는데 한동안 호흡이 안될 정도로 차가웠다.
그 뜨거웠던 속이 후떡 뒤집혀질듯한 짜릿함이란....
비명 질러대던 무릎도 그저 쑥 들어갔다.
그야말로 신천지, 새로운 세상이었다.
기사회생이라 하나?
그렇게 가기 싫었던 이번 천왕봉 산행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오늘 산행을 통해 새로운 맘가짐을 갖게 되었고
다시 건강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의미없이 왔지만 저절로 의미가 만들어진 산행이었다.
그리고 더 큰 발견은.....
아, 아직은 쓸만하더라~ ㅋㅋ